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부터 방송된 tvN '미생'의 인기가 심상치 않더니 12월 6일 7.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AGB닐슨 기준). 1회 시청률이 1.4%였으니 엄청난 기록이다. 시청률 상승폭도 그렇지만 종편이나 케이블 TV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높아도 2%를 넘기 쉽지 않고 좀 잘 나가는 프로그램도 5% 대인 걸 생각하면 '미생'은 과연 2014년 최고 화제작이 될 만하다. 더군다나 요즘은 공중파 월화 드라마도 시청률 10% 넘기 쉽지 않으니 더욱 '미생'의 도약이 주목받는 듯하다. '미생'이 방송되는 날이든 아니든 포털, 게시판이 '미생' 이야기로 도배되고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유례없는 인기를 끌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7.4%의 자체 최고시청률을 갱신한 '미생'. 공중파에 비해 낮은 시청률은 집계방식이 바뀌어야한다는 뜻 아닐까?
그러나 KBS '가족끼리 왜 이래'가 30%대 시청률로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걸 비교해보면 '미생'의 시청률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 정도의 화제성과 인기라면 공중파 최고 인기 드라마와 수치가 비슷해야할 것같은데 '미생'의 최고 시청률은 7.4%에 불과하다. 케이블로서는 놀랍지만 공중파 프로그램 수치에 비해 낮아도 너무 낮다. 이 말은 각종 시청률 조사 기관에서 집계한 TV 프로그램 시청률이 어디론가 새고 있다는 뜻이다. 시청자들의 TV 시청 방식은 몇년전부터 큰폭으로 변화했는데 TV 시청률 집계는 여전히 과거 방식 그대로다.
'미생'의 인기는 시청률 중심으로 편성되는 공중파 TV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미생'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중파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뒤돌아볼 계기를 마련했고, 케이블 및 종편 채널도 저력있는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스마트폰, IT기기, VOD나 다운로드 사용자의 TV 시청률 반영 비율을 높여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미생' 시청률이 10%도 안된다는 것은 주시청연령대인 20-30대가 TV 시청률 표본집단과 TV 보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는 뜻이다. 나 역시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해 TV를 보는 시청자 중 한 사람이다.
사실 TV 시청률 집계방식을 바꿔야한다는 지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포털사이트가 폭발할 정도로 검색되는 화제성높은 드라마도 시청률은 10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잦고 TV 시청률 자체에 오류가 많다는 지적도 많았다. 'TV가 늙어간다'는 평가도 일면 맞는 말이다. 다운로드를 비롯한 스마트 기기로 TV를 보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인 반면 TV는 심심해서 그냥 켜놓는 가전제품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TV 시청률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광고 때문이다. 한 프로그램에 광고를 투입하자면 눈에 보이는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TV 보는 방식이 다양해진 이상 TV 시청자를 상대로 방송되는 광고는 쓸모가 없다. 실질적 구매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최근 자연스러운 PPL로 인기를 끌던 '미생'이 점점 더 PPL이 많아진다는 불평이 종종 나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TV 시청률과 체감 인기의 격차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TV 광고를 넣어도 다운로드 시청자는 그 광고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PPL을 더 넣어야하는 상황일 것이라 짐작한다. 시청자가 간접광고를 싫다고 해도 수십억이 넘는 드라마 제작비가 광고비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광고주나 공정한 시청률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JTBC '뉴스룸'이 뉴스 신뢰도 면에서 1, 2위를 차지하면서도 시청률 집계에서 밀리는 이유도 시청방식의 변화 탓이 크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VOD나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는데 시청률이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2014년 하반기 공중파 드라마의 시청률을 보면 이 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공중파 3사 월화 드라마의 12월 2일 시청률을 합산해보면 모두 21.1% 밖에 되지 않는다. '내일도 칸타빌레(4.8%)', '오만과 편견(11.1%)', '비밀의 문(5.2%)'과 1%가 채 되지 않는 케이블 수치까지 합쳐봐야 22% 정도다. 최근 공중파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진 이유중 하나는 TV 앞에서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의 비중이 늘고 있다는 뜻으로 봐야한다.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광고비가 지불되는 미국 TV 시장에서도 TV 시청방식은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TV를 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PC나 스마트 기기로 TV를 시청하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기에 누굴 대상으로 어떤 광고를 수주해야하는지 고민중이라는 것이다. 공중파 드라마가 소위 '막장 드라마' 중심으로 편성되는 이유도 사실 이 '시청률'과 큰 관계가 있다. 질적으로 비판 받아도 시청률이 높으면 성공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TV 시청률이 현실적인 시청자 동향을 반영하지 못하면 공중파는 계속 지금과 똑같은 시청률 경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공중파에서도 '미생'같은 드라마를 보려면 시청률 집계방식부터 변해야한다. 드라마 '미생'이 던진 화두.
수년전부터 변화된 시청률을 반영하기 위해 CJE&M과 닐슨코리아가 콘텐츠 파워지수(CPI)를 개발했다. 뉴스 구독, 검색 순위, 몰입도 등을 따져 평가하는 CPI에서는 '미생'이 1위를 '피노키오'가 2위를 차지했다. 요새 낮은 시청률로 고전한다는 '무한도전'도 4위이다. 최고시청률 7.4%와는 전혀 다른 수치이다. CPI는 시청률 뿐만 아니라 화제성을 따진다는 뜻인데 '미생'의 인기는 TV 시청률 외에 또다른 평가지수가 필수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청률 집계 방식의 변화야 말로 공중파 TV 컨텐츠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될 것이다.
과거 엽기적인 분장으로 유명한 락스타 앨리스 쿠퍼는 강렬하고 박력있는 자신의 평소 스타일과 다른 노래 한곡을 선보인 적 있다. 'You and me'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앨리스 쿠퍼의 음악 중 가장 '조용한' 곡이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 100위 안에 올라있다. 뭐 한때 퍼포먼스가 살벌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었던 앨리스 쿠퍼의 노래중 가장 많이 방송을 탔고 유독 잔잔하고 서정적인 가사가 한국인 취향에 딱 맞았다. '우린 영화 배우가 아니라 그냥 우리일 뿐이고 나같은 워킹맨에게는 TV와 당신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내용의 가사는 퇴근하고 돌아와 연인과 함께 TV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제는 연인과 함께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보다는 홀로 누워 스마트폰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TV 없이 PC로 드라마와 예능을 다운로드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생' 속의 상사맨들은 TV는 커녕 가족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날이 많다. 공중파 드라마들은 이제 더 이상 '워킹맨'들을 위로하지 못하고 있다. 간혹 화제의 드라마가 뜨면 그제야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 사람들 - '미생'의 인기를 통해 TV 컨텐츠가 '워킹맨'들을 위로하는 방식이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을 공중파에서도 어서 빨리 깨닫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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