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 여기저기서 된장녀, 김치녀같은 여성 혐오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만 평범한 20, 30대 여성이 미용실에서 손질한 화려한 헤어스타일에 사치스런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가는 일은 흔치 않을 것 입니다. 예전과 다르게 파티 문화가 유행해도 드레스 코드는 기껏 심플한 미니 드레스 아니면 평소 보다 약간 화려한 옷이지 파티복은 거의 없습니다. 여자라면 한번쯤 입고 싶은 옷이지만 입고갈 일도 없고 가격도 부담스러운 드레스. 결혼식 때 화려한 티아라에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어하는 심리에는 평소 해보지 못한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심리도 있겠지요. 90년대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연희)는 임선주(강한나)의 자격박탈로 어렵게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미스 서울 진의 왕관 보다는 초라하지만 그 작은 티아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모와 고통을 참고 견뎠는 지. 오지영은 화장실에서 양춘자(홍지민), 신선영(하연주), 최수연(박국선)과 싸우면서도 끝끝내 왕관을 놓지 않습니다. 무시당하던 엘리베이터걸 출신의 오지영에게 미스코리아가 된다는 건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지영이 가진 돈으로 퀸미용실의 김재희(고성희)나 체리미용실의 신선영을 감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미스코리아
후보들에게 드레스는 센스와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 입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를 입은 후보의 감각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한때는 폭넓은 풍성한 드레스가 유행했는데 요새는 어깨를 노출하고 몸매의 라인을 강조한 날렵한 드레스가 인기라고 하지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만큼 돈이 필요합니다.
대여료만 이천만원인 대한민국에 하나 밖에 없 는 드레스를 입고 가느냐 대여료가 싼 낡은 드레스를 입고 가느냐 하는 문제에서 오지영은 김재희 보다 한발 쳐지게 됩니다. 몇년전 한 지방 미용실에서 미스코리아로 키워준다며 많은(후보 입장에서 많은 돈이겠죠) 돈을 받아놓고도 대회 당일 후보에게 헤진 드레스를 입혀 문제가 된적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될만한 후보에겐 비싼 드레스를 주고 돈도 얼마 안 주고 들러리를 설 것같은 후보에겐 아무거나 입혀서 무대에 서게 했던 것입니다.
최수연 역의 박국선도 미스코리아 지역대회 출신이지만, 마애리(이미숙)가 걸레라고 표현했던 드레스, 체리 미용실의 신선영(하연주)이나 다른 후보들이 입었던 드레스는 실제로 2013년 미스코리아 대회 지역에선에서 후보들이 입었던 드레스더군요. 미용실 측 후보들이 이용하는 샵이나 국내에서 저렇게 비싼 파티용 드레스를 대여할만한 샵을 손에 꼽다 보니 좋은 드레스를 선점하기 위한 물밑작업이나 미스코리아 대회에 입고 나오는 옷들이 고만고만했던 속사정을 알만 합니다.
'미스코리아'의 오지영과 김형준(이선균)은 세상 기준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 입니다. 드레스 대여료 조차 없는 오지영은 리무진이나 비싼 자가용이 아닌 고장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미스코리아 합숙장소로 갑니다. 감귤 아가씨 대회에 입고 나갈 한복과 정장이 없어 백화점 동료에게 훔쳐달라 부탁했던 적도 있습니다. 김형준은 자본도 없이 좋은 머리 하나만 믿고 성공해보겠다며 겁도 없이 회사를 차렸고 마케팅에 실패해 (본인은 모르지만) 사채업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웬만한 여자들 보다 훨씬 예쁘고 웬만한 서울대생 보다 훨씬 똑똑한 오지영과 김형준이 자신들의 능력만 믿고 성공을 바라기엔 세상은 그들 기준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남들은 세상물정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고 헛된 꿈을 꾼다며 그들을 손가락질할 지도 모르죠. 깡패한테 보험금 때문에 맞아죽고 200만원 짜리 드레스 하나 빌리지 못하는게 그들이 처한 현실이고 드레스입고 미스코리아 왕관을 쓰는게 그들의 꿈입니다. 미용실이나 바다화장품의 로비 한번에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꿈이죠.
그래도 오지영은 미스코리아 대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이윤(이기우)의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김형준은 오지영과 손을 떼면 전액 투자를 하겠다는 이윤의 제안에 사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미스코리아 대회 본선에 이들의 관계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깡패두목의 빚독촉에도 아무도 모르게 김형준의 목숨을 살려주고 있던 정선생은 현실적이지 않은 그들의 무모한 선택을 두고 '미친놈 한번 돼보라'며 '네 방식대로 해보다가 죽는게 낫겠다' 고 격려하죠. 처음에는 겁먹고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맷집이 늘어가는 것같습니다.
마침내 오지영은 김형준이 빌려온 분홍색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습니다. 국민들의 구경거리를 바라고 있는 정치인과 전국에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오지영이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나왔을 거란 사실도 김재희와 오지영이 입은 드레스 대여료가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것도 미스코리아 대회를 둘러싼 각종 잡음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엄마같은 눈길로 오지영의 드레스를 샅샅이 살피는 마애리 원장의 눈빛이 인상적입니다.
'빽'도 돈도 없는 오지영의 속사정을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마애리는 '와이키키' 하고 웃는 오지영이 엘리베이터걸을 하던 그때 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걸 눈여겨 본 것 같습니다. 처음에 김재희 보다 오지영을 더 선호했던 것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오지영이 훌쩍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후보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단한 현실이나 힘겨웠던 사연 따위는 모두 잊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자신감 그 웃음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의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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