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천하다고 무시당하던 마의에서 조선의 지존을 치료하는 어의가 된 의원 백광현.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은 신분의 한계와 차별을 극복하는 영웅캐릭터입니다. 실존인물 백광현을 모델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이미 많은 부분 사실과 다르게 판타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진짜 백광현은 몰락한 양반 백철명의 후손이었고 무관 일을 하며 중인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민간에서 명성을 떨치다 마흔살이 다된 나이에 천거로 치종교수가 되고 숙종 3년에 어의가 되었습니다. 한마리 말로 인해 의원의 길을 밟기 시작해 조선 최고의 신의가 되었다는 모티브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백프로 창작입니다.
그러나 사실 관계 왜곡에도 불구하고 '마의'는 충분히 매력있는 드라마입니다.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살리려는 주인공의 인성과 신분제로 곪아있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내용은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칼로 몸을 찢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 시대에 백광현은 상대가 왕이든 대비든 상관하지 않고 외과술을 시도합니다. 게다가 드라마 속 의학 관련 에피소드는 실제 백광현의 임상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고 그 부분 때문에 드라마가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드라마틱한 재미 한편으로 이야기 속 조선시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세종 때 경북 청송에는 가이라는 양인 여성이 살았습니다. 가이는 어릴 때 부모를 잃어 노비 부금이란 남자에게 의지해 살다 정이 들어 부금을 남편으로 맞았습니다. 당시 태종이 내린 법령으로 양민과 천인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어 둘의 결혼은 엄한 벌을 받는 중죄였으나 두 사람은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관에서 두 사람을 이혼시키고 가이는 왜인 손다에게 강제로 시집보냈습니다. 부금은 가이를 구하려 이웃 사람과 함께 손다를 죽였고 가이와 부금 두 사람은 함께 처벌받아 목숨을 잃습니다. 신분 때문에 죽어서야 맺어질 수 있었던 한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조선 중기, 후기에는 양인 여성과 결혼한 노비의 자식들를 모두 노비로 소유할 수 있는 법을 이용해 양인 여성들과 혼인하는 노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주인 쪽에서 노비와 양인의 혼인을 권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조정에서는 신분이 다른 결혼을 했을 경우 자식의 신분은 어머니를 따른다는 종모법이라던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른다는 종부법을 바꿔가며 실시해 노비수를 조절하려 했지만 실제로 양반가에서는 '일천즉천' 즉 부모 중 한쪽이라도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라는 관습으로 노비의 숫자를 늘려나갔습니다. 백광현이 살던 조선은 양반의 이익을 위해 노비를 재물 취급하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마의'에서 가장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인물들은 백광현을 죽이려는 못된 사람들이라기 보다 조선시대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천한 마의 백광현이 칼로 사람 몸을 찢는다며 불신했던 인선왕후(김혜선)는 피를 두려워하고 신분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던 평범한 조선 시대 상류층 여성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종(한상진)의 총애를 받는 백광현에게 강씨 집안을 이으려면 양반가의 규수와 결혼해야한다며 종용하던 좌의정 홍윤식(박영지)도 흔한 그 시대의 사대부입니다. 정치적 목적이 결합되서 그렇지 혼인으로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주겠다는 제안은 상당한 친절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마의였다가 어의가 된 이명환(손창민)은 백광현 만큼 천재적인 의원이나 그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 안전한 탕의가 되어 출세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치료에만 전념하는 어의로 만족하지 않고 삼사의 수장인 수의로 승진하여 각종 이권을 장악하고 재산을 불렸습니다. 백광현은 과부 서은서(조보아)의 유옹 수술을 반대하고 수의 고주만(이순재)의 부골저 수술을 반대하고 현종의 담석 치료나 대비의 발제창 치료에 안된다며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자신이 믿는대로 외과술을 실행합니다.
실존인물 백광현도 용감한 의원었습니다. 왕실 의원들은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소신대로 시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임상경험이 필요한 외과술 담당 침의가 의서대로 탕약을 처방하는 탕의 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소위 '안전빵'을 지향하는 이유가 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자칫 잘못해 암살 음모에 휘말리는 불운을 겪을 수도 있고 치료중 왕족이 죽기라도 하면 의원의 잘못이 아닌데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백광현은 자신이 고안안 시술용 침과 특별한 시술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제 묘사된 현종의 장옹 치료 에피소드는 실제 숙종의 며느리이자 경종의 아내였던 세자빈 심씨(단의왕후)의 사례를 현종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단의왕후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장옹을 앓았는데 병증이 깊어지자 백광현은 침으로 찢어 고름을 빼자고 주장합니다. 단의왕후의 장옹은 충수돌기염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극중 현종은 대장염으로 조금 더 심각한 질환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왕실 세자빈을 상대로 그 시대에 배를 째겠다고 나선 백광현은 무서우리 만큼 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의왕후 심씨 치료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백광현의 마지막 왕실진료입니다
감히 시도하기 힘든 그런 의술을 왕족을 시술한 백광현을 무모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백광현은 도전에 성공했고 왕들은 목숨걸고 자신들을 구한 백광현에게 큰상을 내렸습니다. 나중에는 벼슬을 내리다 못해 그의 죽은 조상들의 신분까지 상승시켜주었고 천첩의 자식까지 면천시켜주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생각으로야 조상에게 벼슬을 내린다는게 말장난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그런 명예를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극중 백광현의 행동처럼 대제학 가문 강도준(전노민)의 핏줄을 포기한다는게 쉽지 않던 시대란 뜻이죠.
나는 강씨가의 자손이지만 백광현으로 살겠다는 백광현. 강씨 집안의 많은 재산을 모두 털어 백성들을 치료하는 약방을 만들고 문음 제도로 벼슬을 받기 보다 의원이 되겠다는 그의 큰 뜻은 신분제도 유교적 가치관도 막을 수 없었던 한 위대한 의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것입니다. 천민 출신 아버지 백석구(박혁권)나 양반가의 강도준 모두 내 아버지라며 강지녕(이요원)과 함께 참묘하는 그가 그 시대 조선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무리는 아닙니다. 신분이 다른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걸어야했던 조선시대였으니까요.
이외에도 '마의'는 여러모로 역사적 사실과 조선 시대를 무시하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극중 현종의 안위를 걱정하던 세자(강한별)의 '아빠마마'라는 정체불명의 대사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숙휘공주(김소은)와 백광현의 러브라인도 그랬구요. 이병훈 PD는 꽤 오래 동안 많은 사극을 제작했고 왕족이 아닌 백성을 주인공으로 삼는 '민중사극'의 특성상 왜곡 논란이 있을 만큼 과감한 설정을 선보였습니다만 은퇴작 '마의'는 아예 사극의 기준을 바꿨다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나 단어사용이 현대적입니다. 마치 현대인들이 타임슬립해 조선시대로 건너간 느낌까지 듭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임언국의 치종지남은 중국, 일본, 조선 세 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외과술 서적입니다. 백광현의 임상이 기록된 '지사공유사 부경험방'은 현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기록을 토대로 외과의 백광현을 드라마에 끌어들인 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현대가 아닌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배경을 토대로 묘사가 되었다면 판타지가 아닌 실제 조선 시대에 기반해 연출되었으면 훨씬 더 의미있는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병훈 PD의 사극을 몹시 좋아합니다만 이번에는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많이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 드라마 '마의'는 다음주 월요일 마지막회 50회가 방송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관계 왜곡에도 불구하고 '마의'는 충분히 매력있는 드라마입니다.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살리려는 주인공의 인성과 신분제로 곪아있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내용은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칼로 몸을 찢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 시대에 백광현은 상대가 왕이든 대비든 상관하지 않고 외과술을 시도합니다. 게다가 드라마 속 의학 관련 에피소드는 실제 백광현의 임상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이고 그 부분 때문에 드라마가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드라마틱한 재미 한편으로 이야기 속 조선시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현종은 장옹 치료에 성공한 백광현에게 어의 직책을 내린다. 천한 마의에서 어의가 된 백광현의 인생.
반면 조선 중기, 후기에는 양인 여성과 결혼한 노비의 자식들를 모두 노비로 소유할 수 있는 법을 이용해 양인 여성들과 혼인하는 노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주인 쪽에서 노비와 양인의 혼인을 권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조정에서는 신분이 다른 결혼을 했을 경우 자식의 신분은 어머니를 따른다는 종모법이라던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른다는 종부법을 바꿔가며 실시해 노비수를 조절하려 했지만 실제로 양반가에서는 '일천즉천' 즉 부모 중 한쪽이라도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라는 관습으로 노비의 숫자를 늘려나갔습니다. 백광현이 살던 조선은 양반의 이익을 위해 노비를 재물 취급하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짜증나는 인물들처럼 보이는 이들은 평범한 조선 시대의 왕실 여인이자 사대부들이다.
젊은 시절 마의였다가 어의가 된 이명환(손창민)은 백광현 만큼 천재적인 의원이나 그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 보다 안전한 탕의가 되어 출세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치료에만 전념하는 어의로 만족하지 않고 삼사의 수장인 수의로 승진하여 각종 이권을 장악하고 재산을 불렸습니다. 백광현은 과부 서은서(조보아)의 유옹 수술을 반대하고 수의 고주만(이순재)의 부골저 수술을 반대하고 현종의 담석 치료나 대비의 발제창 치료에 안된다며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자신이 믿는대로 외과술을 실행합니다.
신분을 포기하고 강씨 혈손이지만 백씨로 살겠다는 그의 선택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어제 묘사된 현종의 장옹 치료 에피소드는 실제 숙종의 며느리이자 경종의 아내였던 세자빈 심씨(단의왕후)의 사례를 현종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단의왕후는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장옹을 앓았는데 병증이 깊어지자 백광현은 침으로 찢어 고름을 빼자고 주장합니다. 단의왕후의 장옹은 충수돌기염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극중 현종은 대장염으로 조금 더 심각한 질환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왕실 세자빈을 상대로 그 시대에 배를 째겠다고 나선 백광현은 무서우리 만큼 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의왕후 심씨 치료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백광현의 마지막 왕실진료입니다
무서우리 만큼 과감했던 백광현의 외과술 시도. 실존인물 백광현도 용감하긴 했지만...
나는 강씨가의 자손이지만 백광현으로 살겠다는 백광현. 강씨 집안의 많은 재산을 모두 털어 백성들을 치료하는 약방을 만들고 문음 제도로 벼슬을 받기 보다 의원이 되겠다는 그의 큰 뜻은 신분제도 유교적 가치관도 막을 수 없었던 한 위대한 의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것입니다. 천민 출신 아버지 백석구(박혁권)나 양반가의 강도준 모두 내 아버지라며 강지녕(이요원)과 함께 참묘하는 그가 그 시대 조선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무리는 아닙니다. 신분이 다른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걸어야했던 조선시대였으니까요.
한 마리 말과의 인연으로 어의가 된 남자.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이야기인데 왜 하필 판타지를 선택했을까.
드라마에 등장한 임언국의 치종지남은 중국, 일본, 조선 세 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외과술 서적입니다. 백광현의 임상이 기록된 '지사공유사 부경험방'은 현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기록을 토대로 외과의 백광현을 드라마에 끌어들인 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현대가 아닌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배경을 토대로 묘사가 되었다면 판타지가 아닌 실제 조선 시대에 기반해 연출되었으면 훨씬 더 의미있는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병훈 PD의 사극을 몹시 좋아합니다만 이번에는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많이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 드라마 '마의'는 다음주 월요일 마지막회 50회가 방송된다고 합니다.
728x90
반응형
'한국 드라마 이야기 > 마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훈 PD의 '자기 복제' 사극이 좋은 이유 (1) | 2013.03.27 |
---|---|
마의, 어의 백광현은 왜 금천현감이 되었을까 (5) | 2013.03.26 |
마의, 백광현이 찾아낸 백석구와 강지녕의 면천 방법 (1) | 2013.03.13 |
마의, 실존인물 백광현 보다 부각된 '출생의 비밀' (0) | 2013.03.12 |
마의, 의원 백광현의 인생 앞으로 남은 이야기는 (2) | 2013.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