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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되는 사극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채시라가 주연을 맡은 ' 1KBS 천추태후(2008)', 정려원 주연의 'SBS 자명고(2009)', 이요원 주연의 'MBC 선덕여왕(2009)'이 그것이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역사 속 여자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들은 대하사극이란 공통점이 있다. 여성이 정치 일선에 나선 드라마를 내세움은 시대의 경향이라 이야기한다.
사료를 구하기 쉬운 조선시기에 집중되어 있던 역사 드라마들은 소재 빈곤에 시달려왔다. 같은 소재로 몇년 마다 다시 작업하기를 반복하기도 했었던 '장희빈' 경우는 '몇 대 장희빈'이란 타이틀을 배우에게 붙일 정도다. 남들이 다 아는 '역사'를 가지고 볼거리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대극'이라는 또다른 구분이 있긴 하지만 많은 역사 드라마들이 '사극'으로 분류된다. 즉 역사 속 인물들이 출연해 극을 이끌어간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고증'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사서 속의 인물을 그대로 표현해야함도 물론이고 당시의 시대상을 TV에서 재현해낼 수 있음이 사극의 가치를 결정하곤 했다. 2
60-80년대까지 제작된 조선왕조 혹은 삼국시대의 사극은 시대에 안맞는 형태의 나일론 한복을 입은 연기자들이 부족한 세트 안에서 찍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통 사극이라는 표현 보단 '야사'를 드라마로 옮긴 것이라 보는게 옳을 지 모르겠다(당시는 우리 나라 사서가 완전히 분석되거나 한역되지 않은 시대였다).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해석이 그대로 TV를 타기도 했다.
시대를 거치면서 제작자들은 제대로된 사극을 만들기 위해 각 방송국들은 꾸준히 노력했고 MBC에서는 신봉승 작가의 '조선왕조오백년(1983)'같은 연대기식 사극이 만들어진다. KBS는 삼국시대,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여러 시대를 오가며 KBS식 사극의 기틀을 마련했고 90년대엔 '용의 눈물(1996)'을 선보이게 된다. SBS는 '장희빈(1995)'을 제작하여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료 속 인물들이 대중과 가까워지게 됐고, 다양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은 사극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극 속 주인공들은 구태의연하단 지적도 받게 된다(혹은 너무 현대적이거나). 사극 시청의 재미는 같은 사실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과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음에도 드라마 속 사극 주인공은 그 캐릭터를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최초의 퓨전 사극은 'MBC 조선왕조오백년' 시리즈 중 1989년 제작된 '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시리즈의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이병훈씨다. 두세 명의 가상인물을 중심으로 진행하며(길용우, 채시라, 최진실이 그 가상인물들) 신유박해 이야기를 그렸다. 정통 사극이 아니라 이상하단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당시에 존재하던 시대극과는 달라야하지 않을까 하던 평) 신선한 시도였단 반응도 많았다고 한다.
이 퓨전 사극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바로 인물중심의 사극 출현이다. 퓨전사극의 붐을 가져온 '허준(1999)'은 사서 속에 언급된 인물이긴 하지만 주인공의 인생 대부분은 작가의 창작으로 구성된다. 사서 속에 단 한줄 기록된 인물을 TV가 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준은 퓨전사극식 일대기 구조의 기틀을 마련한다. 요즘 흔히보는 사극 속 인물의 형태, 불행한 어린시절, 험난한 성장과 고난, 뛰어난 영웅으로 성공, 세상에 인정받는 위인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기본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 구조는 최근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어린 덕만공주가 중국에서 굴러야하는 이유는 천첩출생 허준이 어린시절 밀수입을 했어야했던 까닭과 같을 지 모른다.
창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방식은 연대기 구성을 따르지 않는(실록이나 사서를 따르지 않는) 대부분의 사극이 차용하는 형태로 'MBC 주몽(2006)', 'KBS 바람의 나라(2008)', 'MBC 대장금(2003)', 'SBS 자명고(2009)' 등 대부분 사극에 그대로 이어진다. 이젠 퓨전사극의 시대를 지나 판타지 사극의 시대이다. 정보가 부족한 사서 속 인물들을 채운 건 100% 허구의 사실들 뿐이다(그것도 가상현실).
사서 속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인물들. 그들의 인생을 조명해보자면 창작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특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보면 기록된 사서 속 인물이라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 부분에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지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가미될 것이다. 퓨전 사극은 이런 시대적 재해석과 사료 부족, 그리고 소재 부족 등의 여러 원인 덕에 등장한 드라마 형태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기류는 이어져 기존에 보던 역사 속 인물같지 않은 캐릭터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탄생하곤 했다. 퓨전 사극 속에서 재해석된 역사는 꽤 '그럴 듯'하기도 했지만 일부에게는 역사 왜곡의 논란도 자주 낳았다. 사서에 적힌 내용을 부정하면서까지 드라마 제작을 해야겠냐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한국 퓨전 사극의 경우 특히 판타지 속성까지 가미된 경우가 많아 '판타지 사극'이란 별명을 얻는다. 이른바 SF의 속성을 가미한 사극이란 이야기다.
꽤 오랫 동안 사극 속 한복은 조선 말기의 형태인 짧은 공단 저고리였다. 한복 저고리가 짧아진 건 한참 후였고 영조 이후의 왕실은 가채를 쓰지 않았단 사실 조차 반영하지 못한 사극이 많았다. 사료가 부족하던 과거에 비해 고증이 상대적으로 쉬워진 퓨전 사극은 고증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중국식 혹은 일본식 소품을 사용한단 비난도 받았고(상대적으로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현대적인 까닭일 때도 있다) 지역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물품을 등장시켜 지적당하기도 했다.
그중 퓨전 사극이 가장 비난을 받는 건 역시 과장된 개인의 인생이다. 주인공의 삶이 조명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악인이 되어야하는 사람들, 그 개인의 인생을 재조명한다 해도 덮을 수 없는 과오를 미화하는 일, 혹은 각종 고사에서 전해내려올 듯한 이야기를 영웅의 개인사로 바꿔놓는 것 등. 사극 속 인물이 영웅이 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을 패턴화시켜놓기도 했다. 창작된 내용을 진짜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건 그나마 애교스런 문제다.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드라마화한 'MBC 조선왕조오백년'은 추동궁마마, 뿌리 깊은 나무, 설중매, 풍란, 임진왜란, 회천문, 남한산성, 인현왕후, 한중록, 파문, 대원군 등 많은 시리즈를 탄생하며 인기 드라마로 자리잡았다. 1983년, 정치가 방송을 장악한단 평가를 듣던 시대에 태어난 드라마들은 불운한 경우가 많았다. 선정적 내용으로 제재를 당하기도 하고 반공 드라마를 의무적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정통 사극 역시 이런 경향에 예외는 아니어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 평가가 '시대에 맞춰' 이루어졌다고 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당시의 대통령과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한 까닭인지 고려 왕조의 부패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이성계의 당위성과 조선의 태평성대를 강조한 '추동궁마마(1983)'는 지금 생각하면 낯뜨거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의 분쟁을 연상시키는 당파 싸움을 제외하는 경향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전체에 이 경향이 이어져 '임진왜란(1985)'를 비롯한 여러 시리즈는 조기 조영의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1986년엔 예전에 비해 완성도가 높지 않은 시리즈를 만들게 되고 1987년엔 외압으로 잠시 시리즈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사극에 포함된 정치성이 현대의 국민들에 영향 줄까 두려워 조정된 것이다(이런 사례는 종종 등장한다). 역사가 가지는 교훈이란 특성 때문에 위정자들이 두려워했을만한 부분이다.
사극은 작가가 사료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인물을 재조명할 수 있다. 작가의 선악 판단에 따라 인수대비는 성인으로 보일 수 있고 연산군은 영리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역사적 사실로도 정통사극일지라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를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KBS 왕과비(1998)' 다소 정권욕이 강한 적극적 인물로 묘사됐던 인수대비는 '설중매(1984)'에서 나쁜 며느리를 둔 죄로 폭군 연산군에 고난당하는 할머니로 그려졌다.
과거를 조명하는 드라마,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들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60-70년대 시대극인 'KBS 야망의 세월(1990)'이 한국의 역사를 바꿔놓는 사실은 잘 아는 바다. 'MBC 영웅시대(2004)'같은 경우엔 약간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주인공 분석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시청자에겐 작가의 재해석이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꿔버릴 수 있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기존 사극의 형태를 벗어나 과거의 인물을 재해석할 수 있는 수단을 얻은 퓨전 사극. 그들은 이미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고 사람들은 천추태후와 선덕여왕, 낙랑공주의 이미지를 보며 신기해한다. 퓨전 사극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BS 자명고(2009)'가 보여준 현대적 멜로 형식의 퓨전 사극은 또다른 퓨전 사극의 형식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통 사극엔 없었던 수단을 얻은 것에 비해 결과물은 너무 초라하다. 남성형 영웅 대신 선택한 여성형 영웅들은 남성형 캐릭터의 변형에 지나지 않고 시대에 대한 해석을 현대적으로 내리기 보단 배경과 전투신을 볼만하게 만들고 말투나 외양을 현대적으로 꾸미기에 더 바쁜 경향이 있다. 볼거리가 많아진 현대극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교훈적인 성격의 영웅들과 그 내용들 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시청자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한 역사 속 인물의 이미지는 꽤 오래 유지된다. 영웅을 표현하기 위해 나머지 인물이 악당이 되고 볼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SF 장면이나 영웅 만들기 에피소드를 넣기 보단 '그 인물에 대한 시대적 평가'를 달리 생각해 보는게 낫지 않을까?
'위대한 여왕'이 탄생하기 위해 정적을 악인으로 묘사하고 여왕의 행동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트렌드 드라마와 마찬가지의 평가를 받을 지 모른다. 굳이 사극의 형태가 아니어도 볼 수 있는 내용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사극의 형태를 시대별이 아니라 영웅 중심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런 경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퓨전 사극도 그 시대를 객관적으로 재해석해보는 노력이 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료를 구하기 쉬운 조선시기에 집중되어 있던 역사 드라마들은 소재 빈곤에 시달려왔다. 같은 소재로 몇년 마다 다시 작업하기를 반복하기도 했었던 '장희빈' 경우는 '몇 대 장희빈'이란 타이틀을 배우에게 붙일 정도다. 남들이 다 아는 '역사'를 가지고 볼거리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대극'이라는 또다른 구분이 있긴 하지만 많은 역사 드라마들이 '사극'으로 분류된다. 즉 역사 속 인물들이 출연해 극을 이끌어간다.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고증'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사서 속의 인물을 그대로 표현해야함도 물론이고 당시의 시대상을 TV에서 재현해낼 수 있음이 사극의 가치를 결정하곤 했다. 2
현대적 말투와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던 자명고. CG를 많이 활용한 꽤 볼만한 드라마 형식이지만 낙랑과 호동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범주에 포함된다.
60-80년대까지 제작된 조선왕조 혹은 삼국시대의 사극은 시대에 안맞는 형태의 나일론 한복을 입은 연기자들이 부족한 세트 안에서 찍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통 사극이라는 표현 보단 '야사'를 드라마로 옮긴 것이라 보는게 옳을 지 모르겠다(당시는 우리 나라 사서가 완전히 분석되거나 한역되지 않은 시대였다).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해석이 그대로 TV를 타기도 했다.
시대를 거치면서 제작자들은 제대로된 사극을 만들기 위해 각 방송국들은 꾸준히 노력했고 MBC에서는 신봉승 작가의 '조선왕조오백년(1983)'같은 연대기식 사극이 만들어진다. KBS는 삼국시대,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여러 시대를 오가며 KBS식 사극의 기틀을 마련했고 90년대엔 '용의 눈물(1996)'을 선보이게 된다. SBS는 '장희빈(1995)'을 제작하여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료 속 인물들이 대중과 가까워지게 됐고, 다양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은 사극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극 속 주인공들은 구태의연하단 지적도 받게 된다(혹은 너무 현대적이거나). 사극 시청의 재미는 같은 사실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과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음에도 드라마 속 사극 주인공은 그 캐릭터를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최초의 퓨전 사극은 'MBC 조선왕조오백년' 시리즈 중 1989년 제작된 '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시리즈의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이병훈씨다. 두세 명의 가상인물을 중심으로 진행하며(길용우, 채시라, 최진실이 그 가상인물들) 신유박해 이야기를 그렸다. 정통 사극이 아니라 이상하단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당시에 존재하던 시대극과는 달라야하지 않을까 하던 평) 신선한 시도였단 반응도 많았다고 한다.
이 퓨전 사극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바로 인물중심의 사극 출현이다. 퓨전사극의 붐을 가져온 '허준(1999)'은 사서 속에 언급된 인물이긴 하지만 주인공의 인생 대부분은 작가의 창작으로 구성된다. 사서 속에 단 한줄 기록된 인물을 TV가 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 두 줄의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진 퓨전 사극 '대장금(2003)'. 허구의 인물도 많았지만 실제 역사 속 인물도 제법 많이 등장했다.
허준은 퓨전사극식 일대기 구조의 기틀을 마련한다. 요즘 흔히보는 사극 속 인물의 형태, 불행한 어린시절, 험난한 성장과 고난, 뛰어난 영웅으로 성공, 세상에 인정받는 위인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기본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 구조는 최근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어린 덕만공주가 중국에서 굴러야하는 이유는 천첩출생 허준이 어린시절 밀수입을 했어야했던 까닭과 같을 지 모른다.
창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방식은 연대기 구성을 따르지 않는(실록이나 사서를 따르지 않는) 대부분의 사극이 차용하는 형태로 'MBC 주몽(2006)', 'KBS 바람의 나라(2008)', 'MBC 대장금(2003)', 'SBS 자명고(2009)' 등 대부분 사극에 그대로 이어진다. 이젠 퓨전사극의 시대를 지나 판타지 사극의 시대이다. 정보가 부족한 사서 속 인물들을 채운 건 100% 허구의 사실들 뿐이다(그것도 가상현실).
퓨전 사극에 대한 부정적 평가
사서 속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인물들. 그들의 인생을 조명해보자면 창작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특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보면 기록된 사서 속 인물이라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 부분에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지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가미될 것이다. 퓨전 사극은 이런 시대적 재해석과 사료 부족, 그리고 소재 부족 등의 여러 원인 덕에 등장한 드라마 형태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기류는 이어져 기존에 보던 역사 속 인물같지 않은 캐릭터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탄생하곤 했다. 퓨전 사극 속에서 재해석된 역사는 꽤 '그럴 듯'하기도 했지만 일부에게는 역사 왜곡의 논란도 자주 낳았다. 사서에 적힌 내용을 부정하면서까지 드라마 제작을 해야겠냐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한국 퓨전 사극의 경우 특히 판타지 속성까지 가미된 경우가 많아 '판타지 사극'이란 별명을 얻는다. 이른바 SF의 속성을 가미한 사극이란 이야기다.
판타지스런 설정이 등장하기도 했고 고구려와 부여의 관계를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묘사해 문제가 됐던 드라마 주몽(2006). 후에 대나무 감자와 화약의 등장으로 한번 더 구설에 오른다.
꽤 오랫 동안 사극 속 한복은 조선 말기의 형태인 짧은 공단 저고리였다. 한복 저고리가 짧아진 건 한참 후였고 영조 이후의 왕실은 가채를 쓰지 않았단 사실 조차 반영하지 못한 사극이 많았다. 사료가 부족하던 과거에 비해 고증이 상대적으로 쉬워진 퓨전 사극은 고증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중국식 혹은 일본식 소품을 사용한단 비난도 받았고(상대적으로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현대적인 까닭일 때도 있다) 지역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물품을 등장시켜 지적당하기도 했다.
그중 퓨전 사극이 가장 비난을 받는 건 역시 과장된 개인의 인생이다. 주인공의 삶이 조명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악인이 되어야하는 사람들, 그 개인의 인생을 재조명한다 해도 덮을 수 없는 과오를 미화하는 일, 혹은 각종 고사에서 전해내려올 듯한 이야기를 영웅의 개인사로 바꿔놓는 것 등. 사극 속 인물이 영웅이 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을 패턴화시켜놓기도 했다. 창작된 내용을 진짜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건 그나마 애교스런 문제다.
사극 자체가 문제있는 포맷일 때도 있었다
최초로 조선왕조실록을 모두 드라마화한 'MBC 조선왕조오백년'은 추동궁마마, 뿌리 깊은 나무, 설중매, 풍란, 임진왜란, 회천문, 남한산성, 인현왕후, 한중록, 파문, 대원군 등 많은 시리즈를 탄생하며 인기 드라마로 자리잡았다. 1983년, 정치가 방송을 장악한단 평가를 듣던 시대에 태어난 드라마들은 불운한 경우가 많았다. 선정적 내용으로 제재를 당하기도 하고 반공 드라마를 의무적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정통 사극 역시 이런 경향에 예외는 아니어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 평가가 '시대에 맞춰' 이루어졌다고 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당시의 대통령과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에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한 까닭인지 고려 왕조의 부패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이성계의 당위성과 조선의 태평성대를 강조한 '추동궁마마(1983)'는 지금 생각하면 낯뜨거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의 분쟁을 연상시키는 당파 싸움을 제외하는 경향도 있었다고 한다.
정통 사극을 표방하고 있는 KBS의 천추태후(2008) 역시 사서에 따른 전개를 펼치고 있지만 인물 해석에 있어서는 여성 영웅을 만들기 위한 악인 설정이 지나치다.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전체에 이 경향이 이어져 '임진왜란(1985)'를 비롯한 여러 시리즈는 조기 조영의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1986년엔 예전에 비해 완성도가 높지 않은 시리즈를 만들게 되고 1987년엔 외압으로 잠시 시리즈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사극에 포함된 정치성이 현대의 국민들에 영향 줄까 두려워 조정된 것이다(이런 사례는 종종 등장한다). 역사가 가지는 교훈이란 특성 때문에 위정자들이 두려워했을만한 부분이다.
사극은 작가가 사료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인물을 재조명할 수 있다. 작가의 선악 판단에 따라 인수대비는 성인으로 보일 수 있고 연산군은 영리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역사적 사실로도 정통사극일지라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를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KBS 왕과비(1998)' 다소 정권욕이 강한 적극적 인물로 묘사됐던 인수대비는 '설중매(1984)'에서 나쁜 며느리를 둔 죄로 폭군 연산군에 고난당하는 할머니로 그려졌다.
판타지 사극은 너무 쉬운 길을 선택했다
과거를 조명하는 드라마,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들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60-70년대 시대극인 'KBS 야망의 세월(1990)'이 한국의 역사를 바꿔놓는 사실은 잘 아는 바다. 'MBC 영웅시대(2004)'같은 경우엔 약간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주인공 분석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시청자에겐 작가의 재해석이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꿔버릴 수 있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기존 사극의 형태를 벗어나 과거의 인물을 재해석할 수 있는 수단을 얻은 퓨전 사극. 그들은 이미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고 사람들은 천추태후와 선덕여왕, 낙랑공주의 이미지를 보며 신기해한다. 퓨전 사극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BS 자명고(2009)'가 보여준 현대적 멜로 형식의 퓨전 사극은 또다른 퓨전 사극의 형식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SBS 자명고의 대무신왕 역을 맡은 문성근은 현대적 말투로 지적받기도 했다. 자명고는 사극의 형태를 빌린 현대극으로 분류되어야 옳지 않을까. 배우들이 종종 정통 사극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정통 사극엔 없었던 수단을 얻은 것에 비해 결과물은 너무 초라하다. 남성형 영웅 대신 선택한 여성형 영웅들은 남성형 캐릭터의 변형에 지나지 않고 시대에 대한 해석을 현대적으로 내리기 보단 배경과 전투신을 볼만하게 만들고 말투나 외양을 현대적으로 꾸미기에 더 바쁜 경향이 있다. 볼거리가 많아진 현대극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교훈적인 성격의 영웅들과 그 내용들 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시청자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한 역사 속 인물의 이미지는 꽤 오래 유지된다. 영웅을 표현하기 위해 나머지 인물이 악당이 되고 볼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SF 장면이나 영웅 만들기 에피소드를 넣기 보단 '그 인물에 대한 시대적 평가'를 달리 생각해 보는게 낫지 않을까?
'위대한 여왕'이 탄생하기 위해 정적을 악인으로 묘사하고 여왕의 행동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트렌드 드라마와 마찬가지의 평가를 받을 지 모른다. 굳이 사극의 형태가 아니어도 볼 수 있는 내용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사극의 형태를 시대별이 아니라 영웅 중심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런 경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퓨전 사극도 그 시대를 객관적으로 재해석해보는 노력이 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사극, 역사극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한 연극, 영화, 드라마들로 정의한다. 시대극이란 표현은 조금 의미가 다르므로 병용하지 않은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인 내용을 다룬 드라마란 뜻으로 사용. [본문으로]
- 역사 속 한 시대를 배경으로 꾸며진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을 구분하는 말로 쓴다.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 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으나 주인공은 보통 가상의 인물이다. [본문으로]
- 퓨전 사극의 정의를 쉽게 내릴 순 없겠으나 기존 사극 형태에 현대극 형식을 가미해 제작한 것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로 볼 수 있다. 내용을 창작해 덧붙이고 현대 음악을 사용하거나 가상의 인물이 등장해 스토리를 이끌고 현대극의 말투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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