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보다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동안 같이 살고 싶어서 혼자 사는데 지쳐서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크고 작은 결혼의 이유 중 많은 부분에는 지금과는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현대인들은 결혼에 회의적입니다.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니라 가끔은 '일 더하기 일이 마이너스'가 되는 결혼을 눈으로 보고 느끼며 자랐기 때문 이죠. 더 나아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현상 유지라도 되면 좋겠는데 세상에는 기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다는 걸 서른쯤이면 깨닫게 됩니다.
'사랑해서 남주나'에는 자식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하는 부모 정현수(박근형), 홍순애(차화연)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부모 송호섭(강석우)이 등장합니다. 은퇴하고 재민(이상엽)과 함께 사는 정현수는 아침 마다 밥을 짓고 국과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와서 재민을 챙겨주는 안쓰러운 부모고 홍순애는 자신의 이혼 때문에 마음고생한 자식들에게 뭐라도 더 주고 싶어 안달하는 반찬가게 아줌마입니다. 반면 송호섭은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온 무책임한 아버지지만 아내가 아프자 며느리에게 반찬하러 오라고 독촉을 하죠.
그러나 정현수와 송호섭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자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 입니다. 밖에서 낳아왔기 때문에 누나들에게 눈총을 받는 재민이 안타까운 정현수는 서른 한살이 되도록 번듯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는 재민에게 답답을 토로합니다. 볼 때 마다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늘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결혼한다는 말에 공무원 시험이라도 보라고 조언해봤지만 요즘 청년들에겐 그 마저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합니다.
송호섭은 정현수와 달리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는 아버지입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초인종 소리가 나도 밖에 나가보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인 송호섭은 간만에 본 송미주(홍수현)에게 기껏 하는 질문이 승진했냐 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한 미주라도 계약직이면 승진할 수 없다는 걸 알기나 하는건지 그거 보다 더 얼마나 열심히 살라는 것인지 건성건성 '열심히 하라'고만 할 뿐입니다.정년퇴직했다고 자랑하는 아버지한테 답답한 미주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주 뿌듯하시겠다'
정도죠.
홍순애, 정현수 가족의 고민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직 판사인 정현수가 예상 보다 부유하지 않은 것은 의외라면 의외지만 그의 딸 유진(유호정), 유라(한고은)의 고민이나 가정문제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이죠. 이혼 가정의 크고 작은 갈등이나 혼자 살게 된 노년의 남녀가 겪는 모습들은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특히 결혼하고 싶지만 쓴 눈물을 삼키는 재민과 미주는 흔하디 흔한 요즘 젊은이들이라 눈길을 뗄 수가 없더군요.
반면 미주, 재민과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은하경(신다은)과 은하림(서지석) 집의 고민은 솔직히 와닿지는 않습 니다. 큰아들 하림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는다는 것이 싫은 이혜신(유지인)은 집안일을 돌봐주는 신수정(최수린)이 가끔 주제 넘는다며 날카롭게 굴고 아이들의 고모인 은희자(정재순)가 얹혀살지도 모른다는 잠재적인 갈등 요소가 있긴 합니다만 그들 가정에서 경제적인 문제는 별로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아마도 미주나 재민 둘 중 하나와 얽히게 되서 결혼을 결심하면 그때도 돈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을 집안입니다.
지난주에 재민과 미주가 이별하는 과정을 정말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습니다. 재민은 하경의 운전기사가 되었습니다. 근무 첫날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하경을 늦게까지 기다렸고 그 때문에 미주와의 중요한 약속에 늦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미주를 소개시켜주기로 한 날에도 하경의 일을 돕다 늦어버렸고 그 사이에 미주는 재민에 대한 마음을 접었죠. 보는 내내 저 남자는 왜 어떤 상황인지 솔직하게 말도 안하고 전화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직장일을 시시콜콜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도 이해는 가더군요.
미주는 미주대로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미주는 부모의 이혼을 보았기에 아무리 사랑으로 결혼했어도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도 이혼했지만 아버지 호섭과 결혼한 새엄마 연희(김나운)도 행복하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나마 아버지는 정년퇴직할 직장이 있었고 새엄마도 돈을 벌었지만 재민과 결혼하면 직장 마저 불안한 상황입니다. 울면서 매달리는 재민 때문에 마음을 돌렸다가 프로포즈를 바람맞힌 그때처럼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 재민에게 실망하고 '선물같은거 신경쓰지 말라'는 재민의 말에 이게 아니다 싶어 집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어렵게 결혼을 선택하는 것인데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재민과 결혼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미주는 란제리 파티를 즐기던 친구들처럼 든든한 부자 부모를 둔 것도 아니고 평생 미주를 먹여살릴 괜찮을 남자를 바랄 만큼 뻔뻔한 여자도 아닙니다. 그런 미주의 선택을 두고 상의 누군가는 '돈' 때문에 남자를 차버렸다고 말하겠지만 독한 미주의 선택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입니다.
미주가 재민에게 보낸 문자는 어딘가 모르게 참 서글펐습니다. 지지부진한채로 시간만 끌다 서로한테 상처만 주고 끝내는 헤어지게 될 거라는 말. 더 이상 재민씨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말. 세상 모두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 만큼 어긋나는 느낌. 가끔은 하나와 하나가 만나도 둘이 되지 않고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아픈 교훈을 곱씹으며 서로를 포기 하게 되는 마음. 어디선가 보고 느꼈던 현대인들의 아픈 사랑이 유난히 공감이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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