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하녀들' 스태프 사망, 인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드라마 촬영장

Shain 2014. 12. 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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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JTBC '하녀들' 연천 촬영장에서 갑작스런 화재가 발생해 '하녀들' 제작 스태프 중 한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JTBC로서는 이번 스태프 사망사고가 처음이 아니다. '꽃들의 전쟁', '달래 된, 장국' 2013년 촬영중에도 스태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적이 있다. '꽃들의 전쟁'은 조연출이 촬영장으로 복귀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고 '달래 된, 장국'은 촬영을 위해 이동하던 의상팀 스태프 2명이 추돌사고로 사망했다. 이번 '하녀들' 화재 사망사고는 2층에서 일을 하던 스크립터가 미처 피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세 드라마의 외주 제작사는 모두 '드라마하우스'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출자를 받아 설립된 제작사로 JTBC의 드라마 대부분을 이 제작사에서 제작하고 있다.


같은 외주제작사에서 발생한 세번째 스태프 사망사고. 드라마 촬영장의 인재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드라마 촬영 스태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은 JTBC 외의 여러 방송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작년만 해도 '대왕의 꿈' 촬영 중 소품트럭을 몰던 스태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박주미, 최수종같은 배우들도 촬영현장으로 이동하다가 크게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이전해에는 KBS '각시탈' 촬영중 엑스트라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다수의 인원이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했지만 대개의 경우 사고의 원인은 무리한 촬영일정으로 꼽힌다. 촬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새벽에 이동하다 보니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하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드라마를 촬영하는 공간의 현실은 지나치게 열악하다. 생방송 수준으로 밀어부치는 촬영일정에 한예슬이란 여배우가 도망가기도 했고 세트장에서 쪽잠을 자며 버티는 스태프들은 밥차에서 퍼주는 밥으로 하루를 버틴다. tvN의 '나쁜 녀석들'처럼 반사전제작이라도 하면 최소한 일정에 쫓기는 일은 조금 줄어들테고 시즌2까지 계획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길텐데 대부분의 드라마 촬영은 한판 크게 벌였다 사라지는 야시장같다. '유나의 거리' 종영 이후 '하녀들'의 방송일정을 미룬 것으로 보아 이 드라마도 제작분량이 꽤 모자랐던 모양이다.


물론 이번 '하녀들' 촬영장 사고는 이전의 교통사고들과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팬들이라면 한번쯤 드라마 세트장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가진 적 있을 것이다. 과거 공중파에서는 직접 드라마를 제작했기 때문에 방송국 안에 세트를 세워놓고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각 방송사들은 전용 드라마센터나 세트장을 통해 촬영을 진행하곤 한다. 또 사극 촬영처럼 야외 촬영이 필요할 땐 지방단체의 지원을 받아 세트장을 세우고 지방단체에서는 그 촬영장을 관광지로 활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작사의 힘으로는 세트장 비용 모두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드라마 세트장이나 지방단체 도움없이는 촬영을 시작할 수 없다.









그런데 모든 외주제작사들이 방송사의 스튜디오나 제작센터를 이용할 수는 없다. 방송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대작의 경우는 조금 낫지만 상대적으로 자본이 열악한 종편이나 작은 규모의 드라마들은 외부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는 창고형으로 지어져 내부에 세트를 꾸미는 크고작은 촬영장들이 여러 곳 있다. 때에 따라서는 지방단체가 홍보목적으로 특정 장소를 세트장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 KBS에서 방송중인 '힐러'의 오픈세트장은 과거 청주의 연초제조장이었던 곳이다. 주인공 힐러(지창욱)가 거주하는 공간은 원래 공장이었다.


이렇게 세트장이 전국적으로 세분화되어 나뉘어 있다 보니 사극의 길거리 촬영은 민속촌으로 수중촬영은 경기도내 아쿠아스튜디오로 특수 촬영은 다른 지방 특수스튜디오로 이동해 촬영하게 되고 스태프와 배우들의 이동시간이 길어진다. 제작사에서 관리하는 배우들이야 로드 매니저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낫지만 직접 촬영장비를 챙겨 이동하는 스태프들은 시간이 빠듯할 수 밖에 없다. 방송시간에 맞추기 위해 밤샘 촬영도 잦은 판에 이동거리까지 늘어나니 사고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하녀들'을 비롯한 여러 사극은 지방단체에서 제공한 세트장을 빌린다. 이동거리가 길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


이번 '하녀들' 화재사고가 일어난 곳은 로드뷰로 위치를 찾아보니 몇년전까지만 해도 섬유공장이었던 곳이다. 공장은 다른 건물에 비해 공간이 탁 트여있고 넓어 세트장으로 변신하기엔 최적의 장소지만 '하녀들' 촬영장소는 원래부터 촬영장이었던 곳과는 상황이 좀 달랐던 모양이다. 섬유공장으로 쓰던 곳을 촬영장으로 사용하려면 '방송통신시설(촬영소)로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전체 건물 중 일부만 사용승인을 받고 이번에 불이 난 제3동의 경우 아직 사용승인을 받지 않은 건물이었다고 한다(관련기사: 사용승인 받지 않은 2개동에 화재, 건축법 위반 혐의로 건물주 고발).


드라마 세트장은 조명과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장비 이외에도 주로 목재를 이용해 가건물을 설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공간이다. 스프링쿨러를 비롯한 완벽한 소방장비를 갖춰도 불이 붙으면 위험한 공간인데 소방시설이 없다면 더욱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스티로폼이나 목재가 순식간에 확 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자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화재가 난 세트장의 소방시설을 드라마 촬영장 기준에 맞게 설치하진 않은 듯하다('공사를 안한 상태'라는 인터뷰). 허가가 나지 않은 공장을 빌려 촬영했으니 드라마 제작사의 경찰조사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녀들'의 경우 외부촬영은 전국 여러 세트장과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세트촬영은 연천에서 진행했다.


빠듯한 일정에 열악한 시설 - 같은 드라마 제작사에서 세번 연속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난 원인이 고질적인 영세 외주제작사의 문제점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JTBC에서 전격적으로 밀어주는 드라마하우스가 다른 제작사에 비해 '영세'하냐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위 '대작'을 연이어 발표하는 유명 제작사와는 거리가 있다. 공중파 방송사와 갑을관계를 형성하는 작은 제작사들 보다는 좀 나을지 몰라도 예산이 적은 제작사라는 면에서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 '하녀들' 출연 배우들은 스태프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고 제작진 측은 스크립터인 염모씨의 사망전 상황과 화재 원인을 두고 조사를 받는 중이라 한다. 방송 촬영을 위한 연천세트장이 전소해 촬영일정도 불투명하다.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 보다 살릴 수도 있었던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사고다. 원칙과 조건을 지켰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 어디 드라마 촬영장 뿐이겠냐만 다른 노동현장과 다르게 드라마 촬영장은 방송사의 대응에 따라 좀더 나아질 수도 있는 곳이다. 촉박한 일정을 포기할 수 없다면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든지 완벽한 시설을 제공할 수 없다면 천천히 촬영하든지.


화재발생장소는 섬유공장이었던 곳으로 아직까지 드라마세트장을 위한 소방공사를 하지 않은 듯하다(이미지출처 : 세계일보).


이렇게 바람이 불고 건조한 날씨라면 촛불을 이용하는 세트장에 화재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 촬영장 화재는 조명이 원인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시설이 완벽하지 않은 장소를 선택했다는 점. 무리한 촬영일정으로 일어나는 빈번한 스태프 사망사고처럼 이번 화재사고 역시 인재일 수 밖에 없다. 그 원인이 방송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을' 입장일 수 밖에 없는 제작사의 열악한 자본이든 무리한 촬영일정이든 간에 최소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촬영하는 드라마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고질적인 드라마 촬영 관행이 바뀌기전에는 아마 불가능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안타깝게 희생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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