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미스김과 장규직의 비극을 낳은 비정규직 보호법

Shain 2013. 5. 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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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종영된 '직장의 신'은 드라마의 재미와는 별개로 한국의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현실을 끄집어낸 드라마입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일하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늘 불안한 고용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비정규직들의 이야기죠. 극중에서 나레이션되는 대로 IMF 이후 한국의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800만을 육박합니다. 과거에는 고정도(김기천) 과장처럼 평생직장을 꿈꾸며 직장과 함께 인생을 설계했고 마무리했지만 현대인들은 누구나 언제든 짤릴지 모르는 직장생활을 감수하고 삽니다.

드라마 속 장규직(오지호)의 어머니 전미자(이덕희)는 10년 넘게 근무한 직장에서 왜 짤려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절규했고 남편(정원중)과 갈등했으나 끝끝내 화재사고로 죽음을 맞고 맙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장규직의 가정은 산산조각났고 미스김(김혜수)과 화재사고 현장에 있었던 무정한(이희준)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죠. 전미자는 IMF 이후에 취업한 세대가 아닌 주인공들의 부모님 세대로 평생직장에서 IMF로 인한 정리해고, 비정규직 보호법을 모두 겪은 캐릭터인듯합니다.

비정규직의 불합리를 모두 겪은 캐릭터 전미자. 비정규직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닌 가정의 불행이다.


비정규직은 어느 직종이든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비정규직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은행권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IMF 때 여러 은행들이 합병되는 과정에서 흡수되는 은행 쪽의 직원들은 '갑' 은행 쪽의 불합리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여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극중에서 잘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전미자 계장이 그 나이에도 계약직인 것은 16년전 IMF 때 은행이 합병되면서 계약직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능력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당시에는 다들 그런 처지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많은 은행에서 2000년대 이후엔 많은 필요인력을 계약직으로 충당했습니다. 특히 천명 가까이 근무하는 은행 고객센터는 계약직과 파견계약직으로 채워 일을 시켰습니다. 같은 근무처에서 일을 하고 때로는 훨씬 더 많은 업무에 시달리지만 정규직, 계약직, 파견계약직들의 보너스, 수당 조건이 달라서 월급받는 날이 되면 몇배씩 차이나는 금액에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죠. 그런 비정규직들이 또한번 파란을 겪게된 것이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입니다.

지금도 '비정규직 보호법'의 철폐와 개정을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법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고정 수입원을 가질 수 없는 한 개인에게도 큰 문제이지만 사회전반적으로도 고용안정은 중요합니다. 비정규직의 증가가 결혼을 기피하게 하고 저출산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극중 장규직의 가족이 보여준 것처럼 비정규직 파란은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한 가정이 붕괴되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비정규직이 가정을 갖기란 두려운 일입니다. 하다 못해 정주리(정유미)처럼 학자금 대출 갚기 조차 벅차죠.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의 원래 취지는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원칙적으로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게 함으로써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었으나 이 법령은 시행과정에서 다른 식으로 적용됩니다. 극중 전미자 계장과 미스김이 비정규직 보호법 철폐를 외치며 시위하던 것이 2007년으로 설정되어 있죠. 대한은행은 DH은행으로 변신하면서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계약직들을 의무 고용하게되자 전미자 계장을 해고한 것입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쉽게 쳐내는 핑계가 되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과정에서 산산조각난 것으로 설정된 장규직의 가족.


드라마 속에서는 한 가정의 붕괴와 미스김이라는 캐릭터의 상처로 묘사됐지만 실제로 '비정규직 보호법'의 파장은 생각 보다 컸습니다. 많은 은행은 이 법안을 지키면서도 자신들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너나할 것없이 '무기계약직'이란 특별한 근무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극중 계약직 왕언니 박봉희(이미도)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설정되었죠. 정규직은 아니지만 계약해지는 없고 정규직이지만 근무 조건이나 연봉 등은 계약, 파견직과 거의 똑같은, 이런 형태의 정규직을 '중규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극중에서도 미스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듯 이 법이 시행될 때도 마찰이 심했습니다. 고용안정 보다는 또다른 차별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천명이 넘는 직원을 대량해고하는 핑계로 이용된 이 법안이 정말 비정규직을 위한 법인지 많은 의문을 낳았죠. 각 회사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대비해 마련한  '무기계약직'에 대한 고용규정은 현장근무 경험이 많은 노련한 인력을 10년이 지나도 같은 월급에 부려먹을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경력 10년차의 직원 월급이 10년전과 똑같고 전혀 오르지 않기도 합니다.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이냐 2년 지나면 짤리는 계약직이냐. 여전히 법은 시행중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법안의 개정 또는 철폐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직장의 신'은 이런 현실을 주인공의 과거 속에 꽁꽁 숨겨두면서 주인공 미스김의 미스터리한 과거와 독특한 캐릭터가 직장인들의 슬픔과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국내 최초 자발적 비정규직'인 미스김이 스스로 전미자 계장과 똑같은 계약직을 자처한 것은 친하던 직장 선배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인 동시에 비정규직 시스템에 대한 저항인 셈이죠.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시대.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62.8%로 열악하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근무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비정규직이야말로 우리들이고 또 우리들의 진짜 이웃이고 그들 역시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근로자들이죠. 보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한 드라마틱한 재미 이외에 드라마에서 금기시되던 소재를 TV 안으로 끌고왔다는 점에서 한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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