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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웅 '계백'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왜 신라 장수 알천 이야기를 꺼낼까 하시겠지만 가잠성 전투에 성주 알천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덕여왕'을 흥미롭게 시청한 분들이라면 당시 인상적으로 묘사되었던 화랑들의 전투 장면과 누구 보다 용맹하게 전장을 누비던 충성스럽고 우직한 알천랑(이승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중 김유신의 의리있는 친구로 신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최고의 장수로 그려지던 알천은 당시 최고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였습니다.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은 백제의 의자왕(조재현)과 계백(이서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복수를 꿈꾸는 여인 은고(송지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백제를 무너트리고 멸망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신라인들입니다. 덕분에 신라의 상황과 장군 김유신(박성웅)의 입장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가잠성 전투에서 의자왕자를 죽일 생구(포로)로 계백을 골랐다가 낭패를 당한 김유신은 언젠가 다시 계백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신라도 백제 만큼이나 만만치 않게 귀족들의 신분 갈등이 존재하던 곳이라 알천과 김유신도 사연 많은 사이로 보이더군요.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알천에 대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유달리 용맹한 알천의 이야기와 왕의 명령을 받아 전투를 치르고 벼슬이 오르는 장군 알천의 이야기가 몇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비담의 난'으로 유명한 상대등 비담 보다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알천이고 선덕여왕 시기에 여러 전장을 누비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담이 난으로 사망한 이후에는 상대등 자리에 올랐고 선덕여왕이 죽었을 때는 왕에 추천되기도 합니다.
세 권의 사서 모두 알천의 정확한 신분이나 출신을 기록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알천이 진골 중에서도 높은 신분인지 그렇지 않으면 김유신처럼 은근히 배척받는 변방의 귀족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진평왕의 손자인 김춘추 보다 먼저 왕위에 추천되는 신분, 즉 상대등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매우 가까운 혈통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신분상승욕이 있었다던 김유신은 그런 알천과 어떤 사이를 유지했을까요. 드라마 '계백'에 등장한 알천과 김유신의 관계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계백'의 주인공들은 사택황후(오연수)와 사택적덕(김병기)가 장악한 백제를 새로운 백제로 만들려 꿈꾸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강성한 귀족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음을 잊지 않고 복수를 꿈꾸면서도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 등의 인재를 꾸려 자신들 만의 새로운 백제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흥수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만든 이상적인 마을을 보게된 의자왕자가 새로운 백제에 대한 이상을 가지는 내용이 방송될 듯 합니다. 백제의 개혁을 꿈꾸는 젊은이 의자가 지도자로서 포부를 가지게 된 셈이죠.
이들 백제의 '개혁 세력'이야기는 물론 창작입니다만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장악하기 시작한 신라의 '신생 세력'은 사서 속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진평왕의 여동생인 만명공주와 가야계 귀족이었던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 중심의 세력을 '가야계'라 지칭했고 김유신의 동료 화랑이던 알천을 지방 호족 세력 출신으로 묘사했습니다. 알천을 미실을 비롯한 중앙귀족들과 대립할 수 있는, 젊은이들 중심의 신생 세력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알천은 분명 상대등까지 오를 수 있었던, 상당히 높은 신분의 귀족이었던 것같습니다. 그점에서는 드라마 '계백'에서 선택한 신라 선화공주의 이종사촌 알천이라는 설정이 그럴듯합니다. 왕과 가까운 혈연이라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상대등까지 갔다는 점에서 그럴만하다 싶은 겁니다. 같은 이치로 진평왕의 딸이라는 '선화공주'가 진짜 진평왕의 딸이라면 선덕여왕과 자매 간이란 이야기이고 김유신도 선화황후의 사촌이 됩니다. 김유신 역시 의자왕자의 육촌 아저씨 뻘인 셈입니다.
'선덕여왕'의 친구 알천과 다르게 드라마 '계백'의 알천은 사사건건 김유신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김서현 장군의 아들이라 봐준다며 생색을 내기도 하고 자기 멋대로 군율을 어기는 유신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높은 귀족이라 변방을 뛰며 직접 전투를 하는 김유신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느낌이 상당히 강합니다. 신라 역시 진골들의 권한이 너무 강력해 백제처럼 골치를 앓았단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드라마 속 설정입니다(연령상으로도 둘이 동년배라기 보다 알천이 더 많은 나이인게 맞구요).
화랑세기를 포함한 사서에 기록된 김유신은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한편 김춘추와 여동생을 결혼시키고 가야계들도 자신을 따르게 하는 한편 '칠성우'라 불리는, 알천을 포함한 일곱명의 화랑과 친하게 지내며 높은 신분의 귀족들과 친분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그들 중 으뜸이 되어 김춘추를 왕위에 올리는데 성공하고 자신 역시 김춘추의 딸, 즉 자신의 조카와 결혼하여 신분 상승에 성공합니다. 드라마 속 의자왕이 백제 귀족들 하나하나를 포섭해 사택황후에 대항하지만 김유신은 그런 방법로 출세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선덕여왕'에 등장한 알천이 실제 알천에 가까웠을까 아니면 '계백'의 구박형 알천이 실제에 가까웠을까 하는 간단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뿐이지만(이건 다 '선덕여왕'의 알천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볼수록 진짜 알천은 보수적이고 평범한 귀족이면서 호랑이도 꼬리를 휘어잡고 던질 정도로 힘쎄고 무시무시한 장수(이건 삼국유사의 묘사입니다)였을 것 같습니다. 김유신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신생세력에 강성해지면서 나이가 많음에도 그의 편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승효의 알천랑은 너무도 멋있었습니다만 사서를 읽어볼수록 '계백'의 알천과 더욱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엔 공통적으로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영웅이라는, 다소 교과서적인 그에 대한 평가탓인지 고대사를 모르는 현대인들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측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대신 선화공주의 아들이라고 추정되는 백제의 왕 의자가 어떤식으로 무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나라를 다스렸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김유신에게 알천과 김춘추가 있었듯이 의자왕자에게도 그를 정치적인 인물로 만든 지지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생존과 복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호색한으로 사는 의자왕자가 한 사람의 왕재로 자라려면 정신적인 수양이 필요한 건 물론입니다. 흥수와 성충이 묘사하게 될 이상적인 백제, 새로운 백제에 대한 이상이 어떤 모습인지 자못 궁금하더군요. 왜냐하면 당연히 그 안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이 바로 현대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일테니 말입니다. 사극이 현대사회의 가치관과 생각을 드라마와 결합시키는 순간이 바로 그럴 때입니다. 비록 진짜 의자왕의 백제를 볼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한번쯤 현대인과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은 백제의 의자왕(조재현)과 계백(이서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복수를 꿈꾸는 여인 은고(송지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백제를 무너트리고 멸망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신라인들입니다. 덕분에 신라의 상황과 장군 김유신(박성웅)의 입장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가잠성 전투에서 의자왕자를 죽일 생구(포로)로 계백을 골랐다가 낭패를 당한 김유신은 언젠가 다시 계백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신라도 백제 만큼이나 만만치 않게 귀족들의 신분 갈등이 존재하던 곳이라 알천과 김유신도 사연 많은 사이로 보이더군요.
'선덕여왕'에 등장한 알천과 드라마 '계백'의 알천
세 권의 사서 모두 알천의 정확한 신분이나 출신을 기록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알천이 진골 중에서도 높은 신분인지 그렇지 않으면 김유신처럼 은근히 배척받는 변방의 귀족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진평왕의 손자인 김춘추 보다 먼저 왕위에 추천되는 신분, 즉 상대등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매우 가까운 혈통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신분상승욕이 있었다던 김유신은 그런 알천과 어떤 사이를 유지했을까요. 드라마 '계백'에 등장한 알천과 김유신의 관계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군인 알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계백'의 주인공들은 사택황후(오연수)와 사택적덕(김병기)가 장악한 백제를 새로운 백제로 만들려 꿈꾸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강성한 귀족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음을 잊지 않고 복수를 꿈꾸면서도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 등의 인재를 꾸려 자신들 만의 새로운 백제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흥수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만든 이상적인 마을을 보게된 의자왕자가 새로운 백제에 대한 이상을 가지는 내용이 방송될 듯 합니다. 백제의 개혁을 꿈꾸는 젊은이 의자가 지도자로서 포부를 가지게 된 셈이죠.
이들 백제의 '개혁 세력'이야기는 물론 창작입니다만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장악하기 시작한 신라의 '신생 세력'은 사서 속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진평왕의 여동생인 만명공주와 가야계 귀족이었던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 중심의 세력을 '가야계'라 지칭했고 김유신의 동료 화랑이던 알천을 지방 호족 세력 출신으로 묘사했습니다. 알천을 미실을 비롯한 중앙귀족들과 대립할 수 있는, 젊은이들 중심의 신생 세력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신라의 신생세력으로 주변국을 처치하고 신라 최강자가 되는 김유신
'선덕여왕'의 친구 알천과 다르게 드라마 '계백'의 알천은 사사건건 김유신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김서현 장군의 아들이라 봐준다며 생색을 내기도 하고 자기 멋대로 군율을 어기는 유신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높은 귀족이라 변방을 뛰며 직접 전투를 하는 김유신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느낌이 상당히 강합니다. 신라 역시 진골들의 권한이 너무 강력해 백제처럼 골치를 앓았단 걸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드라마 속 설정입니다(연령상으로도 둘이 동년배라기 보다 알천이 더 많은 나이인게 맞구요).
화랑세기를 포함한 사서에 기록된 김유신은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한편 김춘추와 여동생을 결혼시키고 가야계들도 자신을 따르게 하는 한편 '칠성우'라 불리는, 알천을 포함한 일곱명의 화랑과 친하게 지내며 높은 신분의 귀족들과 친분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그들 중 으뜸이 되어 김춘추를 왕위에 올리는데 성공하고 자신 역시 김춘추의 딸, 즉 자신의 조카와 결혼하여 신분 상승에 성공합니다. 드라마 속 의자왕이 백제 귀족들 하나하나를 포섭해 사택황후에 대항하지만 김유신은 그런 방법로 출세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선덕여왕'에 등장한 알천이 실제 알천에 가까웠을까 아니면 '계백'의 구박형 알천이 실제에 가까웠을까 하는 간단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뿐이지만(이건 다 '선덕여왕'의 알천이 너무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볼수록 진짜 알천은 보수적이고 평범한 귀족이면서 호랑이도 꼬리를 휘어잡고 던질 정도로 힘쎄고 무시무시한 장수(이건 삼국유사의 묘사입니다)였을 것 같습니다. 김유신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신생세력에 강성해지면서 나이가 많음에도 그의 편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승효의 알천랑은 너무도 멋있었습니다만 사서를 읽어볼수록 '계백'의 알천과 더욱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의자왕자가 정치를 알아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엔 공통적으로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영웅이라는, 다소 교과서적인 그에 대한 평가탓인지 고대사를 모르는 현대인들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측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대신 선화공주의 아들이라고 추정되는 백제의 왕 의자가 어떤식으로 무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나라를 다스렸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김유신에게 알천과 김춘추가 있었듯이 의자왕자에게도 그를 정치적인 인물로 만든 지지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의자왕자에게 정치적, 군사적 스승이 되어줄 성충과 흥수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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