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살로메와 에로디아스

Shain 2010. 11. 23.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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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이 엄마가 누구인지 밝히려는 '솔로몬의 판결'은 간단합니다. 진짜 엄마는 아이가 위험하거나 다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이죠. 최근엔 진짜 엄마가 '더 비싼 걸 사주는 엄마'라는 컨셉으로 만든 광고도 있습니다. 진짜 엄마라면 광고하는 물건을 먹일거다 뭐 이런 내용인데 'MBC 욕망의 불꽃'에서 이런 컨셉으로 진짜 엄마를 찾는다면 답은 재벌가의 아내 '윤나영(신은경)' 뿐이겠죠.

극중 김민재(유승호)의 친엄마인 백인숙(엄수정)은 윤나영이 계속 떠나라고 압력을 넣지만 친아들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친엄마도 아니지만 재벌 상속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김민재를 버릴 수 없는 윤나영은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교통사고까지 위장합니다. 아무리 친딸인줄 몰랐다고 하지만 친딸 백인기(서우)에게는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있죠.

백인숙은 김영민(조민기)에게 시한부 인생이라며 멀리서라도 아들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백인숙의 애인이었던 송진호(박찬환)은 김영민 주위를 맴돌며 윤나영 부부를 협박하고 있고 윤나영은 백인숙을 죽이려 했던 사실 때문에 점점 더 독하게 민재의 친엄마를 멀리 보내려 합니다. 부딪히며 갈등하는 두 엄마 앞에서 민재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늘 불안해하며 초조해하는 엄마를 다독이며 힘들어하는 김민재(유승호)




모든 것이 풍족해도 불행한 두 아이들

솔로몬의 판결에서 왕이 친 엄마를 구분할 수 있었던 건 둘 중 한 사람은 아이를 다치지 않게 하려 필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불꽃'에 등장한 민재의 두 엄마는 판결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 지 의심스러운 인물들입니다. 김영민의 애인이었던 백인숙은 처음부터 불순한 목적으로 김영민에게 접근했고 따로 건달 애인을 둔 상태였습니다. 윤나영이 아이를 낳아 달라 하자 간단하게 넘겨줍니다. 딱히 '아이를 위해' 행동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인물입니다.

윤나영은 점점 더 김민재를 질리게 합니다. 김민재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할 때까지 집착하고 잠 못 이루는 그녀는 엄마라기 보다는 감시자이자 스토커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대서양그룹'의 후계자가 필요해 얻은 아들이니 소유물이자 수단인 민재가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첫회의 내용대로라면 백인기(서우)가 친딸인 것을 알면서도 민재를 위해 떠나라고 다그칠 인물이 바로 윤나영입니다.

솔로몬은 아마 두 엄마 중 누구든 고를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그녀들이 과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고전적인 엄마'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일까요? 그녀들 자신도 그 욕망을 쫓아가는 길이 그리 행복하거나 평탄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백인기의 또다른 엄마인 윤정숙(김희정) 역시 동생을 위해 딸에게 진짜 핏줄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비정한 면이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에게 과연 '엄마'가 꼭 필요한지 아마 결정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극중 민재는 드디어 어릴 적에 만난 백인기, 즉 혜진의 존재를 기억해냅니다. 민재는 그 순간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해냅니다. 반면 백인기는 행복했던 시간이 아닌 괴로운 기억만 떠올립니다. 두 아이가 곧 자신들이 법적인 '사촌'이란 걸 알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존재가 행복이 아니라 타고난 속박이자 굴레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누군가에 사주받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빠져들게 되버린 백인기(서우)와 김민재




살로메와 에로디아스, 악녀 타입 엄마들

고전일수록 인간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담고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그르지 않습니다. 플로베르의 단편 '에로디아스'는 성경에 실린 헤롯왕과 에로디아스(또는 헤로디아)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생의 아내였던 에로디아스와 헤롯왕이 결혼하자 요한은 그들을 비난하고 에로디아스를 음탕한 여자라 모욕합니다. 그를 참을 수 없었던 에로디아스는 자신의 딸인 살로메를 왕 앞에서 춤추게 하고 헤롯왕이 마침내 요한의 목을 자르도록 사주합니다.

조카이자 의붓딸인 살로메에게 반한 헤롯왕의 삐뚤어진 부정, 자신의 모욕을 갚기 위해 딸을 이용하는 비정한 어머니 에로디아스의 이야기는 요즘 TV 안에서 반복되는 '나쁜 엄마' 신드룸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SBS 웃어요 엄마'에 등장하는 조복희(이미숙)는 딸 신달래(강민경)를 최고 배우로 성공시켜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을 대리 성취하게 하려 합니다. 그녀에겐 '딸을 위해서'라는 말이 무의미합니다.

조복희의 인생은 극중 강신영(윤정희)의 엄마인 박순자(박원숙)의 인생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조복희가 사업에 실패하고 바람까지 난 남편을 구박하고 사는데 비해 남편의 치약까지 짜주며 모든 걸 가정에 헌신하는 박순자는 남편이 정성껏 차린 밥상을 뒤엎어도 별달리 항의하지 않는 순종적인 캐릭터입니다. 확실한 건 두 어머니상 모두 자식에게는 깨나 부담스런 타입들이란 거고 개개인으로서도 성공적인 어머니인 것 같진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정답이란 없겠지만 가장 모범적인 답안은 각자 자신 만의 목적을 가지고 살며 자녀나 부모의 인생을 휘두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송 안에서 무너져가는 가족 형태를 굳이 한번 더 비난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역시나 보기가 안쓰럽죠.


친엄마 백인숙(엄수정)과 양엄마 윤나영(신은경)의 충돌하는 욕망




노골적이고 삐뚤어진 엄마의 욕망

독하디 독한 인기 여배우 백인기가 김민재 앞에서 만은 순진하게 웃고 행복해 합니다. 엄마 앞에선 늘 착한 아들 노릇을 하면서도 개구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민재가 인기 앞에서 만은 누구 보다 자유롭습니다. 서로 망가트릴까 무서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두 연인에게 그들의 '엄마'는 가혹하기만 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세대의 엄마들은 누구나 샌드위치 세대라고 합니다. 대가족 제도에서 윗 세대를 위해 희생하던 사람들, 극중 윤나영의 모습대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원하는대로 모든 살림을 맡아하는 그들은 '희생'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이자 가장인 아빠는 복잡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들의 욕망이 삐뚤어진 방법으로 표현되는 건 자신은 할 수 없었던 일을 자식들이 이뤄주길 바라기 때문이라 합니다.

차라리 '나를 위해 산다'며 각자에게 터치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삶을 산다면 극중 김민재와 같은 '나만의 비밀을 가지고 싶다'는 식의 갈등은 나오지 않을 지 모릅니다. 특히 극중 윤나영처럼 일반적인 엄마들 보다 좀 더 삐뚤어진, '웃어요 엄마'의 조복희처럼 딸을 극단까지 끌고가는 모습은 '남으로 사는게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 합니다.

이전 세대가 개인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 희생의 시대라면 지금의 시대는 원하는 것을 쫓아가도 나무랄 사람은 없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나쁜 엄마'는 이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이라 평하는 분들도 있겠죠. 자, 그 엄마들의 야망은 둘째치고 백인숙과 윤나영,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진짜 엄마를 현명하게 가려낸 솔로몬이라면 둘 중 어떤 엄마에게 현대인의 어머니 자격을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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