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간에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은 함께 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개의 호의를 공격으로 해석하는 고양이와 고양이의 적의를 기분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개의 대화처럼 생활방식과 표현이 서로 부딪힐 때 마다 지치기 마련이죠. 나이든 어른들이 경제적 형편이 차이나는 집안과의 혼사를 꺼리는 속사정도 어떤 면에선 이 부분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건강하고 사랑하니까 서로 맞춰나갈 수 있지만 나이들어 삶에 지쳤을 때는 어떤 식으로 갈등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두 사람이 간신히 삶의 방식을 맞춰도 다른 가족들의 개입으로 평화가 깨지기도 하죠.
'미스코리아'에는 처지가 다른 여러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고등학교 첫사랑 오지영(이연희)을 미스코리아 대회에 내보낸 화장품 회사 사장 김형준(이선균)은 똑똑했지만 세상 물정을 몰랐고 어렵게 개발한 신제품을 경쟁회사에 빼앗기고 맙니다. 가끔은 무능하고 찌질한 이 남자의 장점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멀리 보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마찬가지로 성실하고 당차지만 공부 보다 노는 걸 좋아했던 오지영은 남들은 다 싼티난다고 무시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참고 노력할 줄 아는 끈기를 갖춘 여자입니다.
오지영은 미스코리아 진이 되었지만 김형준은 모든 걸 투자한 회사가 망해버렸습니다. 오지영의 핸드폰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전화가 걸려옵니다. 광고 요청, TV 출연 요청부터 선을 보자는 제안도 여러 차례 들어옵니다. 깡패한테 얻어맞느냐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도 보지 못한 김형준은 지금 지영과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형준은 오지영의 앞날을 위해 힘든 결정을 하지만 지영을 포기한게 아니죠. 형준은 비비크림에 어울리는 립글로스를 개발해 재기할 생각입니다.
반면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이윤(이기우)은 자신과 다른 계층에 있는 오지영을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서 자신의 위치로 끌어올리고 싶어 했습니다. 바다화장품 김강식(조상기)이 오지영을 어떻게든 미스코리아 진에서 끌어내리려 하자 비비화장품 인수비용을 깎아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합니다. 이윤은 수차례 오지영을 도와주러 나섰고 몰래 오지영의 흑기사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오지영이 아직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미스코리아진으로서 화려한 삶에 익숙해지면 그때는 자신이 달리보일 것이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IMF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젊은 사업가 김형준과 고단한 서민의 삶을 대표하던 엘리베이터걸 오지영. 고난과 행복이 반복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아름다운 건 주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오지영은 하루 아침에 할 일이 없어진 김형준에게 핸드폰을 건내주며 오빠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김형준은 미스코리아 진 자격이 박탈될 수 있는 오지영의 미스 유니버스 출전을 위해 연애 사실을 숨기기로 약속하고 마애리(이미숙)에게 오지영을 맡깁니다. 목표가 다른 삶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일단 그들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프랑스에 유학하기로 마음먹은 고화정(송선미)과 전과 5범인 정선생(이성민)은 이게 과연 노력한다고 될 일인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베르사유가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 정선생은 서점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간신히 그게 프랑스라는 걸 알아냈고 고화정에게 '공부 좀 그만하면 안되냐'고 묻습니다. 고화정은 'IMF에 당장 오라는데도 없을거고 여자가 공부라도 해야 이 험한 세상에 먹고 산다'고 대답합니다. 거기다 정선생은 고화정과 정선생의 사이를 반대하는 강우(최재환)와 홍삼(오정세)의 속마음을 듣게 됩니다. 딱히 자신을 무시하지 않더라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생각을 알 것도 같아서 화도 내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정선생을 불러 국수를 먹는 고화정은 중학교만 나온 사람도 사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운을 뗍니다. '연애는?'이라고 묻는 정선생의 질문에는 대답을 곧장 하지 않고 국수만 먹습니다. 이어서 정선생이 (나랑 연애하는게) '창피하지?'라고 묻자 '자신이 없다며 시작 안하는게 낫다'고 대답합니다. 정선생은 고화정에게 부정적인 대답이 나왔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국수만 먹습니다. 그런 정샘을 지켜보는 고화정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같은데 정선생이 그렇게 넘기자 실망한 눈치 가 역력합니다. 고화정이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던거죠.
고화정이 끝까지 하지 못한 말 그리고 정선생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김형준이나 고화정은 몰래 형준을 도와준 정샘과 함께 하며 정샘에 대한 편견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김형준이나 오지영처럼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적과의 동침' 마저 감당할 수 있다는 각오로 시작해도 어려운데 여자에게 물어봐서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란 자세로 출발한 사랑은 더욱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화정이 진짜 바란 대답은 '자신이 없다면 시작 안하는게 낫다'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버틸 자신이 있다'는 혹은 '사장이 되보겠다'는 대답이었던거죠.
세상엔 좋은 일도 많지만 나쁜 일도 많습니다. 죽도록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오지영의 미스코리아 도전은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이었고 김형준의 벤처 역시 앞이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립글로스의 시장반응을 지켜보는 그들이 밝아 보이는 건 같은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까진 김형준이나 오지영의 도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깡패 출신 전과 5범 정선생이 도전할 차례 입니다. 그에겐 마침 기회가 있습니다. 고화정을 따라잡을 수 있는 건 학벌도 무엇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면 정샘에게도 같은 희망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건 그렇고 오지영이 드림 백화점 모델로 가게 되면 자신과 동료들을 죽어라 괴롭히던 박부장(장원영)을 어떻게 대할지 꽤 궁금하네요. 확실한 앙갚음이냐 코믹한 괴롭힘이냐 이거 은근히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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