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늙어가는 공중파와 약진하는 케이블, 종편 - 2014년 드라마 결산[1]

Shain 2014. 12. 24.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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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KBS가 2015년 프로그램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KBS는 다른 공중파나 종편과는 달리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받는 방송사인 만큼 각종 공익성 프로그램 편성으로 종종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재미없고 지루한 방송사라는 선입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대개편'에 대한 평가는 일단 그리 좋지 않다. 힐링, 소통, 지적 호기심을 내세운 KBS의 개편 방향이 종편이나 케이블을 의식한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물론 KBS 측은 종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단막극 이외의 연속극을 편성하지 않던 금요일에 '스파이'를 편성한 것이나 낮 시간대에 시사 토크쇼를 편성한 것 등으로 보아 그리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2014년 3대 인기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은 TV 시청률 집계방식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케이블이 금요일에 '갑동이'나 '미생'같은 드라마를 편성한 것은 아무래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집중배치되는 공중파 프라임타임 드라마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테고(과거 SBS도 이런 시도를 한 적있다) 종편이 낮시간을 시사토크로 채운 것은 예능과 드라마 제작 능력이 다소 모자란 종편의 아이디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언론사 출신들인 만큼 시사 토론 프로그램 만큼은 경쟁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생각 보다 그 반응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대개편'으로 KBS가 그 시간대에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배치한 것이다. 이런데도 정말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공익'이라는 KBS 고유의 의무를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될 뿐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종편이나 케이블은 미미한 시청률로 공중파의 경쟁 상대가 못 되었다. 종편은 시청률 2%를 넘는 프로그램이 드물었고 케이블 역시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콘테스트 등으로 화제가 되긴 했으나 사회 이슈가 될 만큼 폭발적인 영향력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공중파가 케이블의 '수퍼스타K', '꽃보다할배'같은 한두가지 포맷, 컨셉을 가져다 쓰는 정도였다. 그러나 2014년은 달랐다.  2014년은 공중파가 대놓고 종편, 케이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JTBC는 '비정상회담', '히든싱어', '썰전'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중파의 아성을 위협했고 종편에서 '뜬' 출연자는 공중파에서도 환영받았다.


드라마 영역에서는 공중파와 종편의 차이가 선명해졌다. 공중파는 TV 시청률을 의식해 무난한 드라마를 제작하기 때문에 실험적인 성격의 드라마 제작이 힘든 편이다. 반면 tvN같은 케이블은 상대적으로 장르 선택이나 제작 방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공중파와는 다른, 색깔있는 드라마 제작에 집중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 tvN은 2014년에는 '미생'으로 케이블 컨텐츠의 저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공중파가 시청률에 발목잡혀 소위 '막장 드라마'에 올인하고 있을 때 종편과 케이블은 '미생', '유나의 거리', '밀회', '갑동이', '나쁜 녀석들'같은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일 수 있었고 '공중파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생겨났다.










2014년 공중파를 대표하는 드라마가 '왔다 장보리'였다면 2014년 종편과 케이블을 대표하는 드라마는 '미생'이다.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은 2014년을 달군 최고의 캐릭터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는 많은 직장인들을 울리고 웃긴 최고의 캐릭터다. 아무리 드라마를 안봐도 연민정이나 장그래라는 화제의 이름을 모르긴 힘들 것이다. 두 드라마는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 만큼이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누군가는 드라마 '미생'이 공중파에서 방송되었으면 시청률 4-50%는 거뜬히 넘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미생'이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왔다 장보리'가 케이블에서 방송되었다면 지금 정도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을 것이다.


공중파는 보는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악역과 감정과잉 연기로 시선을 끄는 드라마 흥행공식을 완성했고 '미생'같은 원작이 있는 컨텐츠라도 공중파 드라마 공식에 맞춰 변형시켜 버린다. 사실 '장보리'는 MBC라서 성공했고 '미생'도 케이블이라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또한 두 드라마의 인기를 같은 지표로 비교하기는 힘들 듯하다. TV 시청률을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종편과 케이블의 시청률이 공중파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왔다 장보리'의 공식 최고시청률은 37.3%, '미생'의 최고시청률은 8.24%다(닐슨코리아 기준).


아무리 '미생'이 케이블 드라마지만 왜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발생할까? 지난번에도 한번 포스팅한 적 있지만 이는 TV 시청률 집계방식이 변화한 시청자들의 TV 시청방식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40대 이상 고연령층은 여전히 TV를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지만 어린 연령대일 수록 스마트폰을 비롯한 VOD, 다운로드 서비스를 훨씬 더 많이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몇몇 조사기관의 보고서와 연구결과로도 나타난다. 2014년 한해 가장 큰 인기를 끈 드라마인 '별에서 온 그대', '왔다 장보리', '미생'의 TV 시청률을 조사해보면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참고자료 : TNms 보도자료).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왔다 장보리'와 '미생' 공중파와 케이블 드라마는 이렇게나 달랐다.


덧붙여 TV 시청에 대해 각종 기관에서 조사해본 결과는 꽤 의미있다. 시장조사업체 DMC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위 'N-스크린' 서비스가 보급되면서 방송컨텐츠 시청방식이 급변했다. 온라인,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방송, 다시보기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본방사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저물어버린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만19-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89.0%의 응답자가 스마트폰으로 다시보기를 이용한다고 했다(출처 : 전자신문 기사 - TV는 가라, 방송 콘텐츠 시청 행태 급변). 2014년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미생'의 성공은 시청률 집계방식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중파는 보통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 보다 높은 시청률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틀에 박힌 흥행공식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반면 케이블과 종편은 상대적으로 특정 연령대나 장르물을 제작해도 굳이 본방사수가 필요없으니 매니아들을 끌어들이기 유리한 조건이다. 공중파의 화제성 높은 드라마들도 시청률에선 밀리고 있다. 공중파에서 올 한해 시청률 20%가 넘는 드라마가 드물었다는 것은 급변한 TV 시청 환경의 탓이 클 것으로 본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발달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TV의 영향력과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지만 확실한 건 70년대처럼 TV 앞에 앉아 방송시간만 목빼고 기다리던 시청자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란 점이다.


종편과 케이블이 도약하고 시청률 집계 방식이 바뀌어야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이런 상황에서 공중파에서 '막장' 드라마에 올인하고 인지도 높은 유명 스타 기용, 뻔하고 진부한 흥행공식으로 시청률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낡은 방식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종편 채널이 늘어날 때 공중파의 하락세는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다. 공중파가 기존의 시청률에 매달려 늙어간다면 종편과 케이블은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갈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렇듯 달라진 시청 방식 때문에 공중파와 종편, 케이블을 만족시킬 완벽한 시청률 집계방식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2014년 한해는 공중파의 부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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