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드라마의 현실 비판이 절실했던 한해 - 2014년 드라마 결산[2]

Shain 2014. 12. 31. 10:21
728x90
반응형

과거 조선 시대에는 놀이패들의 마당놀이나 판소리가 사회풍자의 역할을 했다. 구경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욕설은 물론이고 지주 노릇하는 마름이나 양반층을 희화화해서 평소 말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이 그런 놀이들의 속성이었다. 때로는 역할극이고 때로는 노래와 함께 하는 쇼였던 이런 놀이들이 우리 나라 드라마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고전 '심청전'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다룬 이야기라면 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춘향전'에 변사또의 악행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조선의 현실을 다른 나라에 빗대 이야기한 해학극도 많지만 구경꾼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없는 주제였다면 그 놀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의 속성이 판타지라도 현실에서 벗어난 드라마가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청자는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 내가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


우리 나라 로펌의 생생한 얼굴을 보여준 드라마 '개과천선' 2014년은 그 어느 해보다 현실비판 드라마가 절실했다.


드라마가 현실을 벗어났다는 지적을 받은지 꽤 되었다. 서민 드라마가 실종되고 모든 것이 멜로로 마무리되는 정체불명의 장르극과 주인공이 제벌2세와 신데렐라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드라마들이 어느새 드라마의 대세가 되었다. 대중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청자의 요구와 제작자의 현실이 타협을 보지 못했다. 엇비슷한 분위기의 막장 드라마와 코믹멜로가 다수 쏟아졌고 제작비 확보를 위한 간접광고와 시청률 경쟁도 드라마의 극단적인 판타지화를 부추겼다. 그러나 2014년 방송된 드라마 중 몇편은 이런 분위기에 반전을 꾀해볼만하다.


2014년은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한해였다. 안전불감증과 관피아의 누적된 비리로 발생한 세월호 사고와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은 롯데월드, 정치, 경제계 비리와, 비정규직 이슈가 많은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드라마도 이런 국민적인 공감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드라마계에도 현실 비판적인 관점이 인기 아이템으로 환영받았고 '미생'같은 몇몇 작품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드라마의 '재미'는 현실을 반영할 때 극대화된다.


누군가는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말하지만 시청자들의 재미는 이야기의 흥미로움 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시청자는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흥미진진한 판타지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가상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빡빡하고 거친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 이 말은 드라마가 재미있으려면 현실 세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드라마는 어느 순간 판타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SF 판타지도 있지만 신데렐라 판타지, 줌마렐라 판타지부터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묘사하는지 알 수 없는 사극판타지까지 - 시청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시청자들은 각자 2014년 최고의 드라마를 뽑을 것이다. 시청률이나 재미 좋아하는 배우를 기준으로 각자 손꼽을 수 있는 드라마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의 현실비판 즉 '사회성'을 기준으로 올해의 최고 드라마를 선정해 보려 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작게든 적게든 일정 부분 사회풍자를 포함시키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 아무리 허구라고 부연설명해도 실제 사건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드라마들을 2014년 최고의 드라마로 선택할 것이다. 비록 연기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였다고 말해줘야할 것같다. 2014년은 드라마의 그런 사회적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한해였으니까.











▶ 개과천선(MBC, 16부작, 2014.04.30-2014.06.26)


상반기 최고의 화제 드라마이자 법조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 드라마 '개촤천선'은 원래 18부작이었지만 빡빡한 촬영일정에 밀려 조기종영하고 말았다. '장관사관학교'로 불리던 실제 로펌 '김앤장'을 모델로 한 이 드라마는 삼성 - 허베이스트리트 충돌사고와 연예인 스캔들, 골드만삭스, 키코 사태 등 우리 나라의 법조계의 추악한 뒷면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문제작이었다. 로펌의 변호사들이 재판에서 이기는 판을 만들기 위해 전관예우에 몰두하고 증인을 매수하는 등 약자 보다는 돈에 매달리는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제작진이 조기종영의 이유를 김명민의 스케줄로 돌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가 외압 때문에 제작 분량을 채우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것도 그 때문.


차영우(김상중)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정의 보다는 돈을 쫓던 김석주(김명민)가 기억을 잃고 약자의 편으로 돌아서는 과정은 우리 나라 법조계의 지독한 현실을 반영한다. 의욕은 있어도 윗선의 압력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검사와 돈과 권력으로 재판에서 이기는 변호사 - 그들의 갈등과 대립이 긴장감있고 흥미롭다. 그러나 멜로와 출생의 비밀없이도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잘 보여준 이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되는 드라마 제작의 현실과 주연배우가 아파도 쉴 수 없는 제작환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가 되었다. MBC의 현실을 생각하면 주연배우들과 최희라 작가가 합의해도 절대 시즌2가 나올 수 없는 드라마로 꼽히기도 한다.




▶ 유나의 거리(JTBC, 50부작, 2014.05.19-2014.11.11)


거리의 소매치기 유나(김옥빈)와 만능 일꾼인 김창만(이희준)이 전직 조폭 한만복(이문식)에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잔잔한 시선으로 그린 드라마. 많은 드라마들이 화려하고 풍족한 재벌가의 모습을 묘사한 반면 '유나의 거리'는 월세방에 세들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유나가 소매치기의 딸로 태어나 소매치기 무리의 일원이 되고 전과자가 되는 과정, 창만처럼 열심히 살고 싶어도 되돌아오기 힘든 전과자 유나의 속사정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바른 생활 사나이' 창만이 유나와 한만복네 사람들을 따뜻한 인정으로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름다웠던 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물질적 풍요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회복에 있음을 드라마로 보여줬다.




▶ 정도전(KBS, 50부작, 2014.01.04-2014.06.29)


2014년 최고의 사극이자 현대 정치의 속성을 신랄하게 풍자한 '정도전'은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된 드라마 중 하나이다. 시대적으로는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는 14세기를 배경으로 신진사대부와 군인 세력의 갈등을 현대사의 권력관계에 빗댄 부분은 정말 탁월했다. '정도전'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라는 정현민 작가의 역량이 드러난 드라마이자 역사서에 등장하던 실존 인물들을 역동적 캐릭터로 재해석한 드라마로 정통사극도 현대극 만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의상과 여러 전투장면에서 드러난 시대 고증도 완벽했고 최영(서인석), 이인임(박영규)을 비롯한 여러 실존인물들을 연기한 연기자들도 훌륭했다.



외세로 혼란스러운 고려왕조에서 무려 14년간 집권한 이인임의 정치적 역량은 젊은 정치인들이 쉽게 이길 수 없는 현실적인 벽이다. 모범적인 태도로 성리학을 이야기하는 정몽주(임호)도 고려 정치판의 철저한 변방 출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성계(유동근)도 이인임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고려라는 판을 갈아엎고 새 왕조를 세우자는 정도전(조재현)의 계획은 하나의 혁명이자 꿈이었다. 드라마는 다소 현대적인 이 주제를 사서속 역사에 잘 버무려넣었고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정도전'은 정통사극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 드라마이자 젊은 정치인들을 위한 조언이 담긴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 미생(tvN, 20부작, 2014.10.17-2014.12.20)


2014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 '미생'은 비정규직으로 대기업 원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임시완)를 주인공으로 직장생활의 비애와 즐거움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제작이다. 삼각관계와 출생의 비밀로 채워진 공중파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나 현실세계 비정규직의 고통과 '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명작이기도 하다. 스펙을 쌓아 취업하기 위해 기를 쓰는 젊은이들과 그들의 조건에 맞지 않아 왕따당하는 장그래와 입사 후에도 계약직으로 차별받는 장그래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을 울고 울렸다. 특히 부하직원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감싸안으며 회사의 부조리와 싸우는 오상식(이성민)은 직장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사의 롤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안영이(강소라)와 워킹맘으로 하루하루가 고달픈 선지영(신은정)의 차장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런 신랄한 현실 묘사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의 속사정을 살피는 따뜻한 시선으로 '힐링'을 준 드라마. 윤태호 원작의 만화 '미생'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로 2014년 화제작들 중 유일하게 시즌2를 제작할 것이라 예상되는 드라마 '미생'의 인기에 힘입어 정치권에서 비정규직을 위한 '장그래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위한 법이라기 보다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라 드라마에서 제기한 현실 비판과는 맞지 않는 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 피노키오(SBS, 20부작, 2014.11.12-)


이 드라마는 언론이 진실을 외면하고 기자가 '기레기'라 불리는 시대를 배경을 만들어진 판타지다. 주인공 기하명(이종석)은 이웃들에게 존경받는 소방관 아버지가 화재 진압과정에서 사망하고 기자들의 오보로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죄인으로 비난받는 걸 목격하고 언론을 증오하며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오보를 낸 당사자는 기하명이 사랑하는 최인하(박신혜)의 엄마 송차옥(진경) - 송차옥에게 복수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기자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기하명은 기재명(윤균상)의 살인사건을 보도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드라마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딸국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 '피노키오 증후군'을 설정하여 거짓말에 대한 바로미터로 이용한다. 기자들은 때로는 진실을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이슈를 만들기 위해 왜곡된 사실을 보도한다. 과연 기하명 형제의 아버지가 누명을 써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멜로와 미스터리 그리고 언론에 대한 사회비판까지 적절히 섞인 이 드라마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던 '언론'이라는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고찰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공중파의 사회 비판 드라마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기대되는 드라마 중 하나다.




▶ 오만과 편견(MBC, 20부작, 2014.10.27-)


2014년 하반기 '대장금2'를 기획하고 있던 MBC가 '대장금2'를 대신하여 방송하기 시작한 드라마로 인천지법 민생안정팀을 중심으로 13년전 사건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을 파헤친다.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의 동생은 13년전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수사관 강수(이태환)는 어린 시절 모종의 사고로 기억을 잃고 '삼시세끼' 하숙집 할머니 손에 자란다. 한 아이가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구동치(최진혁)는 그때의 사건을 파헤칠 생각으로 검사가 되었다. 정치, 경제와 무관할 수 없는 법조계의 속성을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치는 드라마.


특히 문희만(최민수) 검사는 한때 재벌의 비리를 파헤치고 정의로운 검사가 되길 원했으나 동료의 과실을 덮는 과정에서 또다른 재벌과 손잡고 부정한 방법을 선택한 검사라는 지위를 떠나면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검사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또 '오만과 편견'은 담백한 멜로와 짜임새있는 미스터리로 사회의 계약직, 아동범죄, 권력형 비리 등을 언급하며 사회적 이슈를 간과하지 않는 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민수와 정창기 역의 손창민을 제외하면 신인급 연기자들이고 출연료 비싼 탑스타를 기용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어디까지나 대본의 힘이 아닌가 싶다.




▶ 펀치(SBS, 20부작, 2014.12.15-)


드라마 '추적자(2012)', '황금의 제국(2013)' 등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줬던 박경수 작가의 '펀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박정환(김래원)의 시한부 삶을 통해 법조계의 권력싸움을 보여준다. 맨주먹으로 일어서 검사가 되고 검찰총장을 꿈꾸는 이태준(조재현)과 박정환의 모습은 절대적인 가치와 가족을 희생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한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갖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버텨온 세월이 가져다 준 것은 6개월의 생명 뿐이고 그때서야 뒤돌아본 자신의 모습이 부정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모습일 때 검사 박정환은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법조계의 권력은 정치, 경제, 의료 분야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를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법무부장관(최명길)과 검찰총장의 알력다툼을 통해 누가 더 옳고 그르냐를 따져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검사가 정의 보다 비리를 선택하는 과정을 봐야하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박정환의 남은 삶을 통해 검찰청의 내부사정을 박경수 작가의 진지한 대사로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