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기록과 약간 다르지만 정종은 이방원에게 요청하여 상왕이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이방간의 난은 결국 이렇게 이방원의 난을 해결할 수 있는 빌미가 되어 줍니다. 이방과는 역시 이방과는 역시 맏형이었습니다. 이방과은 애초에 형제와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방원에게 시호만큼은 자신이 받겠다고 선언합니다. 2년만 왕위를 맡아줄 왕에게 시호 따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태종'의 시호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렇게 태종은 태종이 됩니다. 중간에 왕권 양위를 위한 입양 과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방원을 정종의 아들로 입양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태종 다음 왕은 세조라는 순서만 지키면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던 거죠. 아무튼 그렇게 조선 왕조의 기반은 간신히 유지될 수 있었고 태조는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공정왕 이방과(김명수)의 아내 정안왕후(김서연)는 꽤 오래 살았습니다. 정종은 단 2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태조가 58세에 등극했으니 극 중에서 태종이 수시로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확인하던 상황은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정종은 42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왕위에 올랐던 왕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꽤 많은 나이였죠. 그런 상황이니 왕위 계승은 당연히 힘들 테고 왕들의 나이가 많은 것도 그럴만했습니다. 공정왕은 아이를 너무 많아 낳아 끝까지 속을 썩인 것은 끝까지 단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어쨌든 아이를 많이 낳은 건 죄가 아니니까요.
어찌 되었든 태종(주상욱)은 10여 년 간 혼란에 빠져있던 궁궐에 최초로 평화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잔인한 인물이든 피의 칼바람을 불게 했든 간에 확실한 건 태종이 없었으면 그 살상도 없었겠지만 고려 왕조의 혼란을 거둘 인물도 없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이숙번(정태우)의 말처럼 군사들의 역적모의는 피바람이 불게 하는 계기인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잡을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하륜(남성진)은 술 마시면서 '용상을 뒤집어서라도 한몫 잡으려 한다'며 하륜의 행태를 은근슬쩍 비난합니다. 술에 취해서 머리에 각종 장신구를 꽂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는 하륜은 그 점이 이숙번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숙번이 약간 무모하리 만큼 과감하게 행동하는 타입이라면 하륜은 그래도 눈치는 보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의 차이점은 그들의 미래를 다르게 할 것입니다.
왕위 승계를 위한 싸움은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방의(홍경인)과 전투할 뻔했던 일도 덮고 방간(조순창)만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역모지만 보는 사람들이 무서워 일단 형제들 간의 싸움을 그렇게 접어둡니다. 이방우(엄효섭), 이방과(김명수), 이방의, 방간의 싸움은 그렇게 일단락됩니다. 원래 왕위 싸움은 좀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 마련인데 그나마 간단하게 정리된 셈입니다. 왕위 계승을 축하하며 민씨 집안의 민재(김규철)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장면에서 하륜은 인상이 변합니다. 모두가 기뻐할 자리임에 틀림없는데 왜 하륜은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일까요. 하륜은 '내가 세자 저하라면 숨이 좀 막힐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후궁을 들일 때가 된 거죠.
과감하지만 겁 없는 원경왕후의 선택
붉은색 옷을 입으면 그 자체가 왕비의 옷을 나타내는 것이죠. 이성계, 이방과, 이방원 그 세 사람이 붉은 옷을 입었습니다. 한마디로 원경왕후(박진희)는 이제 왕실 최고의 여인이 된 것입니다. 윗전으로 아버지 이성계가 있고 아랫사람으로 후궁을 여럿 둔 정안왕후(김서연)가 있지만 2명의 상왕들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죠. 그렇지만 정안왕후는 매우 불편한 색을 감추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는데요. 바로 후궁 문제 때문입니다. 한때는 오손도손 서로 한편이 되어 군사 동원이나 협력 문제까지 모두 함께 했는데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종이 원경왕후를 사랑하지 않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아이도 낳고 그런 것을 보면 둘은 애증의 관계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문득 생각해보는데 이방원은 후궁을 많이 두고 싶었던 것일까요. 태종은 원 없이 아이를 낳습니다. 마치 후손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도 되는 듯이 끊임없이 아이를 낳죠. 사실 조선 초기에는 적당히 세력이 모였으면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왕실이 번창하고 후계구도 역시 단단해집니다. 왕위에 뜻이 없던 왕자라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보다는 인맥과 관계를 쌓는데 유리하죠. 그런데 원경왕후는 그 정도 이상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태조는 혼인 이후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효빈 김씨는 태종이 부리던 가비 출신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아랫사람이었으니 명에 복종하고 따르는 인물이 효빈 김씨(효순 궁주)였습니다.
정비(원경왕후)에게는 모두 4남 4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낳은 이유에는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핑계를 없애는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고편을 보니 하륜이 바람을 넣는 것 같고 아무래도 태종이 다른 여성을 들이는 것 같아요. 붉은 옷을 입은 것 보니 저 옷은 결혼식 때 입었던 혼례복 같습니다. 혼례식에서 원경왕후를 향해 퍼부었던 시점에 정비는 또 울먹입니다. "상감께서는 어찌하여 예전의 뜻을 잊으셨습니까? 제가 상감과 더불어 함께 어려움을 지키고 같이 화란(禍亂)을 겪어 국가를 차지하였사온데, 이제 나를 잊음이 어찌 여기에 이르셨습니까?"라고. 조정에서 그렇게 고생한 인물에게 한껏 원망을 퍼부은 거죠. 그들은 결국 권홍의 딸을 후궁으로 맞았습니다. 상황과 관계없이 측은한 눈물이죠.
언제부터인가 태종은 여자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데 공신들을 굉장히 경계한 것 같습니다. "궁빈(宮嬪)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 점점 두렵다."라는 발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고편이었죠. 악정을 맞아들일 때 후궁인 숙의를 뽑으려 하자 원경왕후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합니다. 하긴 워낙 부부 사이가 돈독해 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다른 곳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정종(김명수)은 태종의 의지에 따라 사병 혁파를 주장하였으나 이는 정도전(이광기)도 원래 하려던 일이었죠. 그렇게 병권을 빼앗기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합니다. 특히 조영무(김법래) 같은 무장은 군장기를 즉시 반납하지 않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뒤로도 꽤 여러 번 논란이 일어났죠.
군대 문제는 누구나 상당히 예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란이 잠잠해진 것은 불과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군사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방간(조순창)의 난이 마무리된 것도 일 년 안팎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를 거두라니 그렇지만 군대를 결국 거두게 됩니다. 결국 이 문제는 원경왕후 쪽에서 조용하 넘어가자고 한 것인지 아니면 반발을 멈춘 것인지 몰라도 어쨌든 넘어갔습니다. 사실 민제 가문이 다소 보잘것없는 여흥 민씨와 혼인한 것은 가문의 덕을 보고 싶어서라는 추정이 대세입니다. 가문의 적당히 사병도 많고 적당히 갖춘 여흥 민 씨는 꽤나 의지할만한 집안이었죠. 그런데 권력을 가지자마자 바로 배신한 것입니다.
여흥 민씨라는 집안이 너무 커지니까 혼인을 통해 집안의 영향력을 줄여보자 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뭐 적당히 힘을 키웠으면 새 사람도 받아들이고 점점 줄여나가는 법도 배워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나 봅니다. 한편 집 나가서 어딨는 줄도 모르는 이성계(김영철)는 오랫동안 바깥 생활을 하면서 함흥차사(咸興差使)의 고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뭐 그런데 실제로 죽은 사람은 없었죠. '조사의 난'으로 죽은 인물만 있었을 뿐입니다. 다만 이성계의 반란만큼은 실제로 있었던(있던 일로 추정합시다) 일인데 동북면에서 이방석(김진성)을 위해 이성계는 난을 일으켰습니다(이름이 조사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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