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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유산, 떼쓰는 아이들같은 부부 김철규와 마홍주

Shain 2013. 3. 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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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극의 재미는 뻔하고 쉽게 예상 가능한 이야기에도 있지만 한눈에 파악되는 캐릭터에도 있습니다. '백년의 유산' 등장인물 중에는 개성있는 사람은 많아도 예측불가능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는 드뭅니다. 중년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가 많이 없어 순정남 민효동(정보석)이나 오빠야를 연발하는 양춘희(전인화), 육십 노총각 강진(박영규)같은 캐릭터가 신선하게 다가오기는 합니다만 뜬금없이 이해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런 타입들은 아닙니다. 허세많고 속물스런 큰며느리 도도희(박준금)부터 억척 둘째 며느리 공강숙(김희정)이나 건어물녀 엄기옥(선우선)까지 한번쯤 어디서 봤을 법한 캐릭터들이 이 드라마의 재미죠.

흔치는 않아도 전형적인 마마보이 김철규(최원영)도 어디선가 한번쯤 부딪혀봤을 법한 그런 남자입니다. 한편 김철규의 아내 마홍주(심이영)는 '재벌'이라는 환경 그러니까 대한민국 0.01%에 해당하는 상류층 딸이라는 점만 빼면 삐뚤어진 악역의 전형입니다만 사연있는 악역이란 점에서 가장 차별화된 캐릭터입니다. 마홍주는 겉으로는 고분고분 순종적이면서도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돌아버리게 하는 이해불가능한 행동을 합니다. 매사에 냉소적인데 남편 김철규에게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보면 볼수록 두 사람 참 절묘하게 짝지워진 캐릭터들입니다.

공통점이 많은 김철규와 마홍주의 결혼. 두 사람은 상처받은 어린아이들같다.

만나는 순간부터 의사소통이 잘 안됐고 결혼하고도 끊임없이 갈등하는 김철규와 마홍주는 경제적으로 부족함없이 자란 부자집 자식들이란 점외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또래들과는 달리 정신적으로 많이 미성숙한 어른들이고 가정을 가질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덧붙여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어린아이같은 어른들이란 점도 똑같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감싸주고 받아들이기 보다 버림받고 외면당하는데 익숙하고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문제를 헤쳐나가기 보단 생떼를 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연기자 최원영이 워낙 매력적으로 연기해서 그렇지 김철규의 뻔뻔함과 철없는 억지는 보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어머니 방영자(박원숙)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쯤 미친 시어머니란 걸 알면서도 아내 민채원(유진)을 감싸주기는 커녕 함께 괴롭힌게 김철규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큰데 그 마음을 어떻게 보여줘야하는지 행동하는 법을 몰랐고 아내가 떠난다는 사실이 못견디게 슬프면서도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는게 김철규입니다. 몸만 어른이지 사회적인 대처 능력은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소곳하지만 불만스런 표정으로 방영자를 못살게 구는 마홍주. 철규는 홍주의 외로움에 공감한다.

채원을 사랑하는 김철규의 마음이 진심인 건 보는 사람들도 충분히 알겠는데 멋진 남자 이세윤(이정진) 앞에서 못나게 질투나 하는 김철규는 어떤 면에서 안쓰럽습니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자신을 알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엄마 때문에 아내와 헤어진 지질한 남자라구요. 그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술이나 퍼마시며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김철규. 엄마가 자식 키우느냐 고생한 건 알겠는데 자기 삶이 그런 식으로 풀리는 것은 뭔가 아니다 싶은 김철규입니다.

김철규와 반쯤 억지로 결혼한 마홍주는 그보다 더 삐뚤어진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재벌 집안의 혼외자 그것도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난 마홍주는 남들 앞에서 행복한 척 웃어야하는 생활에 익숙해 겉으로는 밝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상대합니다. 밖으로는 교양있는 척 위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가족들 때문에 사람 보다는 같이 지내는 강아지에게 정을 붙인 홍주는 방영자의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아지와 아침밥을 먹습니다. 전형적인 애정결핍증인데다 감정이 죽끓듯이 변해 도무지 속셈을 알 수 없습니다.

남들 보기엔 화려하고 멀쩡하지만 정작 자신들에게는 부족한 어머니들을 둔 김철규와 마홍주.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났으면 적어도 어머니 만이라도 홍주를 위해주고 다독여줬다면 좋았을텐데 어머니에게 홍주는 불행의 씨앗일 뿐입니다. 내탓으로 이런 불행이 벌어졌다고 자책하기 보다 딸 때문에 이런 고통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는 딸을 두고 속사정을 듣기 보다 뺨을 때리며 미쳤다고 다그칠 정도로 딸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지질한 마마보이에 무능력한 김철규에게 떠맡기듯 마홍주를 넘기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사도우미까지 달려 보낼 정도로 무책임한 어머니. 마홍주는 어디에도 정붙일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마홍주가 자신의 그런 처지를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모두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김철규가 채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듯 마홍주도 자신을 선택해 친정에서 구해준 남편에 대한 희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감정이 사랑이나 호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남편이라면 남들처럼 자신을 위해주고 겉으로라도 다정하게 대해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을 법합니다. 마치 나를 '사랑해달라'며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전부인과 통화하는 김철규에게 화를 내고 팔베개를 해주지 않으며 자신을 거부하는 철규에게 베개를 집어던집니다.

떼쓰는 아이들같은 미성숙한 두 사람이 부부가 되다. 한동안은 방영자가 고생할 것 같지만.

눈여겨볼 건 이런 두 사람의 결합이 가져온 흥미로운 '응징'입니다. 방영자는 만만해서 함부로 대했던 전며느리 채원과는 달리 재벌 막내딸인 홍주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밥상에서 강아지와 겸상하는게 못마땅하고 새로 들어온 가사도우미 때문에 불쾌하지만 얼굴 표정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는 홍주 때문에 딱 부러지게 싫다는 의사표현을 못합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며느리 시집살이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철규는 철규대로 홍주가 측은하다는 생각에 또 기댈곳없이 외로운 동병상련의 처지라는 공감에 홍주가 혼외자라는 비밀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마홍주는 김철규에게 주어진 마지막 인생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채원과 이혼하면서 모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김철규는 자신과 비슷한 상처가 있는 마홍주를 통해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똑바로 보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아내에게 꼭 필요한 것이 믿을 수 있는 애정이라는 것과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거야 한참 후의 일일테고 한동안은 꼼짝없이 마홍주에게 당하게 될 방영자 때문에 꽤 통쾌한 장면이 자주 연출될 것 같습니다. 미세스박의 브런치 때문에 속 깨나 썩일 걸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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