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로열패밀리

로열패밀리, 곰인형을 안은 조니 누가 죽였을까

Shain 2011. 3. 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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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드라마의 경우 '스토리에 대한 신비감'은 대폭 줄어듭니다. 이미 원작의 전개 과정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스포일러를 하게 되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반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로열패밀리'의 원작 '인간의 증명'을 보았고 앞으로의 내용 일부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K(염정아)의 숨겨진 과거는 어떤식으로 등장할 지가 문제일 뿐 비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열패밀리'는 원작과 상관없이 흥미진진합니다.

이것은 드라마 '로열패밀리'의 내용이 원작 뿐 아니라 현실감있고 치열한 재벌가의 사건, 탈세, 주식 증여, 불법 도청, 섹스비디오, 언론 통제, 검사부장 접대, 정부 부처 압력, 기업의 전직 검사 등용 등 결코 아름답지 않은 재벌 사회를 박진감있게 연출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JK 회장 공순호(김영애)를 비롯한 여러 설득력있는 캐릭터가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봤던 보지 않았던 급속도로 전개되는 드라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김인숙은 공순호에게도 인정받고 당당히 JK클럽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JK 그룹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중이라 JK클럽 사장이 된다는 건 전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받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습니다. K를 경계하려 한지훈의 다짐을 받아내고 딸 조현진(차예련)을 훈련시키고 있지만 공회장은 그녀를 공식적으로 경영자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술취해 인숙에게 행패부리던 윤서는 공회장에게 '저거 치워'란 말을 듣게 됩니다.

지훈의 것과 똑같은 곰인형을 안고 젊은 시절 마리의 사진을 가진 조니가 나타나 이제 슬슬 K의 숨겨진 어둠이 드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나 K를 '마리'라고 부르는 외국인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고 인숙이 왜 소스라치게 놀라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원작을 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원작과 똑같이 풀려갈 것인지 아니면 엄집사(전노민)의 개입으로 살인사건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원작을 알고 있음에도 몰입감 백퍼센트

극중 서울지검 검사 강충기(기태영)은 단정적으로 JK를 수사하게 되면 자신의 절친 한지훈(지성)을 경제사범으로 엮을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벌가의 숨겨진 사정은 돈으로 치장한 장식품 만큼 아름답다기 보다 더럽고 추악한 일면이 훨씬 많습니다. JK의 압력으로 경제사범 수사에서 물러나고 형사부를 담당하게 된 강충기가 조니의 살인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원작에선 극중 K의 역할을 하는 김인숙과 한지훈은 무관한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원작에서 소재를 빌려오긴 했지만 배경도 주인공도 모두 다른 상황이라 비교 자체가 힘들지만 자수성가한 한 아름다운 중년 여성의 비밀스런 과거를 형사가 파헤친다는 구도는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차분하게 흑인 조니의 비밀을 찾아가는 형사 역할을 이제 강충기가 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하고 있는대로 곰인형을 안고 나타난 조니를 죽인 사람은 '원작'에선 숨겨진 엄마였던 K였습니다. 원작은 첫부분부터 '조니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드라마 '로열패밀리'는 개작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이 흑인 조니가 김인숙, 즉 과거 김마리의 아들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살인현장에 있었던 인물이 한사람 더 있어 K가 죽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JK의 사장이 되어 행복의 절정을 맛보던 인숙 앞에 나타난 조니.


특히나 천사같은 얼굴로 큰눈을 뜨고 울먹이고, 천하의 공순호 회장까지 거뜬히 속여내는 '야누스' 김인숙이 원작에 비해 훨씬 더 극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한 이상 화끈하게 공순호와 임윤서, 양기정(서유정)을 속여내는 김인숙의 불행을 바랄 시청자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과거가 밝혀지고 K가 죄값을 받는다는 식으로 흘러가면 무언가 탐탁치 않은 기분이 들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K는 '조니 살인' 혐의에서 무죄여야 합니다.

드라마 작가 권음미와 크리에이터 김영현은 이 불행한 'K'를 어떤 캐릭터로 만들고 싶어했을까요. 자신의 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철면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같진 않습니다. K의 옆에는 자신으로 인해 고아가 되고 불행한 과거를 가지게 된 한지훈이 있습니다. 지훈의 숨은 후원자로서 그의 인생을 다잡아 주고 바로잡으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숙은 지훈을 돌아보는 '선량함'으로 지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조니 살인 사건' 이후 한지훈이 K의 비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신뢰에도 금이 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천사가 사실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배신감에 치를 떨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숙의 말대로 인숙의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지훈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곰인형에 숨겨진 자신의 과거, 다정한 한지훈은 믿어왔던 천사를 버릴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위기와 함께 깨닫는 로맨스

어제 한 때 화제가 되었던 기사 중에 '로열패밀리 OST'를 불렀던 가수 임정희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보였단 내용이 있습니다. 위에 플레이어에 걸어둔 '시간을 되돌린다면'이란 이 노래는 누군가에 대한 후회를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인숙이 지훈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는 순간이 오게 된다는 암시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서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아 밝게 웃고 있는 인숙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JK사장으로 취임한 인숙을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사람 취급 안했던 동서들이야 그렇다 치고 공순호 회장은 인숙의 불운이 다 사라졌다는 점괘(재벌가가 점집을 들락거린단 소문을 묘사할 줄이야)까지 듣고도 어딘가 미심쩍어 합니다. 회장의 목숨을 구한 후 비서가 되는 등 계속해서 극적으로 풀리는 K의 인생이 수상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엄집사에게는 눈물을 지훈에게는 웃는 얼굴을 보이는 김인숙.


김인숙을 옆에서 보조하는 엄집사는 20년 이상 돌봐온 김인숙에 대한 애정을 숨기고 있습니다. 김인숙의 오른팔인 지훈을 현진은 사랑하고 있습니다. 김인숙과 지훈은 남들이 불륜이라 여길 만큼 서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 느낄 만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각 캐릭터별로 적당히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배치했으니 이젠 사랑 이야기를 할 시간입니다.

조니를 외면한 채 조동호와 결혼한 김인숙, 그녀는 왜 자신의 본명인 '김마리'를 숨겨야 했을까. 그 많은 기업 중에 JK에서 컨시어지로 일하면서 회장과 친분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동호의 죽음을 누군가 사주한 건 아닐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 조니를 버려야했으며 조니는 어쩌다가 누구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일까. 네 사람의 사랑은 뻔하디 뻔한 로맨스이지만 주변 상황에 맞물려 치열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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