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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남주나, 어쩐지 공감가는 전처와 후처의 기묘한 동거

Shain 2013. 11. 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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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강석우 씨는 매력적인 미남 탤런트의 대명사로 멜로 영화의 단골 주연배우였습니다. 특히 故 곽지균 감독의 영화 '겨울나그네(1986)'에서 보여준 젊은 모습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이 여전히 많죠. '겨울나그네'에서 보여준 민우라는 여린 캐릭터를 생각하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아줌마(2000)'의 장진구는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파격적인 변신이었습니다. 부드럽지만 우울한 느낌의 미남 청년은 어디가고 누구나 밉쌀스럽게 생각할만한 중년의 느물느물한 아저씨가 나타났는데 더 재미있는건 장진구의 배역이 딱 맞춘 옷인듯 강석우에게 딱 어울리더라는 것 입니다.

멜로 주인공에서 밉상 남편으로. 어쩌면 사랑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이런 것일까.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전임교수 자리를 사면서도 고졸인 아내를 무식하다며 무시하는 장진구의 모습은 당시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비난을 받은 동시에 풍자적인 그의 캐릭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아내에게도 버림받고 첫사랑에게도 버림받는 그의 마지막을 보며 고소하다며 웃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운명에 휩쓸리는 배역이 어울리더니 어쩌면 그렇게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했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혼자들이 꿈꾸던 결혼과 기혼자들이 말하는 결혼도 강석우의 변신처럼 괴리감이 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꿈꾸는 결혼과 그네들의 부모가 직접 겪고 있는 결혼이 무척 다르듯이 말입니다. 미주(홍수현)와 재민(이상엽)이 애틋한 이별을 하고 유뷰남 윤철(조연우)과 유라(한고은)가 불륜으로 마음고생하고 있지만 그들이 결혼해서 보여줄 미래가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불륜으로 결혼한 송호섭(강석우)과 연희(김나은)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애절한 사랑을 호소하는 불륜 커풀의 미래는 어쩌면 송호섭 이연희가 아닐까.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아버지 송호섭이 아내 순애(차화연)와 헤어졌을 땐 그만큼 연희가 좋았을테고 딸 은주(남보라)를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뻔뻔하고 철없는 성격으로 보아 윤철이나 유라 만큼 진지하게 고민을 하진 않았을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고 자식들 가슴에 상처를 주면서 재혼했을 땐 오로지 자기 감정이 중요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지금 퇴직하고 집에서 놀면서 연희의 속을 뒤집어놓는 송호섭에게는 젊은 시절의 사랑 따위는 전혀 남아있지 않은 듯합니다.

이기적인 남편을 둔 전처와 후처의 공감

극중 인물들 중에는 부모의 불륜으로 아픈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만큼 관계도 깔끔하면 좋으련만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야합니다. 강박증에 걸린 듯 완벽한 가정에 집착하는 유진(유호정)이나 불륜남 윤철과의 관계에서도 바람피운 아버지 정현수(박근형)을 떠올리는 유라, 누나들의 눈치를 보는 재민이나 길러준 어머니와 낳아준 어머니 둘 모두를 안타까워하는 미주나 늘 시끄러운 부모 때문에 짜증내는 은주(남보라)가 그렇습니다.

딴 사람을 찾아 떠나간다고 무조건 행복해진 않습니다. 남편 때문에 이혼했지만 자식들을 버렸단 사실이 못내 미안한 순애는 자식에겐 뭘 해줘도 아깝지 않다고 하고 불륜으로 송호섭과 결혼한 연희는 자신이 끊어낸 가족 관계를 추스리기 위해 의붓자식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습니다. 미주와 병주(서동원)을 키워주며 뒷바라지한 건 연희인데 연희는 자신이 가정을 깼단 생각 때문에 남매에게 절절 맵니다. 얄미운 며느리 지영(오나라)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해본 적도 없죠.

완벽한 가정에 강박증을 보이는 유진이나 불륜인걸 알면서도 아버지를 떠올리는 유라의 상처.

유라의 불륜을 지켜보는 유진은 모든 것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는 완벽한 남편 성훈(김승수)와 함께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가정을 꾸립니다. 그 누구 보다 아내를 존중하고 처가 식구들까지 챙겨주는 성훈과 예쁘고 귀여운 막내딸, 공부 잘하는 큰 아들이 있으면서도 늘 불안한듯 남편을 챙기고 자식들을 교육합니다. 유라의 불륜을 보며 유라를 위로하기 보다는 바람피운 상대방 가정의 와이프를 걱정 합니다. 가정이 깨지는 아픔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내 가정이 파괴될까봐 불안해하고 책임을 강조하는 모습 어쩐지 공감이 가더군요.

아내를 비롯한 누군가는 불륜의 대가를 치르며 마음고생을 하는 반면 불륜의 당사자인 송호섭은 자식들 모두가 외면할 만큼 무책임한 아버지 입니다. 연희가 허리 아파서 일을 못나가는데도 밥을 차려달라 독촉하고 맛있는 반찬이 없다며 괜시리 며느리를 부르는 송호섭은 전처가 싸준 반찬을 양심없이 집어먹습니다. 순애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송호섭은 싫어하지만 자기 대신 미주, 병주를 키워준 연희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있고 해준 것도 없는 시아버지 호섭이 며느리를 부려먹는 건 보기가 싫어 반찬을 퍼줬습니다.

 

 

 

 

 

 

 

집에서 뒹굴지만 말고 일이라도 하라는 아내의 청을 거절한 호섭은 연희와 이혼하겠다며 선언합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이혼했으면 이제는 새로 얻은 아내를 위해주며 살면 좋겠건만 연희가 밥도 빨래도 해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전처를 찾아가서 재결합하자며 조릅니다. 연희가 이 못난 남편에게 매달리는 심리에는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도 한몫할 것입니다. 세상 다른 사람들이 다 불륜 커플이라 해도 남편만은 제편이란 생각에 떠받들며 살았겠죠.

송호섭은 전처와 아이들을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후처와 딸에게도 상처를 줬다.

송호섭은 원래도 자기 밖에 모르는데다 자식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눈치를 느끼는 듯합니다. 전처도 지금의 아내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으면 자신의 노후는 누가 돌보나 싶어 더욱 얄밉게 뺀질남 노릇을 하는 것같죠. 은주는 그런 아버지를 핸드폰에 '나쁜 사람'이라 등록하고 아예 집을 나가버렸고 엄마 순애와 같이 살고 있는 언니에게 얹혀 살기로 합니다.이혼한 전처가 후처의 자식까지 데리고 사는 건 이상한 모양새지만 미주에겐 단 하나뿐인 동생이니까 순애는 기꺼이 받아줍니다.

순애와 의붓언니, 오빠에게 유난히 붙임성이 좋은 은주에게 순애는 '여긴 얼마든지 있어도 좋으니 엄마 마음은 아프게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우리 엄마 밉지 않냐'는 은주의 말에 순애는 '너 가지고 부른 배 안고 찾아왔을 땐 기가 막히더라'는 순애는 '니 엄마 신세도 불쌍하고 내 신세도 불쌍하더라'며 의외의 말을 합니다 . 송호섭은 두 아내가 자신을 최고로 알며 산다고 착각하지만 연희는 연희대로 순애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순애는 순애대로 그런 남편과 살아야하는 연희의 신세가 참 고단하다 싶었던 것입니다. 

뺀질남 남편을 둔 전처와 후처의 기묘한 인연. 연희는 순애에게 자신을 책임지라 한다. 묘하게 웃음이 나는 장면.

은주가 집을 나가서 휑해진 집을 보며 연희는 생각합니다. 은주만 아니었으면 송호섭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 은주가 지긋지긋하다며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연희는 딸이 집을 나가도 개의치않고 놀러 나가는 송호섭을 생각하니 '아빠는 절대 안 변할 사람'이라며 '계속 이렇게 살길 원한다면 그것도 엄마 선택'이라던 은주의 말이 떠오릅니다. 갈곳없이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연희가 곰곰히 생각끝에 찾아온 곳은 순애의 집입니다.

연희는 은주가 집을 나갔을 때 밥을 차려준 순애가 믿음직했나봅니다. 대책없는 남편도 제일 잘 알고 왜 연희가 불쌍한지 그 속사정도 잘 알고 무엇 보다 연희는 갈 곳이 없습니다. 전처의 집에 드러눕는 엄마에게 '이건 아니다'며 은주가 말려보지만 어쩐지 이 두 여자의 기묘한 동거는 약간 길어질 것같단 생각도 듭니다. 본처와 첩의 동거라면 아 이거 뭔가 찜찜하다 할텐데 이혼하고 이렇게 만나면 못말리는 남편의 흉에 서로 공감할 수 있나 봐요. 왠지 모르게 너무 재미있어서 웃으며서 봤던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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