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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행복의 씨앗을 찾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

Shain 2013. 6. 2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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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출생의 비밀'이 8.2퍼센트의 낮은 시청률로 마지막회를 방송했습니다. 그동안 날카롭게 대립하던 주인공들의 속마음이 폭로되고 '돈' 보다는 '가족'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따뜻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경쟁에서는 실패한 셈입니다. 이 드라마의 경쟁작이던 '백년의 유산'은 자축 분위기로 시끌벅적합니다. 포털사이트에는 출연배우들의 종영 소감과 분석기사가 잔뜩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백년의 유산'을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양쪽 모두 시청하던 입장에서는 소위 '막장' 쪽에 먼저 눈길이 가더군요.

누구에게나 새로 태어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출생의 비밀'은 단순했다.


결말만 두고 보자면 '출생의 비밀'은 실패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 이 드라마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가진 주인공 정이현(성유리)이 기억상실증을 겪으며 벌어진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추구하던 내용은 뭔가 대단한 '비밀'이나 미스터리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행복의 씨앗'은 주변에 늘 있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기위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대단한 볼거리나 엄청난 반전이 있을 수가 없었죠.

어제 방송된 마지막회가 완전히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막장 소재를 선택하고도 '명품'이라는 칭찬을 얻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드라마도 많고 인기 드라마 흥행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훌륭한 평가를 받는 드라마들도 많은데 '출생의 비밀'은 소재의 독특함이나 드라마 흥행공식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차별화되었으나 뒷심이 많이 부족한 편에 속합니다. 무엇 보다 홍경두(유준상)의 과장된 행동이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설득력있게 묘사하지 못한 것은 지적할만 합니다.




또 홍경두 이외에 상징적인 상황 때문에 캐릭터들이 각각 생명력을 갖지 못한 것도 많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나마 주연급들은 마지막회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할만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나 심연정(조미령) 캐릭터는 끝까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정이현이 떠나고 홍해듬(갈소원)을 혼자서 길러둔 홍경두는 홀아비로 살면서 심연정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가 봐도 실질적인 해듬이 엄마 노릇을 했던 캐릭터인데 너무 가볍게 버려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이현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홍해듬이 자기 딸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에도 처음에는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츰차츰 아이 때문에 마음이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또 욕심히 나서 홍경두에게 빼앗아왔지만 바쁜 회사일과 기억찾기에 바빠서 홍해듬은 마지막에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매일매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줘야할 아기를 혼자 놀게 했으니 어떻게 보면 심연정에 비해 엄마로서 해준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극중 상황상 낳기만 하면 엄마냐라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죠.

내가 바로 그 '행복의 씨앗'이에요. 홍해듬, 홍경두가 보여준 따뜻한 메시지.


그러나 마지막회에서 보여준 따뜻한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추구하던 주제에 가장 알맞은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첫회에서 등장한 '행복의 씨앗' 즉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출생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정이현은 대한민국 한해 예산에 맞먹는 비자금을 조성한 죄를 자수하며 해듬이의 엄마로 다시 태어났고 홍경두는 빚지고 자살하려했던 과거를 벗어나 해듬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형을 죽이고 예가그룹을 차지하려 했던 최석(이효정)은 자신의 죄책감을 알츠하이머란 퇴행성 질병으로 표현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최국(김갑수)이 차려준 한끼 밥상에 눈물을 쏟은 최기태(한상진)는 아버지처럼 늘 화내고 초조한 표정으로 모든 일을 망쳐왔지만 아내 선영(이진)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을 부탁했고 선영은 친구 이현과 박수창(김영광)까지 배신했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박수창 역시 친구들을 사랑했던 한 남자가 아닌 다시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새로운 선택을 했죠. 문제거리 아들 최기중(진혁)은 아이가 된 아버지의 좋은 친구로 박본부장은 좋은 아버지로 거듭나기 위해 죄값을 치릅니다.

드라마 속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 '출생'이란 말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 돋보인 드라마.


이 모든 것은 평생 딸 이현의 존재 조차 모르고 살았으나 갑자기 태어난 딸 때문에 아버지 노릇을 해보기로 작정하고 이복동생 때문에 위험에 처한 딸을 되찾고 잘못된 일을 고치려고 했던 최국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해듬이의 말처럼 이현과 경두, 최국은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롭게 출생할 수 있던 비밀은 잘못을 바로 잡고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는 그 순간에 있었던 것입니다. 홍경두에게 사기치고 도망간 종태(신승환) 조차 광숙(박은지)을 다시 만나다니 출생의 비밀은 간단하면서도 오묘합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흥행공식은 따르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보여준 방법은 극단적이지 않고 편안합니다. 또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출생(出生)'이란 단어의 해석도 독창적입니다. 거친 겉모습 속에 숨겨진 여린 마음, 가족들에 대한 사랑 덕분에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의 의미를 무리하지 않게 보여준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그런 은은한 나레이션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 보다 해듬이의 웃는 모습 만 봐도 피로가 싹 풀릴 정도로 즐거웠다는 점은 잊혀지지 않을 것같습니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종종 만들어졌으면 싶은 타입의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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