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JTBC 출연한 KBS 노조, 제작거부 이후를 고민하나

Shain 2014. 5. 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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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37일째.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난 참사였습니다. 각종 규제 완화가 초래한 엉성한 안전망과 자격없는 승무원의 도피, 구조 보다 인양에 초점을 맞춘 해경의 무능한 구난대책 그리고 무엇 보다 보도 통제에 길들여져 사고의 원인을 직접 취재하지 않고 정부 입맛에 맞는 뉴스만 제작하는 공중파의 행보는 또다른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4월 16일 당일 '전원구조'되었다는 오보만 없었더라도 공중파가 유가족의 분노를 그대로 전달해줬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허술한 제도와 그 허술함을 감싸고 도는 언론은 권력자를 나태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이 사고 현장에서 의전이나 따지고 있죠.

종편 JTBC에 출연한 KBS 권오훈 노조위원장. 이례적인 출연에는 총파업 이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같다.




어제는 JTBC '뉴스9'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권오훈 위원장이 출연해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아무리 손석희 앵커가 우리 나라 유일의 뉴스쇼 진행자이고 뉴스를 위해서는 그 어떤 분야의 인물과도 인터뷰를 가지는 타입이라고는 해도 공영방송 KBS 직원이 JTBC라는 종편에 출연하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제 기억에 신문기자도 아닌 공중파 방송의 직원이 타방송사 뉴스에 출연하는 일 자체가 드물고 특히 소속 언론기관의 파행을 보도하기 위해 타사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했던 것도 처음 아닌가 생각됩니다(그 반대 케이스는 있습니다).

대한 민국 국민이 시청료를 납부하고, 국민의 절대 다수가 신뢰하고, 우리 나라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국영방송 출신의 KBS는 그냥 공영방송이 아닙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비롯한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의존해야하는 공영방송이며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책임이 있는 '언론'입니다. 다른 언론사들이 모두 시청률과 흥미 위주의 뉴스를 만들어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이 바로 KBS입니다. 그 자부심강한 언론의 노조위원장이 종편 방송을 찾아온 것입니다.

길환영 사장 사퇴를 외치며 제작거부에 이어 총파업 투표에 돌입한 KBS.


권오훈 위원장의 출연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KBS 길환영 사장은 길비서(KBS)로 불릴 정도로 친정부 성향이 강한 인물로 KBS 간부급 인사들이 280여명이나 사퇴하고 PD와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총파업 투표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사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홍원 총리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를 부인하며 KBS에 '세월호 참사 관련으로 KBS에 협조 요청'을 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죠(JTBC, 정홍원 총리 "언론에 보도 협조 요청할 수 있지 않냐"). 길환영 사장이 사퇴를 거부한 만큼 KBS 두 노조는 총파업 투표를 강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12년 MBC 총파업 시나리오 재현되나?

권오훈 위원장의 '뉴스9' 출연은 지금부터 국민들의 지지가 꼭 필요하단 의미일 수도 있고 자사의 언론 보도 만으로는 KBS 사태를 널리 알리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몇년전 MBC 노조가 사실상 정지되며 마무리된 MBC 총파업의 경우만 살펴봐도 KBS PD와 기자들에게 총파업은 해직도 각오해야할 만큼 어려운 싸움입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세월호 참사 이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경쟁사 JTBC의 힘을 빌릴 정도로 절박하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JTBC의 손석희 앵커가 동종 업계종사자들도 믿고 의지하는 '언론'이란 뜻이기도 하겠지요.

KBS에는 현재 두 개의 노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권오훈 위원장은 일명 '새 노조'의 위원장으로 지난 2013년 12월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공정방송이야말로 새노조의 출발점이자 존재이유'라고 밝힌 권오훈 위원장은 KBS가 정부 홍보 방송이 되었다며 KBS 언론보도와 수신료 인상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습니다(미디어오늘, KBS새노조 위원장에 권오훈 PD 당선). 지난 5월 9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던 길환영 사장은 자신의 사퇴 요구에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며 노조의 총파업 투표를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나섰습니다.

길영환 사장이 사퇴를 거부한 지금. KBS 노조는 총파업 이후를 고민하고 있나?




세월호 참사 37일째,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이대로는 안된다며 바꾸자고 했습니다. 진도와 안산으로 향한 자원봉사자도 많았고, 전국이 모두가 돌아오길 기원하는 노란 리본으로 가득 찼고, 경찰의 강제 연행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모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청와대 게시판과 교육청, 정부 기관에 글을 남기고 전화하며 책임자를 비난했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보호하라 질책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행정부와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눈물흘리는 대국민사과를 보여주며(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대통령 담화가 클로즈업으로 촬영된 건 처음보네요) 진화에 나섰습니다.

KBS의 독립성은 국민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부나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들 앞에서는 최대한 굽히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길환영 사장의 태도로 보아 KBS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권오훈 위원장은 JTBC가 아닌 그 어떤 언론의 힘이라도 빌려야할 처지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변화에 동참한 KBS가 앞으로 겪게될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대로의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지난 2012년 MBC 총파업 때 일어난 일이 똑같이 반복될 것입니다. 총파업이 시행될 경우 일단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조중동 등에서 시민들의 불편을 최대한 부각시키며(이미 시작되었죠) 과도한 월급 논란, 종북좌파 논란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불법적인 선동과 행동에 대해서는 엄중 대처하겠다' 2012년 MBC 총파업을 떠올리게 하는 반응.


그 과정에서 파업주동자와 지휘부를 대거 해고하고 MBC가 그랬던 것처럼 계약직 방송인력을 대거 채용하며 시간끌기 작전에 들어가겠죠. 올림픽 방송을 계약직에게 맡긴 MBC처럼 월드컵 역시 그렇게 방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2년 MBC 때 그대로 총파업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다시 다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취재하는 언론이 아닌 영혼없는 앵무새 언론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빼앗긴다는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겪어봤고 생방송을 중계하던 대안언론이 그 파급력 때문에 '루머'라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며 뼈저리게 공중파 언론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JTBC의 손석희 앵커도 MBC에서 빠져나온 인력입니다. 뉴스타파, 고발뉴스, 뉴스K의 제작인력도 MBC와 YTN 등에서 해직된 PD와 기자들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날카로운 취재가 필요한 이 시점에 그들이 방송사에 남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KBS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왔느냐와는 별개로 권력에 대항하는 언론인이 우리는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만약 이대로 길환영 사장이 물러나지 않고 총파업이 진행된다면 KBS는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지지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또 한번 공중파가 2012년처럼 무너질 것인가. 권오훈 위원장의 JTBC 출연이 그만큼 다급해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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