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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이혼하려던 부부가 함께 살 수 있는 이유

Shain 2014. 1. 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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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원룸도 있고 다가구 주택도 많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단독주택에 방 하나를 세 얻어 사는 가족이 흔했습니다. 부부 두 사람에 아이는 보통 둘에서 셋, 세수할 곳도 음식할 곳도 마땅치 않은 그 공간에서 주인집의 눈치를 보며 살림꾸리는 젊은 부부들이 그 시절의 흔한 풍경이었죠. 그렇게 '셋방살이'를 하다 보면 젊은 부부는 싸움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 아내는 아이들이 울고 뛰어노는 소리가 주인집에 들릴까 노심초사하며 청소기, 세탁기 하나 없는 집안 살림을 하느냐 녹초가 되고 남편은 8시간 근무는 커녕 12시간씩 잡아두는 직장생활에 그대로 쓰러지기 일수였죠. 

 

무릎아픈 시어머니의 방문으로 다시 김성수와 함께 지내게 된 은진. 마음은 불편하지만.

 

뭐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시절에도 바람필 사람은 다 피우고 부부싸움할 사람들은 다 했습니다만 사정이 그렇다 보니 외도 문제로 큰소리 나게 싸우는 집을 보면 동네 사람들이 '힘이 남아 돈다'며 한마디씩 하곤 했죠. 그 시절에 부부 간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고 사치스러운 호사같은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김성수(이상우)는 그 시대의 삶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시골 출신 장남이죠. 부모들은 장남의 성공을 가족의 성공으로 여겼고 경제적인 여유를 무엇 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극중 송민수(박서준)는 그 누구 보다 이복누나 송미경(김지수)을 위하는 남동생으로 등장합니다. 송민수가 사랑하는 나은영(한그루)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부족함없이 자랐지만 송민수는 어릴 때는 부모의 눈치를 보고 사춘기 때는 매형 유재학(지진희) 가족의 눈치를 보며 컸습니다. 송민수는 나은영에게 '인생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이야. 가진게 없는 사람에게 선택은 없어 운명만 있지'라는 말을 합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따지지 않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가는 부부의 운명도 그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맞바람을 피운 김성수, 나은진(한혜진) 부부. 이웃들에게 알려져 망신은 당할대로 당했고 이제는 서로 괴롭히기 보다 이혼하는게 낫다고 합의한 두 사람은 생각 보다 꼼꼼하게 얽힌 가족과 삶의 연결고리들을 발견합니다. 함께 하고 싶단 애절한 마음으로 동동거렸던 연애시절부터 다시 떠올리기 싫은 출산과 양육 과정, 이혼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밟히는 딸과 친정식구들을 비롯한 가족. 보험이나 양육비나 재산분할까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던 걸 똑같이 나눈다는 건하나의 몸뚱아리를 둘로 갈라놓는 것처럼 힘듭니다.

더우기 얼마전 아버지의 초상을 치른 김성수에게 나은진의 존재는 간절합니다. 가족들에게 곧 이혼할 거라는 걸 알릴 자신이 없습니다. 지방에 사는 동생은 몸도 불편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 형편이 안되고 어머니(성병숙)는 다리가 아파 당장 서울로 올라와 수술받아야하는 처지입니다. 이제 남은 감정 다 접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줘야하는 마당에 어쩌면 이렇게 아쉬운게 많은지 어머니가 올라와 있는 동안은 아무 일 없는 듯 평소처럼 지내자는 은진의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이혼하기로 마음먹고 오피스텔까지 구했지만 망고처트니 여사가 입원하자 제일 먼저 달려온 송미경.

며느리 송미경을 수족처럼 부려먹는 망고처트니 추여사(박정수)는 겉으로는 독하게 며느리를 잡고 매사에 불평불만인 나쁜 시어머니지만 여왕처럼 살아가는 그녀에게도 속사정은 있었습니다. 흔하게 구하기도 힘든, 망고처트니같은 음식이 유일한 삶의 낙인 추여사는 부부 간의 사랑을 진작에 포기한 아내 였습니다. 평생 바람피우다 늙어 치매까지 걸린 남편을 외면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추여사는 송미경에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나 누리라는 식의 조언을 하죠.

유재학은 나은진과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걸 알고 이혼하겠다는 송미경을 설득하러 갑니다. 장남으로 태어나 사업을 하고 가정을 건사하는 책임으로 살아왔던 유재학도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재학은 그런 자신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송미경이 하루종일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 책임을 다 했기에 그들이 행복했다는 걸 모르고 어깨에 지워진 짐이 갑갑하다는 생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불륜과 함께 찾아온 위기로 아내가 진정한 자신의 반쪽임을 깨달았지만 어떻게 미경을 잡아야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막상 이혼하려면 배우자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남편 김성수, 유재학.

'난 사랑있는 노예로는 살 수 있어도 사랑없는 왕비로는 살 수 없다'는 송미경의 말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한다는건 무의미하다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가정에 대한 책임을 모두 버리고 호텔에 나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송미경도 자신이 없으면 아이처럼 약도 음식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쓰러졌다는 말에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먼저 이혼하자고 말했던 김성수가 나은진에게 진심으로 고맙단 말을 했던 것처럼 유재학도 아내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쿠킹클래스 최안나(최화정)의 말대로 부부 간의 관계가 어떤 것이 정답이다 하는 기준은 없습니다. 송미경처럼 모든 걸 주는 아내가 있는가 하면 나은진처럼 티격태격하며 남편과 맞춰가는 아내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사랑하는 감정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인지 그 모든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하는 것이 부부입니다.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부부도 있죠.

마찬가지로 아내 나은진과 송미경도 동생들의 행복을 위해 남편의 존재가 절실할 것이다.

이혼하겠다고 마음먹고 서로를 떼어놓으려는 두 부부. 두 부부는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다시 부부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감정을 정리한다고 해서 피붙이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까지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수 은진 부부와 미경 재학 부부는 송민수와 나은영의 사랑으로 인해 다 시 한번 평범한 부부 행세를 하게 될 것 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도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먹었을텐데요. 가족의 위기 앞에서 이혼하겠다는 다짐도 잠시 흔들릴지 모릅니다.

일단 드라마 속 부부는 서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이혼하고 싶은 마음 반, 이대로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반입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남들 보기에 평화롭게 책임을 다 하는 비결은 어쩌면 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있을 것 입니다. 오늘 밤에는 모든 인연 다 끊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싶다가도 다음날 아침엔 자식들과 가족들 모습에 마음을 다독이며 바쁜 일과 속으로 뛰어듭니다. 부부가 함께 해결해야하는 큰일 앞에선 없던 애정이 솟아오르기도 하죠. 팔자 편하니까 사랑타령한다는 어르신들 말이 맞긴 맞는걸까요?  보면볼수록 알 수 없는게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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