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직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익과 효율 만이 조직의 목표가 되면 가끔 괴물이 태어나기 마련이다. '미생'의 마부장(송종학)처럼 성희롱을 저지르고 인간성이 최악임에도 '끝발'을 무시할 수 없는 중견간부가 있는가 하면 겉과 속이 다르지만 어쨌든 일은 해내니까 뒷탈없이 직장을 다니는 성대리(태인호)같은 인물도 있다. 물론 '회사'가 한 사람의 인성까지 평가하는 곳은 아니지만 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박과장(김희원)처럼 끝내는 곪아터지기 마련이다. 부하직원에게 '갑' 노릇하고 '을' 업체에서 '와이로' 받아먹고 여직원을 성희롱하는 마부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마부장은 고발한 여직원을 자르면 잘랐지 실적 좋은 자신을 회사가 쉽게 해고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저희 몸에 다시는 손찌검하지 말아달라'는 정과장의 요구에 마부장은 화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다.
최전무(이경영)는 사람 보다 이익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직장상사다. 비리를 저지르든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든 간에 실적만 내면 적당히 받아줄 수 있는 최전무가 마부장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하대리(전석호)는 올해의 상사맨으로 두번 뽑혔다는 삼정물산 신팀장(이승준)을 언급하며 '생긴 건 내가 더 낫지 않나'며 '자뻑' 농담을 했지만 신팀장이 안영이(강소라)의 어려움을 감싸주고 자질을 개발해주는 리더였다면 마부장은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두목이자 부하직원을 도구처럼 쓰는 그냥 상사일 뿐이다. 박과장의 퇴출을 보면서 최전무는 자신이 지금까지 쫓던 일에 대한 가치관이 틀렸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직원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마부장과 마부장에게 복종하는 자원2팀으로 인해 지금까지 안영이가 겪었던 시련은 모두 안영이 혼자의 몫이었다. 우리들은 흔히 왕따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약자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니까 당할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당하는 거라고. 아무리 자기 일을 깔끔하게 해내고 참고 견뎌도 자원2팀에게 안영이는 '튀는' 존재이자 부담스러운 여성일 뿐이었다. '시련은 셀프'라는 장그래(임시완)의 말처럼 자원2팀의 따돌림과 '행실 조심하라'며 커피까지 쏟아붓는 마부장의 횡포는 오롯이 안영이의 몫이었다.
다른 팀을 위해 안영이의 아이템을 포기하라는 마부장의 횡포. 마부장은 안영이 혼자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마부장에게는 자원3팀이 자신의 식구고 자원2팀은 언제든지 부려먹을 수 있는 스패어에 불과했다. 마부장은 기분이 나쁠 때 마다 정과장(정희석)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화를 낸다. 자원2팀 사람들을 늘 윽박질렀고 말도 안되는 지시를 하며 우격다짐으로 일처리를 지시한다. 마부장에게 복종하는 자원2팀도 멍청이가 아니면 깨달을 수 밖에 없다. 1년 5개월 동안 구박받는 안영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마부장이 잘못된 상사라는 것을 말이다. 근무하는 동안 한솥밥먹으며 쌓인 정도 있지만 마부장에게 폭언듣는 자신들이나 안영이나 어차피 똑같은 '을' 신세라는 것을 말이다.
전화기로 안영이를 때리려는 마부장을 정과장은 막아선다. 평소처럼 마구 정과장을 폭행하는 마부장을 저지하며 전화 통화를 마치고 '저희 몸에 다시는 손찌검하지 말아달라'는 마부장의 정중한 요구는 미쳐 날뛰던 마부장을 당황스럽게 한다. 늘 굽신대며 마부장의 폭행을 참기만 하던 정과장이 반항한 것은 '우리'들을 지켜내고 싶은 용기였을 것이다. 하대리와 유대리(신재훈), 새파란 막내 안영이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벌벌 떨면서 앞으로 당할 괴롭힘을 걱정하면서도 '이제 우리 다 같이 죽었다'는 말에 정과장이 피식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정과장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유기체같은 조직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안영이가 묵묵히 참고 열심히 일해도 계약직 장그래가 실적을 쌓고 공부해도 한석율(변요한)이 잔머리를 굴리며 성대리를 이겨보려 해도 혼자서는 언제든 짓밟힐 수 있는 약자일 뿐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우리'는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여직원들이 박과장에게 성희롱 당했을 때 신차장(신은정)이 대표로 항의하러 온 것처럼 마부장의 성희롱을 징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차장(이성민)의 증언 덕도 컸지만 안영이같은 여직원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쳤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크고 작은 '우리'들이 있다. 최전무와 마부장의 관계처럼 회사 내 권력을 지키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우리들도 있고 장백기(강하늘)와 이상현(윤종훈)처럼 스펙이란 이름으로 무장한 똑똑한 우리도 있고 신차장과 여사원들처럼 여성이라는 이름의 우리들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우리'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제된다. '우리'에서 계약직을 빼고 '우리'에서 여자를 빼고 '우리'에서 지방대를 빼고 '우리'에서 출신학교와 고향이 다른 사람을 빼고 '우리'에서 동성애자를 빼고 결국 누군가는 절박하게 몸부림치는 혼자가 된다. 오차장처럼 계약직까지 '우리 애'로 받아들이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마부장에게 저항하고 벌벌 떠는 정과장에게는 그래도 자원2팀이 있다.
한석율이 입사 초기와는 달리 말수가 줄고 평소의 쾌활한 성격까지 버린 이유는 성대리라는 삐뚤어진 상사에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기없이 풀죽은 그의 하루하루는 죽지 못해 출근하는 부시시한 직장인들의 얼굴과 닮아 있다. 그런 한석율이 과거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 사람들의 호소 덕분이었다. 인턴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공장 아저씨가 '우리 가족 밥그릇이 달려 있는 내 손목아지를 지키고 싶다'고 했을 때 한석율은 뼈속깊이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석율의 가족도 그들과 똑같은 블루칼라이자 현장에서 고생하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석율이 공장장에게 무리한 지시를 내린 성대리에 맞서며 섬유팀 과장(장혁진)에게 공장 노후 라인을 중단시키고 새 하청업체를 찾자고 건의했을 때 그는 이미 과거의 한석율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 앞에서 커피 심부름 시키는 성대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라는 동질감은 많은 것을 바뀌게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장그래와 술한잔을 나누는 장백기가 있다. 최전무의 '빽'으로 들어온 고졸 계약직 따위가 자신 보다 많은 실적을 내고 강대리(오민석)에게 칭찬받는 모습이 부당하다고 느꼈던 장백기는 장그래가 기획한 일의 담당자가 바뀌는 걸 보았다. 장그래가 계약직이라서.
어차피 우리는 같은 미생일 뿐이라는 동질감. 그 동질감이야 말로 마부장같은 부당함을 이겨내는 힘이다.
어릴 때부터 스펙을 쌓기 위해 정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장백기는 장그래를 '우리'에서 빼고 싶어했다. 고졸 계약직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건 장백기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바닥부터 올라온 장그래의 절박함을 이용해먹으면서도 장그래를 '우리'에서 빼려고 한다. 그게 언젠가 자신의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혀꼬부라진 장백기의 말,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는 장백기의 위로. 1년 5개월 동안 장그래를 밀어내던 장백기가 이제서야 장그래를 '우리'로 받아들이는 모습. 스펙이 나쁘든 블루칼라든 여자든 간에 어차피 우리는 같은 '미생'일 뿐이라는 동질감. 장백기의 변화야 말로 마부장같은 부당함을 이겨내는 근본적인 힘이다.
현대사회에는 수많은 우리들이 있다. 누군가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 '우리'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요즘 '우리'라는 말은 상대를 차별하기 위한 핑계인지 '우리' 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기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동료애, 애사심이란 말로도 충분히 설명 안되는 '우리'라는 이름의 동질감 - 상사와 부하직원의 이해관계, 계약직의 정규직의 차이를 넘어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감. 신입사원 개개인이 겪는 시련은 각자의 몫이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함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우리'라는 공감부터 회복해야하는 것 아닐까. 이상적인 장그래와 오차장의 교감, 그들의 '우리'라는 말이 판타지가 되버린 이 시대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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