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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화신, 기억을 되찾은 이차돈 진짜 재미는 이제부터

Shain 2013. 3. 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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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운명이 흘러나오는 원장실. 이쑤시개로 조심스럽게 번데기를 하나하나 집어 먹는 그 남자는 번데기와 와인을 함께 하는 그 시간이 특별하게 음미합니다. 고소하고 담백한 번데기의 맛도 맛이지만 톡 터트리며 씹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듯 눈을 감고 입 안에서 번데기를 심오하게 터트리는 고명한 원장(김병옥). 번데기를 유난히 사랑하는 원장의 독특한 습관은 마치 고문과 학대를 즐기는 캐릭터를 음식으로 승화시킨 듯 예술적이기까지 합니다. 고문기술자 출신 요양원 원장의 미친 성격과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기묘한 풍경이 드러난 그 장면이 정말 기발하다 싶더군요.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드라마 속 세상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근무시간에 음악 감상하며 와인 한잔을 즐기는 그 공간은 원장의 집이 아닌 사무실이고 원장이 회진을 돌 때 마다 일렬로 서서 원장을 맞는 환자들은 마치 노예들 같습니다. 점잖아 보이는 '고명한' 원장은 자신 만의 왕국인 그 요양원에서 남몰래 재산포기 각서를 받아내고 집중치료라는 명목으로 환자들을 학대합니다. 적성에 맞게 고문 기술을 잘 살린 그에게 세상은 훌륭한 의사라는 평가를 내렸고 포기각서를 받아서라도 재산을 갖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지하병동에 가두어 버립니다.

점잖게 번데기를 먹는 요양원 원장의 정체는 돈받고 재산포기각서를 받아내는 미친 고문기술자.

이차돈(강지환)이 이런 요지경 속으로 뛰어든 것도 돈때문입니다. 가석방 심사 중 만난 죄수가 박기순(박순천)이란 사실을 기억해낸 차돈에게 양구식(양형욱) 사무장은 땅 속에서 발견된 박기순의 재산을 찾아주면 수수료 20억을 받을 수 있노라 귀뜸해주고 이차돈은 행방불명이 된 박기순을 찾아내기 위해 요양원에 입원합니다. 양구식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싼값에 부려먹는 그 병원의 약점을 이용해 함께 병원으로 들어가지요. 곱게 화장한 얼굴로 '나는 조선의 국모'라고 외치는 이차돈. 지난 주 마약에 취한 복재인(황정음)도 그랬습니다만 이차돈의 미친척 연기는 정말 최고더군요.

아무래도 '돈의 화신'의 진짜 재미는 현실과 풍자를 넘나드는 강지환의 이런 연기력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돈 때문에 사주를 받고 사람을 가뒀다는 요양원, 정신병원은 종종 기사화되는 이야기죠. 또 자식과 재산 때문에 남편이 바람피워도 이혼하지 못하는 아내가 있는가 하면 역시나 한몫 두둑히 챙기기 위해 나이많은 남자의 내연녀 노릇을 하는 젋은 여자도 있습니다. 뇌물이나 성접대를 받고 부정을 저지른 검사도 있고 수임료 받자고 살인자를 옹호하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강지환이 연기하는 '슈달' 이차돈은 그런 현실과 드라마틱한 설정 사이를 오가는 코믹한 캐릭터입니다. 

코믹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살아있는 강지환의 연기. 이런 능청스러움이 가능한 건 그의 재능이다.

흰 소복에 머리를 올리고 옥가락지에 곱게 화장을 한 이차돈은 꽃신(이런 신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거야)을 신고 조심조심 거리를 걷습니다. 미친 척 연기하는 그 상황 자체도 웃긴데 배경음악은 드라마 '명성황후(2001)' OST '나 가거든'입니다. 비리검사로 찍혀서 한순간에 많은 돈을 잃었으니 돈을 벌기 위해 이 정도도 못할까 싶은 이차돈의 절박함. 변호사가 되서도 '슈달' 본능은 변하지 않고 불쌍한 박기순에게 수임료를 받아보겠단 일념으로 명성황후가 되다니. 의외로 화장이 잘 어울렸던 강지환과 거뭇거뭇하게 티가 나는 턱수염 때문에 한참 웃었습니다.

거기다 여섯살 지능의 장애인을 연기하기 위해 표정연기를 하는 양구식과 이차돈의 상궁 노릇을 하며 음식까지 떠먹여주는 윤상궁까지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던지 이런 연출을 생각해낸 작가도 연기자도 정말 대단하다 싶더군요. 더욱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긴장감과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쪽에서 돈 때문에 벌어지는 코미디가 연출되면 다른 한쪽에선 돈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 묘사됩니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눈하나 까딱 않고 성공하는 지세광 무리와 그들에게 희생되어 폐인이 된 박기순의 묘한 대비는 씁쓸하다 못해 서글픕니다.

과거를 모두 기억해 낸 이차돈. 박기순은 아들을 알아보고 울부짖는다.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던 이차돈은 박기순이 몰래 전해준 가족 사진을 보고 자신이 이강석임을 기억해냅니다. 박기순이 그렇게 눈물로 애원하며 애타게 보고싶어하던 아들이 자신인데 이차돈은 그것도 모르고 박기순을 뜯어먹으려 했습니다. 내 가족이 어쩌다가 몰락했으며 엄마는 왜 죄인이 되어 정신병원에 갇혀버렸을까. 전기고문을 받고 박기순에게 지세광(박상민)이 저지른 일을 듣자 하나하나 이차돈의 기억이 되돌아옵니다. 이제서야 아들을 만난 어머니의 눈물과 가족을 해친 자들에 대한 묵직한 분노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게다가 황장식(정은표)을 죽인 범인의 정체는 미스터리입니다. 지세광은 황장식을 누가 죽였는지 모르고 전지후(최여진)의 사건 수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돈때문에 뭉친 은비령(오윤아), 고호(이승형), 권재규(이기영) 이 세 사람중 하나가 살인범일지 아니면 이강석과 관련된 제 3의 인물일까요. 돈이면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현실을 풍자하는 재미와 가족 간의 비극과 사랑을 생각해보는 진지함 그리고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극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전혀 어색하거나 산만하지 않은게 이 드라마의 최고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능숙하고 능청스런 강지환의 연기가 큰 몫을 하고 있죠.

돈의 노예가 되느냐 돈의 주인이 되느냐. 돈의 화신이 되기 위한 지세광과 이차돈의 싸움.

보면볼수록 '돈의 화신'의 첫회 첫장면은 참 절묘하게 잘 찍었습니다.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발견된 돈 때문에 한순간에 미쳐버리고 진흙탕과 빗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으로 달려듭니다. 그 와중에 사람도 죽습니다. 평범한 세상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것처럼 돈이 있는 곳은 죽음이 있고 광기가 번져나갑니다. 이중만(주현) 회장을 죽이고 이강석(박지빈)의 재산을 가로챈 지세광, 권재규, 고호, 은비령, 황장식은 돈 때문에 박기순과 강석을 외면했습니다. 이미 황장식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제거되었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도 점점 분열되어 갈 것입니다.

부동산 재벌 이중만은 돈이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 돈의 노예가 되느냐 그 돈의 주인이 되느냐는 자신의 능력에 달렸습니다. 돈이라는 '신'을 두고 벌이는 성전에서 복수를 하고 재산을 되찾고 사랑을 차지하는 이차돈의 이야기. 초반에는 기대 안하고 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드라마 같습니다. 자신을 거부한 이차돈이 밉고 꼴보기 싫으면서도 오랜 짝사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복재인과 재인에게 사채업을 물려주려는 복화술(김수미) 이야기도 참 재미있구요. 여우같은 두 여자 복재인과 은비령의 맞대결도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돈으로 세운 '신전'의 진짜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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