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굿닥터, 서번트 증후군에 대한 판타지와 현실 사이

Shain 2013. 8. 14. 11:34
728x90
반응형
대학 시절 캠퍼스에서 화제가 된 학생이 한명 있었습니다. 특별한 재능으로 미술학도가 된 그 학생은 나이도 다른 학생들 보다 많았지만 걷지 못해서 휠체어를 이용했고 머리가 백발이 된 어머니가 항상 그 학생의 휠체어를 밀어주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미술학도가 된 그 학생을 칭찬했지만 같이 학교를 다니고 수업받는 모습을 지켜본 학생들 대부분은 나이든 그의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걷는 것 조차 힘겨워보이는 나이에 딸을 부축해 휠체어에 태우고 아침 마다 같이 등교하고 같이 수업듣고 함께 집으로 가는 할머니의 모습에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번트 증후군이 '완치'되어 의대를 졸업한 것으로 설정된 박시온. 그는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장애는 남들 보다 조금 불편한 것일 뿐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다만 능률을 추구하는 이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미술을 공부하기로 작정한 그 학생을 위한 도우미가 학교에 있다면 나이많은 할머니가 직접 휠체어를 미는 수고를 덜 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 그 학생을 책임지고 도와주기라도 했다면 훨씬 더 수월했겠지만 아시다시피 가족도 아닌 개개인에게 그런 고통을 분담할 책임은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내 한몸과 가족을 챙기고 건사하기에도 벅찬 곳입니다. 인정머리없다고 탓할 일은 아니라는게죠.

소아외과 부교수 김도한(주상욱)은 차윤서(문채원)에게 '결핍을 가진 천재가 영웅이 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선을 긋습니다. 최우석(천호진) 병원장의 부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박시온(주원)을 레지던트로 받아들인 김도한은 인정머리없거나 인간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의사이자 환자를 살리고 싶어하는 누구 보다 따뜻한 사람이고 장애를 가졌다고해서 차별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환자들의 목숨이 달린 병원에 박시온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핍을 가진 천재가 영웅이 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하다.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개인적으로 자폐증 치료에 대해 공부해본 경험이 있기에 중증 자폐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자폐가 낫는다'는 말 자체가 판타지죠. 요즘은 정신 장애와 자폐 성향을 자폐증과 헷갈리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진짜 자폐증은 신체적인 장애로 몸이 불편하듯 뇌신경에 장애가 발생한 일종의 질환이라 보면 됩니다. 신체가 불편하면 각종 특수 장비를 이용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재활훈련을 하듯 자폐증 어린이에게도 사회성 치료, 애착 치료 등 적응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개 자폐증은 '치료'나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훈련'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증 환자를 직접 본 적 있는 몇몇 시청자는 의사가 되길 원하는 박시온의 캐릭터를 보며 사람들이 혹시 자폐증이 '낫는다'는 환상을 갖는 건 아닐지 걱정하기도 합니다. 분명 자폐증의 정도와 범위가 다양해 박시온처럼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드라마가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 중 사회생활에 적응한 케이스와 일반적인 자폐증 환자의 차이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고 극중 의사들도 박시온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서번트 증후군'에 대한 편견.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자폐증'과 '서번트 증후군'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고 잘 알고는 있으나 그들이 의사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입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또 박시온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째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지를 병원 내부의 권력싸움이라는, 약간은 과장된 설정으로 보여주기도 하죠. 한편으론 어릴 때부터 박시온을 돌봐주었고 시온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최우석 교수를 통해 박시온같은 사람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최우석 교수는 시온의 가능성을 전혀 믿어의심치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온을 직접 겪어보고 그와 의사소통하기 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그를 판단하고 박시온으로 인해 발생한 불편과 어려움을 불평하기 바쁩니다. 물론 박시온 덕분에 환자가 살았고 그의 지식이 필요했다는 장점을 인정하기 보다 왜 박시온이 안되는지를 따지는 그들의 태도가 모두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병원의 입장과 동료 레지던트들의 우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부모 입장에서 '의사 박시온'을 반대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주변인들의 '도움'과 '배려'에 그 해답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공공건물이나 큰 건물에 전용 엘리베이터와 경사진 통행로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딸을 위해 휠체어를 미는 할머니를 보면 왜 사회에서 저런 경우를 위해 도우미를 배려해주지 않을까 한번쯤 생각합니다. 박시온이 의사가 되고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의 장애와 문제를 도와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즉 김도한과 차윤서가 감싸주지 않고 도와주지 않으면 박시온이 한 사람의 의사로 거듭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박시온이 편견으로 차별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부모라면 박시온에게 맡길 수 있을까?


굳이 주원이 연기하는 '서번트 증후군'의 실제 사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현실로 봤을 때 박시온같은 인물이 외과의가 된다는 건 백프로 판타지에 가깝죠. 판타지와 현실이 다르듯 '가능성'과 '실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분명 박시온에 대한 차갑고 냉정한 태도와 반응은 장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냉정한 현실이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드라마가 로맨스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박시온을 '문제아'로 만드는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꼬집어주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또 아무리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드라마 속 박시온이지만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는 다른 의사들과 같습니다. 정말 박시온이 의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그런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하니 박시온에게도 주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숙제인 셈입니다. 박시온이 자신을 경계하는 의사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사람을 살리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통하는 순간 아닐까 생각되네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