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제일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울기만 하거나 대책없이 우왕좌왕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속까지 긁어놓는 행동입니다. 특히 한 가족의 미래를 책임질 부모가 그런 행동을 하면 답답하다는 마음까지 드는데 그게 아마 흔히들 이야기하는 '책임감 컴플렉스'의 일종이겠죠. 흔히 '장녀 장남 컴플렉스'도 비슷한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충격적인 상황에도 나보다 내 아이들과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고 심한 경우는 혼자서 울지도 못합니다. 형제들 보다 먼저 철이 들고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해서 남주나'의 유진(유호정)은 전형적인 장녀 컴플렉스를 가진 딸로 아버지 정현수(박근형)가 바람을 피우자 남성들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남몰래 눈물짓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형제들 누구 보다 믿음직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아버지에 대한 불안도 감추며 살았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와 재민(이상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니까 유진도 두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애쓰고 챙겼습니다. 불편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어른스러운척 했던거죠.
둘째딸 유라(한고은)가 믿었던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내놓고 표현하며 그 반발로 윤철(조연우)과의 불륜을 저질렀던 반면 유진은 속으로 껄끄러울 지언정 혼자된 아버지를 챙겨주고 재민에게 큰누나로 행동 했습니다. 그러나 유진의 장녀 컴플렉스와 아버지에 대한 불신은 고스란히 남편 강성훈(김성수)의 몫이었죠. 유진은 성훈을 아이처럼 대했고 자신의 가정은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기에 여유없이 성훈을 다그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부 생활을 해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불륜은 생각 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유부남 유부녀들이 늘 불륜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 일이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예상치 못한 빈틈이 있습니다. 특히 강성훈처럼 유진을 사랑하는, 빈틈없는 남편이라도 민영(정소영)같이 작정하고 덤비는 누명에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불안정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민영은 강성훈이 반듯하게 행동하자 심술궂은 불륜 스캔들을 터트립니다.
기자 앞에서 술에 만취하고 호텔방까지 데려다 달라는 민영의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아무리 친동생같은 사이라 해도 강성훈이 먼저 피해야 옳지만 아는 사람을 길에 버려두고 단호하게 집에 가긴 힘든 상황이었죠. 결혼 생활 내내 유진만 알고 민영같은 여성에게 익숙치 않은 성훈이라 벌어진 일인데 문제는 그로 인해 유진의 컴플렉스가 폭발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정현수에 대한 불만을 어린 시절 내내 감추고 살았던 유진은 동생 유라의 불륜으로 이미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극중 유진의 나이는 38세로 이미 성숙한 어른입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의 아내이고 윤하, 준하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스캔들 앞에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못하고 울면서 무너지는 모습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아버지 정현수와 유라는 그런 유진을 이해해도 이제서야 아내가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된 강성훈은 그런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세상 모두가 강성훈도 별수없이 다른 남자들과 똑같다며 비웃어도 아내 만은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고 지지해주길 바랐는데 강성훈을 못 믿겠다며 울부짖는 모습에 성훈은 상처를 받습니다. 민영이 기자에게 불륜을 시인했으니 누가 봐도 성훈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그 누구 보다 자신을 잘 알고, 성훈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제일 먼저 자신을 의심하다니 그 동안 함께 살며 노력했던 시간이 답답하고 억울하기만 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남자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쳐도 입장을 너무 몰라주니까요.
부부 사이의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불륜을 저지르지 않고 부부생활을 하면 생기는게 믿음일까요 아니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맹목적인 것이 믿음일까요? 확실한 건 유진은 이제서야 어린 시절에 앓았어야할 성장통을 앓고 있다는 점 입니다. 많은 남편과 아내들이 함께 사회생활을 합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늘 불륜의 유혹에 빠지고 바람을 피울 것이라 생각한다면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가정이 심리적인 안정의 근원인 만큼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음회 예고편을 보니 가방을 싸들고 정현수에게 온 유진은 아버지에게 원망을 퍼붓고 성훈을 냉대하는 것으로 모자라 배다른 동생인 재민에게 화풀이를 하며 폭식 증세를 보입니다. 그동안 힘들게 지켜온 자제력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오죽하면 불같은 성격 덕분에 늘 유진의 다독임을 받던 유라가 유진을 말리는 입장이 되었을까요.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도 또 다시 사랑하고 믿을 수 있는 성숙한 용기를 키우지만 유진에게는 아버지 이후 처음으로 겪는 시련인 셈
입니다.
어쩌면 성훈과 유진의 이번 해프닝이 어떤 상황에서도 깨어지지 않는, 둘의 믿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홍순애(차화연)와 유진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같기도 한데 어머니처럼 유진을 다독이는 모습이 참 안타깝더군요. 비록 유진은 오해에 불과하지만 홍순애는 이미 송호섭(강석우)으로 인해 힘든 시절을 겪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고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지만 남편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던 그때는 홍순애도 똑같이 힘들고 괴로웠겠지요. 유진은 순애를 보며 자신도 순애처럼 단단해져야한다는 걸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불륜 없이 행복하게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많습니다. 한번쯤 불륜의 유혹을 겪어도 내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에 배우자를 믿기 때문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다 믿어도 내가 믿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일입니다. 성훈의 불륜이 정말 있었냐 없었냐와는 별개로 유진의 성숙함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
이구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보기 좋은 커플 중 하나인 유진, 성훈 부부가 지금 보다 더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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