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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유산, 웃프기는 한데 공감은 안되는 강진 기옥 커플

Shain 2013. 5. 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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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MBC가 KBS를 앞선 것은 아주 간만인 것같습니다. 삼대가 함께 사는 내용으로 연출되던 주말가족극은 KBS의 독점 영역처럼 여겨져왔고 동시간 경쟁 드라마가 없어 늘 독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곤 했습니다. 지난주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이 '최고다 이순신'을 앞서면서 단단히 지켜오던 KBS 주말극의 아성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경쟁사의 드라마가 비호감이란 뜻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백년의 유산'의 인기가 폭발적이란 뜻도 됩니다. '백년의 유산'은 누구나 인정하면서 즐겨 보는 막장드라마라고들 하니까요.

돈 밖에 모르는 못된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하고 전 시누이가 삼년 동안 짝사랑하던 남자와 연인이 되는가 하면 재벌가 혼외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새며느리로 들였다가 모든게 폭로되자 전 며느리와 재결합시키겠다고 나서는 방영자(박원숙) 가족은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혼자 만의 비밀 때문에 아들 세윤(이정진)에게 집착하고 아들의 연인 민채원(유진)을 험하게 몰아부치는 백설주(차화연)도 기분좋은 캐릭터는 아닙니다. 방영자 가족과 백설주가 욕을 먹는 건 그런 '막장스런' 행동 때문이죠.

딱히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한 건 없는데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강진, 기옥 커플.


반면 딱히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는데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밉상이 된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바로 62세 총각 강진(박영규)과 34세 처녀 엄기옥(선우선) 커플입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티격태격하며 정을 쌓던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법적으로 둘 다 미혼이고 공식적인 애인도 없으니 사귀어도 될 것 같지만 문제는 강진의 나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강진은 기옥의 아빠뻘로 기옥의 엄마인 김끝순(정혜선)과 불륜이라 오해받았을 정도입니다.

강진 본인도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혼자 피아노를 치며 코믹한 궁상을 떨고 기옥은 기옥대로 어떻게 안되는 마음에 울고 불고 난리를 칩니다. 제대로 애절한 사랑이 되려는지 배경음악 조차 무려 '남몰래 흘리는 눈물'입니다. 저 나이 쯤 됐으면 뭔가 유들유들하게 감정을 잘 처리하고 좋아서 못견디겠으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도 같은데 둘 다 연애경험없는 '모태솔로'들이라 그런지 진지한 감정만 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쩐지 웃기면서도 서글퍼서 '웃프다'는 요즘 말이 딱 어울립니다.

30세 나이차이나는 커플에는 도끼눈을 뜨게 되는게 평범한 사람들의 통속이다.


'백년의 유산'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이렇게 통속적인 면을 제대로 짚어낸다는 점
같습니다. 강진, 기옥은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리 첫사랑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철없는 막내딸이라고는 해도 기옥 서른 넘은 성인이니 자신의 사랑을 책임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유난히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첫사랑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기옥이 강진을 선택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습니다. 돈보고 무작정 달려든 속물스런 아가씨도 아니니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강진 역시 기옥이 속된 말로 '영계'라서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너무 오래 혼자 살아 홀아비 냄새가 나는 강진을 적극적으로 챙겨주고 유산 상속경쟁에 끼워준 것만으로 호감이 생긴 강진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세상에는 실제로 그런식으로 사랑하는 연인들도 다수 있습니다. 무조건 색안경끼고 볼 일은 아니라는 점이 머리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고정관념이라면 고정관념이랄까 내 동생이나 가족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쉽게 찬성해줄 수가 없습니다.

미혼남과 이혼녀의 사랑처럼 무조건 색안경끼고 볼 일은 아니라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이혼녀가 미혼남성을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를 드라마 속에서는 응원하면서도 실제로는 거북한 눈길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고 자기 자식 밖에 모르는 시어머니의 못된 짓을 손가락질해도 시집살이 당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눈감고 모른척하거나 다들 그렇게 산다며 넘어가는게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담 양춘희(전인화)에게 화류계 여성이라 손가락질하는 도도희(박준금)나 공강숙(김희정)의 모습도 어디선가 많이 본 통속적인 모습들입니다. 이성적으로는 틀린 걸 알고 공감하면 안되는데 아 보통 저렇지라고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억 백억하면서 엄팽달(신구)과 김끝순에게 살살거리고 양춘희와 민효동(정보석)을 못살게 구는 두 며느리를 보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지만 백억이라는 돈과 백년이어온 가업 중 어떤 것을 선택할거냐고 물어보면 '백억'이라 대답할 사람이 훨씬 많은게 현실인 것처럼 엄기옥과 강진의 애틋(?)한 사랑이 이해는 가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려는 엄기춘(권오중)의 분노에 공감하게 되는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늙은 제비' 운운하는 건 너무했다 싶어도 어떤 오빠가 저렇게 나오지 않을까 싶어지더군요.

웃프기도 하고 이해는 하는데 밀어주기는 좀 힘들 것같은 강진, 기옥 커플.


엄기옥과 강진 두 사람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가지 더 있긴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삼십세가 넘는 나이 차이가 나도 잘 사는 커플들 많을 겁니다. 그러나 첫사랑의 여운이 길어도 꿈에서 그리던 이상형과 현실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은 꿈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강진과 기옥 모두 음악하는 사람들이라서 정서적으로 잘 맞다는 설정인 건 알겠는데 살아온 환경이 비슷한 또래들이 만나도 생각의 차이를 넘지 못해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기옥과 강진의 차이가 과연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애일까요.

또한가지 불편한 부분은 은연중에 서른살 넘은 엄기옥을 아무와도 결혼하기 힘든 여성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입니다. 아쉽지만 나이먹은 여성은 결혼하기 힘들다는 통념을 육십세 총각 강진과 엮는 식으로 묘사한게 아닌가 싶긴 하더군요. '백년의 유산'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솔로가 많은 요즘 시대를 생각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커플인 강진과 엄기옥. 어쨌든 드라마에서 가장 '웃픈' 커플인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자면 재혼 커플인 채원, 세윤 보다도 훨씬 넘어야할 산이 많아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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