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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비밀'의 성공을 보면 느끼는 게 없을까?

Shain 2013. 11. 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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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해에도 꽤 많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전혀 본 적도 볼 일도 없는 아침드라마, 저녁드라마같은 일일극도 있고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도 상당수였습니다. 그중에는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던 드라마도 있고 전체적으로 낮은 시청률이 아쉬웠던, 묻히기 아까운 드라마도 있습니다.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신 분들은 아무리 인기있어도 제가 전혀 보지 않는 드라마가 꽤 많음을 아실 것입니다.

재벌 2세와 서민의 사랑이라는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비밀'

제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소재면에서 사회성이 있거나 전체적으로 신선한 전개방식을 유지하는 드라마 또는 막장드라마임에도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잘 살린 내용을 좋아합니다. 2013년 상반기에 가장 기억나는 드라마는 역시나 '직장의 신'과 '돈의 화신'입니다.'직장의 신'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였지만 한국의 사회문제인 계약직과 해고 문제를 잘 버무렸고 '돈의 화신'은 입으로만 복수하는 다른 드라마들을 비웃듯 시원한 전개 방식으로 눈길을 끌었죠.

2013년 중반기에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주군의 태양', '황금의 제국'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너목들'은 범죄와 복수라는 묵직한 주제를 로맨틱 코미디와 섞었다는 점 외에도 미스터리 추리극의 면모를 보이며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주군의 태양'은 로코물로서는 새로울게 없는 뻔한 구조였지만 '귀신'이라는 기피 소재를 흥미롭게 엮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황금의 제국'은 대한민국 경제사범들의 도박같은 치열한 경쟁에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 드라마였습니다.

 

그외에는 드라마 '투윅스'와 하반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비밀'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49일'과 '내딸 서영이'의 소현경 작가는 이준기라는 배우를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로 변신시켰습니다. 14일 동안 딸을 살리기 위해 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소재면에서도 재미있었고 전개방식 도 남달랐죠. '투윅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끈 '주군의 태양'에 밀려 시청률 경쟁에서는 다소 뒤쳐지는 아쉬움이 남는 드라마였지만 이런 드라마 포맷도 괜찮다는 걸 보여줬단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재벌 2세와 캔디의 사랑, 최루성 멜로라는 소재는 같지만 신선한 매력이 있는 '비밀'. 그 비결이 뭘까?

드라마 '비밀'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수작입니다. 4.7%라는 저조한 1회 시청률로 출발한 이 드라마가 수목드라마 경쟁에서 1위로 살아남으리라 확신했던 사람은 팬클럽과 제작자 이외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경쟁작도 쟁쟁했지만 부담스러운 멜로를 싫어하는 시청자들에게 애인의 죄를 뒤집어쓴 한 여자와 사랑하던 연인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지독한 복수는 '최루성 멜로'라는 선입견이 생길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시놉시스 자체를 납득할 수가 없었죠.

드라마 '비밀'의 성공비결은 기존 드라마들과 차별화된 신선한 시나리오와 꼼꼼한 캐릭터 그리고 보는 사람들 모두가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개연성있는 전개에 그 답이 있다고 봅니다. '비밀'이라는 흔하디 흔한 드라마 제목의 비밀을 캐릭터와 결부시킨 신인작가의 능력은 비싼 원고료를 받으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스타 작가들과 확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너목들'과 '비밀'같은 시놉시스는 성공할 수 없다고 장담했을 방송국 간부들의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시청자들은 조민혁(지성)과 강유정(황정음), 안도훈(배수빈), 신세연(이다희)를 보며 그들의 비밀이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나는 모습에 점점 더 빠져듭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재벌 2세가 착한 서민을 사랑한다는 포맷에는 변함이 없는데 탄탄하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안도훈이 유정의 불행을 외면하며 그토록 힘에 집착하는 이유는 부당하게 해고되고 버려진 아버지 안인환(강신일)이 있고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유정에겐 사위될 남자의 허물까지 감싸준 강우철(강남길)이 안하무인 세연에겐 거만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비밀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흡입력있는 캐릭터와 신선한 전개방식.

'비밀'의 성공은 틀에 박힌 포맷이 아니면 성공할 수없다고 믿는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시나리오가 훌륭하면 신인작가의 드라마도 얼마든지 '먹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PPL을 받기 쉬운 재벌의 흔한 삼각관계와 출생의 비밀, 국적모를 퓨전사극과 팬클럽을 만족시키는 자극적인 장면이 화제가 되야 시청률 10퍼센트가 넘는다는 방송국 기획자들의 기존 공식은 올 한해 수도 없이 깨어졌습니다. 10년이나 우려먹은 소재들의 약발이 다 했다는 걸 시청자들은 이미 예전부터 지적해왔습니다.

 

시청자들은 '불의 여신 정이'가 뛰어난 연기자들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을 보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퓨전사극이란 핑계(어디까지나 이건 그냥 핑계)로 고증을 등한시한 것은 둘째치고 이병훈 사극 특유의 성공신화 포맷(이건 이병훈 PD 가 만들어야 제맛이죠)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막장 드라마 전개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구태의연함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실패요인 입니다. 의학 드라마 '메디컬 탑팀'이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이 없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이 가장 큰 것같더군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기황후' 역시 역사왜곡이라도 좋다 여성 성공신화면 된다는 방송국의 마인드가 크게 작용한 드라마입니다. 억지 삼각관계를 위해 망나니 고려 충혜왕까지 동원해 물의를 빚자 급하게 가상인물과 실존인물의 로맨스로 바꿔버렸죠. 사극도 아닌, 이제는 문제있는 판타지 픽션(팩션도 못해먹을 듯)이 되버린 이 드라마는 각종 논란을 오로지 연기자의 유명세와 연기로 잠재울 각오인 듯합니다. 드라마 제작의 기본틀은 '영웅사극'이란 낡아빠진 것인데 주인공만 신선하면 뭐하겠습 니까.

 

참신한 신인작가의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비밀. 방송사는 깨달아야하지 않을까.

 

노예들의 반란이라는 소재가 참신했던 동시에 무술을 비롯한 시대 고증도 괜찮았고 멜로와 캐릭터 모두를 잘 살렸던 '추노(2010)'의 성공을 보면서 여전히 사극 발전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제작사의 능력 보다 방송사의 의지가 지나치게 주먹구구식이고 구시대적인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외주 제작이 일반화되면서부터 제작사는 외주를 주는 방송사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방송사는 시청률에 연연하며 선택의 폭을 좁혀 이런 드라마 문화가 생겼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그랬듯 드라마 '비밀'의 성공은 신선한 드라마에 목마른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줄 듯합니다.  '비밀'의 성공과 '너목들'의 호평에서 알 수 있듯 시청자들 때문에 막장을 선호한다는 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윗선에서 선택하기에 새로운 것이 훨씬 더 번거롭기 때문이겠죠.기존의 드라마 형식이나 스타 작가, 출연료 비싼 스타 연기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드라마의 비밀. 어쩌면 시청자 보다 단막극 부활을 통해 방송국에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비밀이지만 성공사례가 부족했을 뿐인지도 모르죠. 뒤늦은 '비밀'의 인기가 반가운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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