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MBC 연기대상은 별로 볼거리가 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MBC '왔다 장보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시청률 성적이 좋지 않았고 프라임타임 드라마도 개인적으로 받을 사람이 뻔한 편이라이중에서 과연 대상을 줄만한 레벨의 연기자가 있나 싶기도 했다. 올한해 MBC 드라마는 주연급 보다는 조연급들의 활약이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작품성이든 시청률이든 어느 잣대로 평가해도 작품들이 고만고만하다 보니 최우수상이나 우수상 수상자들 보다 황금연기상 수상자 경쟁이 더 치열하지 않을까 싶었고 시상식 전부터 누가 후보로 올랐나 눈여겨 보고 있었다. 역시나 안내상, 최민수, 박상원, 전국환, 이덕화 등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무게있는 역할을 했던 중견배우들 뿐이다.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상을 수상한 최민수가 백진희를 통해 밝힌 수상거부의 참뜻은?
수상자는 '왔다 장보리'의 안내상과 '오만과 편견'의 최민수. 그런데 수상자 발표 후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원래 시상식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배우가 대리 수상하는 경우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최민수의 대리수상하러 온 백진희가 최민수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만과 편견'의 백진희가 직접 읽은 수상소감은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었다. 문자메시지의 앞부분은 최민수가 황금연기상 수상을 거부한다는 말이었는데 어제 하루 수상에 바빴던 백진희가 문제 메시지의 뒷부분을 마저 옮겨적지 못해 그 자세한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최민수는 민생안정팀 부장검사 역을 맡고 있다. 때로는 후배 검사들을 감싸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때로는 윗줄과 타협하는 노련한 부장검사 역의 최민수는 황금연기상이 아닌 더 좋은 상을 받아도 손색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말끝마다 '그죠'를 남발하는 독특한 캐릭터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핵심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갑작스런 수상 거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마지막까지 전달하지 못한 소감의 마지막 부분은 무엇일까. 시상식 내내 궁금증이 생겼고 최민수의 수상거부는 2014년 MBC 연기대상의 최고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포털사이트를 통해 밝혀진 문자메시지의 전문은 시청자를 놀라게 할만했다. 다소 우회적이긴 하나 '잘한게 없어서 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차가운 바다 깊숙히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역할이 권력 싸움에 치여 양심을 버리는 부장 검사 역이라서 그럴까. 최민수의 수상거부 소감은 많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아직까지 구조되지 못한 세월호의 남은 실종자들이 저절로 떠오르는 듯한 수상 거부 소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민생안정팀 부장 문희만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의미 있는 작품을 하게 해주신 MBC, 김진민 감독, 이현주 작가에게 감사드리며 무엇보다도 '오만과 편견'을 사랑해주시는 시청자들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더불어 우리 인천지검 민생안정팀에게도요.
허나 다른 때도 아니고 요즘은 제가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뭐 잘한 게 있어야 상을 받죠 그죠? 해서 죄송스럽지만 이 수상을 정중히 거부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오만과 편견'을 끝까지 사랑해 주실거죠? 그죠?
누군가는 최민수의 허세가 싶하다고 하지만 배우 최민수는 가끔씩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과거 식당 앞에서 벌어진 시비에서도 충분히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입을 다문채 대중의 비난을 감수했고 카리스마있는 외모와는 달리 아줌마 같다는 성격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던 황금연기상을 거부할 줄 누가 알았으며 그 거부의 이유가 '양심과 희망에 대한 도리'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던 모습일까. 예상치 못한 장면이지만 결코 불쾌한 장면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지만 켤코 불쾌하지는 않았던 최민수의 수상거부. 그는 가끔씩 이렇게 시청자를 놀래킨다.
연말은 늘 축제의 분위기고 한해를 정리하는 시끌벅적한 행사 속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종종 잊곤 한다. 어제 열린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도 조연급이라서 또는 촬영중이라서 함께 하지 못한 배우들이 있고 연기대상같은 건 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역할이 검사라서, 양심에 걸려서 상을 받지 못하겠다니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배우 최민수의 메소드 연기 탓일까. 아니면 배우 아닌 인간 최민수가 소외된 사람들과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였을까. 그 진정한 속뜻이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의 수상거부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제 방송된 2014 MBC 연기대상은 별다른 이변이 없었다는 평이다. 주말드라마의 성공을 제외하면 프라임타임 드라마 중 별다른 히트작이 없는 MBC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오만과 편견'의 성공은 이례적이다. 2014년 하반기 동안 문희만 부장검사 역을 맡아 현실을 고민하는 역할로 살아온 최민수에게 이렇게나 고마운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오만과 편견'에서 보여준 연기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수상 거부로 또다른 감동을 주다니 역시 최민수는 타고난 배우가 아닌가 싶다. 배우가 시청자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 - 최민수의 수상 거부 소감이야 말로 감사했고 드라마로 보여준 그의 진정성이 친근하게 다가왔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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