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가족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안하던 애라 주의깊게 들었는데 알고 보니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더군요. 그 친구도 이혼할 때 흔히 겪는 곤란한 일을 다 경험해본 모양입니다. 맡을 사람이 없어 잠깐 동안 외가에서 살기도 했던 이 친구는 엄마를 따라갈래 아니면 아빠를 따라갈래라는 선택이 굉장히 힘겨웠던 모양 입니다. 엄마가 섭섭할 거 같아서 엄마와 살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빠가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에 가끔 울적해지는 것같더군요. 따지고 보면 아이 잘못이 아닌데 큰 상처가 된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안방에서 싸울 때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합니다. 용기가 없어 싸움을 말리지 못하고 차마 말은 못했지만 자신이 부모들의 짐짝처럼 느껴져 당장 이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는군요. 반면 부모들은 이 친구가 혼자 설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참고 버티자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 가족들은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에 말은 못하고 싫은 시간을 참고 견뎠던 거지요.
또 이혼하면 누구랑 살 거냐는 질문에 이 친구는 당황했고 아버지에게 미안해했지만 알고 보니 당시 이 친구의 아버지는 자식을 거둘 형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가 원하면 무리해서 집을 마련하려 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어머니와 살겠다고 했던 겁니다. 이 친구는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거죠. 결국 솔직하지 못한 이들 가족의 엇나감은 이 친구가 결혼할 때까지 계속 되었던 것같습니다. 꽤 일찍 결혼했던 이 친구는 뭐 그래도 열아홉살 때까지 억지로 살아준 부모님이 그렇게 고맙더라는군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남의 눈을 생각해 괜찮은 척 살아가는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송미경(김지수)은 성격이 별난 망고처트니 여사(박정수)를 모시기 위해 매일매일 몸이 부서져라 봉사했습니다. 조용히 유재학(지진희)을 내조하는게 자신이 해야할 일이고 그렇게 해야 재학이 행복하다고 믿었습니다. 재학은 집안일하는 아내를 무시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자신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던거죠. 그런데 재학은 의무와 책임감이 반복되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바람을 피게 됩니다.
나은진(한혜진)의 가족은 은영(한그루)이 송민수(박서준)와 헤어지고 입원하자 한바탕 큰 소동을 겪습니다. 이제 은영까지 송민수가 뺑소니 사고의 범인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은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은진은 동생의 아픔을 보면서 이 모든게 자신의 잘못이라 사죄합니다. 딸이 잘못했다는 말에 나대호(윤주상)는 네 잘못이 아니라 '생길 일들이 생긴거다'라고 위로 합니다. 은영이 어릴 때부터 샘이 많았다는 김나라(고두심)의 말에 은진도 엄마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죠. 가족의 아픔 앞에서 모두가 내 잘못이라며 힘들어하고 자책합니다.
한 사람의 남편, 직장인, 아내, 사회인으로서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지고 바쁜 인생을 살아갑니다. 아내 보다는 내가 힘든게 낫고 남편 보다는 내가 덜 자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많은 가족들이 서로 희생하고 베풀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되버 립니다. 남편은 원래 돈을 벌어오는 거고 아내는 당연히 손이 부르트도록 설거지는 해야하는 것이 되버리면 처음에는 누군가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 굴레가 되고 고통이 되버립니다. 그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솔직함이죠.
쿠킹클래스 안나(최화정)와 망고처트니 여사의 대화를 보면 볼수록 솔직한게 진짜 배려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여사는 남편의 바람 때문에 다른 재미는 다 포기하고 먹는 것에서 낙을 찾는 할머니로 어떻게 보면 공손하게 모셔온 며느리 송미경이 그런 추여사를 더욱 못된 시어머니로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받아주는 며느리가 있으니까 마음놓고 심술을 부린거죠. 송민수를 내보내면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까지 못된 사람도 아닌것같은데 말입니다.
안나는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인 표현으로 추여사에게 친절한 말을 듣고야 맙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추여사는 며느리가 집을 나가자 안나가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추여사는 안나를 함부로 대했다가 더 솔직한 말로 역공격을 당하자 어쩔 수 없이 사근사근하게 대해줄 수 밖에 없었죠. 어설픈 배려랍시고 추여사가 하는대로 내버려뒀다간 두 사람의 관계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을 것 입니다. 진짜 좋은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살아 움직이는 관계지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고정된 관계가 아니겠죠.
나은진은 김성수(이상우)와의 이혼을 준비하면서도 불륜으로 은영 문제로 고민하는 나은진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성수에게 '당신 요즘 참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김성수는 '갑자기 가슴 뜨듯해진다. 별 대단한 말도 아닌데'라며 솔직한 대답 을 하죠. 불륜과 이혼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 부부는 진짜 부부란 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반면 아직 감정표현에 서툴기만한 유재학과 남편에게 모든 걸 올인하는, 기형적인 부부관계가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송미경에게는 조금 더 다른 과정이 남아 있나 봅니다.
그때 내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부모중 누구라도 우리가 이혼하면 좋겠냐고 물어봤더라면 그의 아버지가 내가 지금 널 데리고 살 형편이 아닌데 당분간 엄마랑 있으면 안되겠냐고 했다면 내 친구가 이렇게 살려면 이혼하라고 눈물로 원망이라도 해봤다면 그들 가족은 조금 더 다르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속마음을 다 드러내놓는 솔직함이 힐링이 되고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됩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갈등하진 않았겠죠. 은진의 솔직함이 성수의 따뜻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 참 여운이 남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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