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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유산, 독신이라면 공감할 혼자 사는 양춘희의 설움

Shain 2013. 3. 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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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솔로인 사람들은 짝을 찾고 싶어 안달났을 거라 생각하곤 하지만 아주 오래 독신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오히려 그 부분에서 태연합니다. 짝이 있던 사람이 갑자기 혼자 되면 그 허전함을 못 이기지만 계속 솔로였던 사람은 나름 혼자 사는 법에 적응해 오히려 남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내심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심심해서 기혼자들을 불러내 술자리를 갖기도 하고 한번씩 미팅을 시켜달라 조르기도 하지만 대개는 독신들에게도 그들 만의 생활패턴이 있고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혼자 살면 무조건 외롭다는 시선도 사람들의 편견일 뿐이죠.

극중 육십세 노총각 강진(박영규)은 어쩌다가 그 나이까지 혼자 살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솔로 생활에 잘 적응 중입니다. 먹고 살려고 피아노 조율부터 노래강사까지 안하는 일이 없고 밥먹을 때나 술 마실 때가 되면 여기저기 잘 따라붙어 얻어먹는 것도 나름의 노하우입니다. 노래부르고 피아노 조율하는 일이 수입은 변변찮지만 옥탑방 꼭대기에서 홀로 살며 익힌 생활력 만은 그 누구 못지 않습니다. 명절날 제사 지내는 순간에는 '그래 올해는 기필코 결혼을 해보자'며 다짐을 해도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사람이 강진입니다.

민효동 마저 '장모님한테 왜 그랬냐'며 타박하자 양춘희는 서운한 마음에 그만 끝내자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주위의 편견은 강진을 때때로 외롭게 합니다. 비록 혼자 사는 카페 마담 양춘희(전인화)나 피아노 학원 원장 엄기옥(선우선)에게 한두마디 추근거린 적은 있어도 공짜 영화표가 생겼으니 같이 보자는 강진의 말이 꼭 '작업'은 아닙니다. 특히나 딸뻘의 기옥에게 수작걸 만큼 정신나간 아저씨도 아니구요. 아까운 영화표가 있는데 같이 갈 사람은 없고 마땅히 함께 보자고 할만한 사람도 없어 만만한 솔로들에게 가자고 했더니 '이거 작업'이냐며 정색을 합니다. 심심한 솔로들이 이성친구들에게 놀러가자고 하면 흔히 겪는 오해이자 어려움입니다.

혼자 사는 서러움은 어쩌면 명절에 혼자라거나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다는 그런 부분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싶어도 그럴 사람이 없다는 서글픔인지도 모릅니다. 홀로 된 어르신들이 노인정이나 놀이터에 자주 나가는 것도 같이 시간보낼 동료들이 많다는 그런 이유일테구요. 양춘희에게 진지한 연애감정은 없으면서도 양춘희가 민효동(정보석)과 사귀는 사이라고 하니 심술부리고 그걸 핑계로 떼쓰는 것도 같이 놀 사람이 줄었다는 아쉬움이 클 겁니다. 그런 처지일 땐 꼭 사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나같은 솔로가 하나 있다는 사실로 적잖이 위안을 받습니다.

내편이 되어줄 가족 하나 없는 서러움 누가 알아줄까. 양춘희와 강진은 그런 부분에서 공감한다.

카페 마담 양춘희가 강진을 친구처럼 의지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옥탑방 오빠야 강진은 춘희에게 남자라기 보다 혼자된 처지를 한탄할 수 있는 만만한 친구같은 사람입니다. 혼자 산다는 부분 외에도 강진과 양춘희는 심정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많습니다. 오십넘도록 의지할 가족 하나 없는 처지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편들어줄 가족도 없고 그 나이까지 솔로라며 불편한 시선에 시달리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아내가 죽은 후에도 처가살이하는 전봇대 오빠야 민효동과 춘희, 강진의 처지는 많이 다릅니다. 함께 술마시며 신세한탄을 할만한 처지라는 거죠.

양춘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효동의 장모 김끝순(정혜선) 여사도 제일 먼저 강진과 춘희를 엮어주려 합니다. 김끝순 여사의 눈에는 춘희나 강진이나 똑같은 편견의 대상입니다. 천애고아였던 양춘희는 30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해서 한국에 믿고 의지할 친구 하나 없습니다. 거기다 소위 '물장사'로 불리는 카페까지 하며 남자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으니 옛날 사람인 김끝순 여사가 싫어할만도 합니다. 외국 떠도는게 너무 외로워서 고아원에서 친언니처럼 지내던 백설주(차화연)를 만나러왔고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한다는 걸 할머니 김끝순 여사는 모르겠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양춘희와 강진을 몰아부치는 엄씨네 여자들. 솔로라는 이유로 제비가 되고 꽃뱀이 된다.

양춘희는 착하고 애교있는 성격에 혼자 살면서도 어두운 구석이 별로 없는 좋은 여자입니다. 백설주가 아들로 키우고 있는 이세윤(이정진)은 양춘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친자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춘희는 사랑하는 남자도 아이도 잃었다는 생각에 삼십여년전 한국을 떠났고 지금은 그런 내색 별로 없이 효동을 위로해줍니다. 효동이 못난 남편 철규(최원영) 때문에 고생하는 채원(유진)으로 인해 남몰래 눈물지을 때 양춘희는 그런 효동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었습니다. 구치소에 갇혔을 땐 백설주의 남편 이동규(남명렬)에게 부탁해 변호사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도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백설주에게 외면당하고 단지 물장사하는 여자란 이유로 엄씨네 여자들에게 드잡이 당하는 양춘희. 넉살좋은 강진은 '죽은 마누라 처가집 식구들이 결사 반대'해서 결혼을 못하냐며 그 상황을 비웃지만 춘희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 효동이 서운해 죽겠습니다. 엄씨네 여자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꽃뱀 취급을 해도 양춘희에게는 편들어줄 가족 하나 없습니다. 강진도 그 사람들이 나를 '늙은 제비' 취급했다며 서운하다고 합니다. '친정있는 것들은 좋겠다'는 양춘희의 눈물이 절절이 와닿습니다.

민효동 마저 장모에게 끌려 선자리에 나가자 양춘희는 더욱 서운해한다. 세상에 내 편 하나도 없다.

'우리'라는 말은 함께할 때 좋은 말입니다. 우리 가족이고 우리 핏줄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고 더 위해주는 마음은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요즘처럼 가족들 간에도 뿔뿔이 흩어지는 그런 시대에 더없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김끝순 여사와 엄씨네 여자들의 극성스런 가족애가 양춘희와 강진에게는 폭력으로 변합니다. 혼자 사는 독신들에 대한 편견이 참 무섭습니다. 엄씨네 가족들은 잘 모르는 강진을 한순간에 사기꾼으로 엮어버렸고 양춘희를 남자나 등쳐먹는 꽃뱀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어떻게 보면 방영자(박원숙)의 못되고 이기적인 가족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모든 소란이 양춘희와 강진을 엄씨네 식구로 받아들이기 위한 몸살이란 건데 강진과 엄기옥이 가까워지는 모습은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아빠와 딸처럼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커플이란 점에서는 영 못 마땅합니다만 주변에 이성이 하나도 없다 보면 말도 안되는 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희한하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죠. '미쳤다'고 자책하면서도 자꾸 기옥과의 결혼식을 떠올리는 강진의 심리가 그런 독신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이성이 사귀게 되는 경우가 적잖이 있구요. 솔로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이런 깨알같은 재미가 이 드라마의 또다른 매력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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