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어의 백광현은 왜 금천현감이 되었을까

Shain 2013. 3. 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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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50회 이상의 장편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면 계절이 달라져 있습니다. 지난 여름 끝물에 제작되기 시작해 10월 첫방송을 하고 꽃이 한참인 봄에 마지막편이 방송되었으니 정말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한방외과의이자 '신의'라 불리던 의원 백광현의 삶이 방송되는 동안 알게된 것도 많고 흥미로웠던 역사적 사실도 많았습니다. 물론 극중의 백광현(조승우)과 강지녕(이요원)의 출생이나 사랑이야기는 백프로 창작이고 한방의학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뺀 여러가지 부분은 과장된 것이 많습니다만 조선 시대 의술과 의료정책에 대한 묘사는 많은 부분 뜻깊었습니다.

'마의'는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이병훈 PD 사극의 장점이 부각된 한편 단점도 만만치 않았던 드라마입니다. 아직까지 정통사극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조선왕조오백년(1983)'은 이병훈 PD의 노력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한 드라마였습니다. 반면 '민중사극'이라 불리는 이병훈 PD 특유의 퓨전사극은 사서 속 역사와 거리가 먼 역사의식이나 민중의식을 강조한 드라마가 많습니다. '마의' 역시 외과의로서 놀라운 능력을 드러낸 의원 백광현을 통해 생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의술의 진정한 뜻을 생각해보는 특별한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볼 것은 사서가 아니라 '의원 백광현'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한 마리의 말에서 시작된 의술이 사람을 살리는 의술로 발전하기까지. 마의 백광현의 흥미로운 이야기.

많이들 알고 있는대로 조선 시대의 의술은 왕실을 위한 의술이었습니다. 조선의 의료정책을 대변하는 삼사에는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가 있었으나 대민의료를 담당하는 혜민서는 자주 그 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왕실을 위한 의술이다 보니 왕족의 몸에 칼을 대는 외과술 보다는 안전한 탕약 중심으로 발전했고 백성들에게 약방은 돈없는 사람은 갈 수 없는 그런 곳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일평생 의원 한번 만날 일이 없다는 백성들의 탄식 만큼 약재도 몹시 비싸고 귀했습니다. 드라마 '마의'는 그런 조선시대에 비싼 약재를 쓰기 보다 직접 침을 들어 환자를 치료하는 백광현과 사설 약방을 운영하기 위해 애쓰는 강지녕을 끌어들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잘 몰랐던 조선 명종 시기의 의원 임언국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임언국의 '치종지남'은 중국, 일본, 한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남은 외과술 서적이라 합니다. 어머니를 치료하다 의원이 된 임언국은 '치종청'에서 백성들을 진료했습니다. 일본의 한 의학사학자는 임언국을 서양 외과술의 아버지인 페레와 비견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라 평가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동안 알려져지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거침, 곡침, 삼릉침, 인후침같은 즉 현대 의학의 '메스' 역할을 하는 다양한 침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각종 절개법이 고안되었다는 사실도 '마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내용들입니다.

어의가 된 외과술 제 1인자 그리고 약계의 수장이 된 그 아내. 의술과 민간의료 정책의 만남.

재미있게도 일부 시청자들이 황당하다며 지적한 드라마 속 의학 에피소드 대부분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실제 백광현의 임상이 기록된 '지사공유사 부경험방'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창작된 것들입니다. 숙휘공주(김소은)의 두창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처치법 역시 '두창경험방'을 비롯한 여러 서적을 근거로 연출된 것이고 진짜 숙종이 숙휘공주처럼 현옹 때문에 백광현에게 치료받은 적이 있습니다. 극중 인선왕후(김혜선)가 발제창으로 아팠던 것처럼 진짜 인선왕후도 12센티 길이로 세번 즉 천(川)자형으로 절개했단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12센티라면 현대에도 엄청난 크기의 종기였는데 그걸 백광현이 치료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방의학 그중에서도 한방외과술을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항생제와 마취약도 없던 과거에 어떻게 그런 엄청난 시술이 가능하냐는 의심 때문입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현대인들의 눈으로도 실존인물 백광현의 기록은 놀랍고 대단하단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백광현의 기록 만으로도 엄청난 '드라마'가 될 것 같단 생각 때문에 '마의'가 출생의 비밀이나 가상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 실존인물의 기록을 되살리면 안될까 바랐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굳이 제작진이 외과술 천재였던 실존인물의 삶 보다 '민간의료'나 '신분'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존인물 백광현의 임상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지만 굳이 '민간의료'를 선택한 이유?

마지막회에 등장한 '존애원'은 경북 상주시에 있는 조선 최초의 사설의료기관입니다. 강릉 지방의 약계가 의원도 약방도 충분치 않던 지방민들의 자구책이었다면 존애원은 가난한 주민을 치료하기 위한 민간 병원이었습니다. 조선은 중신 신분의 의원을 권세있는 양반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의료진이 궁했습니다. 행여나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원이 있다 해도 약재가 없어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간의료 정책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라 조선 초기 보급된 '향약집성방'이나 '의방유취'같은 책이 있긴했으나 전국의 백성들을 구제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엇 보다 의원이 없다는 게 큰 문제였죠.

실제 기록에서 백광현이 현감으로 내려가 근무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숙종은 유학자 출신이 아닌 백광현을 굳이 현감으로 내려보냈으나 화재사건이 발생해 금방 돌아와야했습니다. 사실 의관이면서도 현감이나 부사로 오래 복무한 사람은 백광현 보다는 광해군 때의 허임이 훨씬 유명합니다. 조정신료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침구경험방'으로 유명한 허임이나 '신의'라 불렸던 백광현을  지방으로 내려 보낸 것은 열악한 지방 의료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 싶었던 왕의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약계와 함께 이런 백광현의 모습이 조명된 것은 신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베풀어져야할 의술의 기본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겠죠.

지방 현감으로 내려간 백광현은 백성을 치료하고 의원을 양성한다. 백광현은 왜 현감이 되었을까.

'살린다'는 뜻의 활인서(活人署)가 한때 '살(殺)인서'로 불렸듯이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의 의료정책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광현의 놀라운 임상기록을 극화한 것처럼 제작진에서 그 미미한 조선시대 의료정책을 홍보하고 싶어 이런 민간의료 정책을 묘사한 것일까요. 그것 보다는 극중 백광현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치료한 것처럼 돈이 있든 없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술의 기본이고 국가 의료정책의 혜택은 특별한 신분 뿐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널리 베풀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이해한다'는 사극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라 봅니다.

한 마리 말과의 인연으로 마의가 되고 결국엔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 된 백광현. 드라마 속에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함부로 침을 쓰는 여러 의원들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의술 자체에만 매진하는 최형욱(윤진호)같은 사이코도 등장하구요. '사람을 살리는 침'이란 결국 별것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신분이나 지위를 보지 않고 그 사람 자체 만을 보고 이해하며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연기자들과 제작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게 정말 끝이라니 이병훈 PD의 옛날 드라마가 많이 생각나는 마지막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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