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80년대 중후반 '달려라 하니(1988)'같은 국산 애니가 나오기 전까지 TV에서 방송되던 애니메이션도 그 뒤를 이어 현재까지 방송중인 애니메이션 다수가 일본 애니입니다. 요즘도 한국 어린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바꾸고('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한별'처럼) 몇가지 장면은 삭제도 합니다만 어릴 때는 전혀 몰랐던 일본의 풍습과 문화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더군요. 복날 장어를 먹고 신년에 소원을 빌러 신사에 가고 정좌 자세로 밥그릇을 들고 식사하는 장면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문화가 다르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이 있긴 있더군요.
SBS '수상한 가정부'는 첫회부터 우리 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과한 연출로 구설에 오른 드라마 입니다.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한다는 무표정한 가정부 박복녀(최지우)나 조각조각난 네 남매의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선 다소 충격적인 연출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 상황 자체가 우리 나라에선 납득이 힘듭니다. 흡연하고 남자친구 사귀고 왕따 당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랄까요? 어제 방송된 장면에서도 아이들의 아빠인 은상철(이성재)이 옆집 아줌마(방은희)에게 무릎을 꿇더군요.
일본은 학생들이나 자식 혹은 아랫사람이 잘못을 하면 윗사람이 무릎꿇고 정중하게 엎드리며 사죄하는 하는 방식이 유명합니다. 그 정도 사과 앞에서는 상대방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야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어느새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한국 드라마에서 그걸 그대로 가져오는 걸 여러 차례 보게 됩니다. 몇번씩 지적하지만 무릎 꿇는 사죄는 우리 나라의 '정중한' 사과 문화도 아니거니와 아무리 상대방이 요구했다 해도(요구한 자체도 좀 웃기더군요) 아이들 보는 앞에서 진짜 무릎까지 꿇으면 상대방은 오히려 날 망신주고 싶어서 이러나 싶을 겁니다.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상철 가족의 문제로 지적한 여러 부분들, 아버지 은상철의 책임감 결여라던가 엄마 없이 방황하는 남매들의 문제점은 일본이나 우리 나라 공통으로 골치를 앓는 사회문제들로 특히 큰아들 은두결(채상우)의 삐뚤어짐은 어디선가 흔하게 읽었던 뉴스 기사 속의 청소년들 모습 그대로 입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친구들과 주먹다짐하고 이성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탈선하고 막나가는 두결 캐릭터를 보며 실제로는 저거 보다 더한 사고를 치는 아이들도 많다고 반응하실 분들도 많겠죠.
어제 방송분에서는 박복녀가 살인자라는 의문의 편지를 받은 두결이 박복녀에게 추궁하다 복녀의 가슴을 만지고 옷을 벗게 하는 등 TV에서 보기엔 눈쌀이 찌푸려지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일본 원작에서는 '수상한 가정부'에서 보여준 복녀와 두결의 상황 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한 장면이었다고 하지요. 오기부리는 한 10대 청소년이 성적 호기심과 심술이 발동해서 그런 상황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원작 속의 장면은 충분히 이해가 갔으리라 짐작은 갑니다. 문제는 그런 극단적인 정서와 연출이 '먹힌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이라서 가능했다는거 죠.
우리 나라에서 그런 자극적인 장면이 받아들여지려면 무조건 들이댈게 아니라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 아이의 사춘기 방황을 묘사하기 위한 그 장면을 두고 '아역배우가 최지우 가슴을 만졌다'는 기사를 자극적으로 쏟아내는 우리 나라 언론 앞에서 10대 청소년의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극단적인 장면으로 화제를 끌고 싶은 건지 그 장면을 연출한 본래의 의도 따위는 이미 훨훨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일본 드라마를 어떻게 똑같이 옮기느냐를 걱정했을 뿐 목적 따윈 이미 예전에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아무리 인기있는 드라마도 시청률 20%가 넘기 힘든 나라입니다. 2013년 상반기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갈릴레오'도 22.6%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수상한 가정부'의 원작 '가정부 미타(2011)'가 4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지만 드라마 '갈릴레오'의 내용을 칭찬하는 한국 시청자들도 '가정부 미타'는 호평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가정부 미타' 자체가 일본를 날카롭게 꼬집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도 한국인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이었단 뜻입니다.
거기다 '수상한 가정부'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 상당 부분 많이 반영된 드라마로 시키는 건 뭐든지 한다는 만능 가정부 박복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던 로봇 메이드의 변형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우연찮게 성인 여성의 가슴을 만지게 되는 소년의 로망같은 코드는 흔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한 장면이죠. 아무리 일본 애니를 보고 자랐어도 일본 문화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한국 시청자들이 그런 사연이 담긴 캐릭터를 보고 무얼 느끼고 생각해야하는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정체불명의 리메이크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선정적인 태도죠. 특히 '수상한 가정부' 채상우, 최지우 가슴만졌다 ' 같은 기사는 도대체 왜 이 드라마를 두고 사람들이 혹평하는지 그 문제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9년생으로 올해 15살인 채상우가 연기한 은두결은 성적 호기심을 가진 문제아입니다. 전체적인 전개상 그의 행동이 모두 납득은 안가지만 어쨌든 그가 맡은 연기일 뿐인데 기사는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보다 '가슴만졌다'는 자극적인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작자들은 원칙적으로 이런 장면을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해서 찍어야 하고 원칙적으로 아역배우의 상담이 필요한데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해서 찍었다면 언론의 관심이 그 자극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고언론 쪽에서도 아역배우를 대상화해서는 안되는 의무가 있습니다. 굳이 그 많은 장면중에 '가슴만졌다'는 장면을 기사화시킨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클릭하고 여자배우와 아역배우에 대한 댓글을 달길 원했다는 이야기겠죠?
무엇보다 이 기사는 이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의 리메이크가 잘못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 입니다. 원작에서는 처제 우나영(심이영)이 은상철의 새로운 아내가 아닐까 짐작됩니다만 우리 나라는 법적으로 처제와 형부의 결혼을 금지하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를 넣은 듯합니다. 이런 식으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려면 장면 하나하나 세세하게 고려해서 뜯어고쳤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리메이크를 추진하는 바람에 그 장면이 필요한 이유 보다 선정성 만이 부각되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언론의 관심은 일탈 행동을 하는 아역 캐릭터에게 집중되어 버렸죠.
정말 이 드라마가 지적하는 가정의 붕괴를 꼬집고 그들의 행복한 재결합을 그리고 싶었다면 이런 식의 무책임한 리메이크를 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15세의 아역배우들은 왜 이런 기사의 뜬금없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열연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3위의 주인공이 된 배우들은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수상한 가정부'는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아무거나 수입해서 리메이크하면 역풍이 거세다는 증거로 오래 남을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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