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관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의붓남매 간의 사랑이나 불륜은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죠. 대부분은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설정이지만 몇몇 관계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남들 보기에 말도 안되는 관계라는 건 시청자도 드라마 속 캐릭터도 모두 알지만 막상 드라마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원치 않는 관계에 휘말리면 어떻게 행동할지 선뜻 대답하기 힘들 것 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송민수(박서준)나 나은영(한그루)처럼 누나 부부와 언니 부부의 불륜이 얽혀 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며 체념하고 이별해도 혼자 있을 땐 쓰라린 마음을 달래야겠죠.
한때 남편의 불륜녀였던 여자를 사돈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한때 아내의 불륜남이었던 남자를 사돈으로 깍듯이 대해줄 수 있을까?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제부의 매형으로 뻔뻔히 인사할 수 있을까?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처남의 처형으로 깍듯이 존대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상황 때문에 나은진(한혜진)은 간신히 회복한 김성수(이상우)와의 관계도 포기하고 혼자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은진의 엄마 김나라(고두심)는 이럴 때는 당연히 결혼하지 않은 은영 커플이 포기해야하는 거라 말하죠.
나은영과 송민수는 은진과 유재학(지진희)의 불륜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입니다. 약간 철없고 이기적인 성격의 나은영이 울부짖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평생 의지할 곳 없이 누나에게 얹혀살다 이제서야 사랑을 만난 송민수의 눈물은 더욱 슬프기만 합니다. 그냥 매형의 불륜 때문이면 한국땅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한때 나은진의 가족을 죽일 뻔 했다는 죄책감이 송민수를 괴롭힙니다. 불륜 당사자인 은진과 재학은 자신들의 탓으로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두 사람이 결혼했으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방관하거나 둘이 헤어지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 입니다.
불륜으로 인해 갈등하던 두 부부, 김성수 나은진 부부와 미경(김지수) 유재학 부부가 그나마 화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과거에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부부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 이었습니다. 불륜 때문에 죽일 듯이 미워했고 당장 이혼하자며 흥분했지만 하루하루 지날 수록 내 옆의 배우자가 얼마나 나에게 곡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김성수는 아내 없이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성병숙)를 모실 수 없고 유재학은 밥한끼도 제대로 못 차려먹고 음식타령만 하는 망고처트니 추여사(박정수)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미련으로 마음이 왔다갔다 하지만 두 부부의 사랑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너 아니면 안된다며 열렬히 사랑했던 그때의 신선한 사랑은 이미 낡아서 헤어진 휘장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마음으로 함께 살기엔 그들의 사랑은 밑천이 바닥났습 니다. 그들이 다시 함께 산다면 사랑 보다는 필요나 연민 때문일 것이고 드라마에서 보여준 것처럼 부부 사이에 함께 해야할 일들은 충분히 부부가 재결합할 이유가 됩니다. 무엇 보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고 눈이 붓도록 펑펑 우는 윤정(이채미) 때문이라도 말입니다.
은진의 부모는 자식을 편애하는 것 같지만 잘 보면 경우바른 사람들입니다. 사위가 잘못하면 사위를 나무라고 딸이 잘못하면 딸을 나무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망고처트니 여사는 본인도 불륜으로 고통을 겪어봤기에 자식 편을 드는 것같지만 며느리의 심정을 누구 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얼핏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여자같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아까워서 송미경이 유재학과 함께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송민수와 나은영의 새로운 사랑 보다는 낡아버린 헌사랑(?)을 응원하는 것같습 니다. 지금까지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이 아까워서일까요? 아니면 그만큼 필요에 의한 삶이 중요하기 때문일까요?
가끔 드라마에서 바람피운 남편과 재결합해서 사는 아내를 보면 기분이 찜찜했던 경우가 있습니다. 내연녀와 다투고 복수하는 그 간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 저런 남자와 이혼하고 혼자 살 수 없는 걸까?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저런 못난 남자에게 매달리는걸까? 드라마속 그 여주인공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여성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그 답을 알겠더군요. 사랑이란 감정 없이도 서로 의지하며 부부로 살 수 있는게 사람이고 인간관계란게 무자르듯 단칼에 끊어지는게 아니었습니다. 맺고 끊는게 딱 떨어진다면 그거야 말로 비인간적인 거더군요.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선뜻 납득하기 힘든 관계가 몇몇 등장합니다.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부부의 일을 낱낱이 일러바치는 며느리 윤선아(윤주희), 망고처트니 여사와 티격태격하면서 꾸준히 먹을 걸 만들어주는 안나(최화정), 물을 끼얹으며 싸웠으면서 불륜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자 화환을 보내는 영경(김혜나), 시어머니를 껄끄러워하면서 꾸준히 챙겨주고 병원에 입원하자 제일 먼저 달려오는 미경 등 합리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막상 지켜보면 이해가 가는, 재미있는 관계들이 많이 등장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맺고 끊는게 분명하다는 건 아직 세상경험이 적거나 독한 사람이란 뜻인지도 모르죠.
이렇게 논리나 사랑없이 '정'으로 살아지는 걸 보면 부부는 연인과는 다른 좀 더 진화된 공동체인 것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젊은 연인들 보다는, 알에서 깨어나지 않은 부부 보다는 이미 살만큼 살아서 책임질 일이 많은 부부에게 한표 보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충분히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아직 결혼하지않은 은영, 민수 커플이 누나와 언니 부부와 불편하게 얽힌 상태에서 부부 생활을 시작한다면 더욱 큰 불행의 씨앗을 안고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관계를 단절해도 혈연이란게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그런듯합니다.
물론 민수와 은영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세상에는 남의 눈으로는 납득할 수 없지만 공존하는 관계가 생각 보다 많습니다. 남편의 내연녀와 형님 동생하며 친자매처럼 지내는 할머니들을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속사정을 들어 보니 그쪽도 그럴만하더군요. 물론 모두가 받아들이고 동의해야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드라마니까 드라마다운 해법을 생각해낼지도 모르죠. 은진과 재학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는 내용은 그를 위한 설정이었을 테구요. 당사자들 모두가 양보한다면 의외로 쉬운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파격적이기 보다는 물흐르듯이 공감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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