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너를 닮은 사람, 영원히 완성되지 못하는 그의 그림

Shain 2021. 12. 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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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씁쓸한 마무리네요. 이 드라마의 그림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바뀌겠죠. 가족을 위한 그림을 그리던 희주(고현정)에게 그림은 스쳐 지나가는 세계 중 하나였겠지만 세상을 그림 중심으로 받아들이던 서우재(김재영)와 구해원(신현빈)에게 그림은 상대의 전부이고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겁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리사(김수안)는 그 과정에서 널뛰기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죠. 그것이 그들의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리사가 느끼던 감정에 공감했던 구해원은 생각보다 순순히 정희주를 놓아줍니다. 그 사고를 저지르게 된 원인은 꽤 여러 사람에게 있었고 그 책임에 공감했던 것입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들의 갈등은 그렇게 봉합된 듯합니다. 우재를 떠올리며 구혜원은 슬픔에 울부짖었지만 아이들은 그 상황을 모른 채 잘 지내고 있고 현성(최원영)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고 안민서(장혜진)도 희주와의 비밀을 묻은 채 상황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그들의 사랑, 단 한 번의 사랑이었는데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정리되나 봐요.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감정적으로 좀 안타깝고 차분한 순간에 맞은 그들의 이별은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모허 언덕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

 

모허 언덕은 날이 좋을 때 더 아름답다고 하던가요. 그들은 짧은 시간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을 하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우재(김재영)는 기억을 잃었고 그간 일어난 일을 모두 잊어버렸죠.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없이 그를 떠났고 그를 떠났고 자신의 아이인 줄 알고 정성껏 돌봤던 아이는 남의 아이라고 합니다. 그 모든 일이 그의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만약 기억상실로 있던 시간이 짧았다면 그리고 좀 더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인데 리사(김수안)와 있었던 일처럼 짧게 잊어버리면 될 일인데 그들은 모두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리사가 그렇게 극성스러운 성격이 아니었다면 현성이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집착이 덜 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별일이 없었겠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너무 파격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처음 고백을 받아들일 때처럼 망설였다면 아니 속이기 전에 미래를 생각했다면 차라리 파격적으로 훌쩍 야반도주라도 했다면 그들은 망설이고 후회했고 그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겪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잊어버렸을 때라도 돌아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죠. 모허 언덕에서의 기억은 이제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짧은 사랑의 대가로 그들은 평생을 바쳤습니다.

 

서우재가 죽고 난 후 구정연(서정연)은 혜원을 찾아옵니다. 엄마 대신 용서를 빌겠다는 정연에게 사과는 대신하는 게 아니라는 해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마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내가 뭘 용서하고 말 자격이 있나요. 나도 잘한 게 없는데'라는 말은 결국 자기 잘못을 돌아보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구혜원이 잘못한 만큼 정희주도 악을 썼고 그들이 갈등하는 사이 누군가 죽었습니다. 그 잘못을 하나하나 따진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누군가의 충고 덕분인지 그는 다시 시작해볼까 마음먹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칼에 찔리는 혜원은 안타깝기도 하더군요. 남은 건 이제 죽은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뿐이지만 그들은 그제야 화해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아름다웠던 추억에 어울리는 그 노래  Midnight Sun

 

우재가 죽고 난 후 생기를 잃은 희주는 기운 없이 살아갑니다. 그의 태도는 현성도 이해 못 했지만 그는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모두 잊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 걸까요. 평범한 그녀는 이제 재능 있는 작가가 아닌 평범한 호스피스처럼 보입니다. 예전에 해원이 우재가 말도 없이 떠난 후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처럼 이젠 희주가 그런 사람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던 혜원처럼 이제 그의 모습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희주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아이를 떠나보냈으니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종소리는 계속해서 속삭이던 그 남자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고 울려 퍼집니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던 우재의 억울함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남아 있는 우재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몰라도 그 종소리는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게 종소리가 들린다'는 우재의 주문 때문일까요. 그녀는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들리는 종소리 때문에 놀랍니다. 대체 그의 사랑은 어디까지였길래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종은 울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캐리어를 버릴 때 모든 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한 번뿐인 사랑이었고 그런데 그 사랑이 하필 불륜이었고 자리를 지키던 남편도 그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없을 것입니다. 아이를 지키려고 모든 걸 포기했지만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드라마 자체에 대한 평가는 두고 보더라도 드라마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극까지 치달았지만 흥미롭게도 재미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미를 잘 살린 편이죠. 흔히 말하는 막장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지독한 사랑을 저렇게 살릴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배우 최원영이 연기한 사랑은 저렇게 잔잔할 수 있군요.

 

 

드라마를 살린 조건 중 하나인 OST도 흥행의 조건이 아니었나 싶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음악처럼 잔잔하게 파고들었고 주인공들의 사랑을 묘사하기에 적절했습니다. 특히 Midnight Sun 같은 선곡은 아무 배경 없이 OST만 들어도 그 제체로 훌륭합니다. 음색이 낯설면서도 극적인데 그 자체가 이미 완성된 OST네요. 오랫동안 배경음악과 잔잔한 목소리가 여운이 남을 것 같아요. 잔잔하게 속삭이던 목소리 그리고 그림처럼 음악 안에 담긴 슬픔 같은 - 큰 컵을 비우고 그 안에 핸드폰을 켜놓고 - 그 순간처럼 음악이 속삭이고 있네요.

 

 

( ost 목록 - 이승윤 / I Am Lost, 김경희/ Midnight Sun, 김예림/ The Moment, Janet Suhh/ Knocking On, 사비나 앤 드론즈 / Moving Aw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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