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 이야기

지금 보면 유치찬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Shain 2011. 10. 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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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은 일부 특별한 학생들만 갈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집 기둥뿌리 뽑아서 대학간다고 할 정도로 학비도 비싼데다 정원도 지금이랑 차이가 나 입학도 어려웠습니다. 대신 대학 졸업 후 사무직 취업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자 했고 80년대 후반에는 대학생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87년은 6월민주항쟁이 일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가정도 많았고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학생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젊은 혈기는 한편으로는 사회 비리를 참지 않는 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공부만 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갓 벗어나 어디로 취업해야하는지 무슨 공부를 해야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OST 손현희 - 오늘은 어떤 일이 (유투브 검색)
 
요즘은 취업이 대학생들의 지상과제가 되어 이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속에 나타난 대학생들의 생활 모습이 낯설게 다가올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반대로 요즘에도 20대는 방황과 고민의 시기이기에 80년대와 패션만 좀 달라졌을 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 미미와 철수는 남아도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며 그 열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톡톡 튀는 재치로 때로는 의뭉스런 능청으로 이리저리 부딪혀 보지만 아직은 약아빠지게 사회인들의 룰을 따라가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순수하게 욕망을 맞닥트리기엔 용기가 없는 두 젊은이는 '보물섬'이라는 친구와 함께 어울려 다니며 세상을 경험해 봅니다. 농구도 못하는 남학생 친구들을 소주먹고 두들겨 패는 미미(강수연)에게 반한 철수(박중훈)는 버스에서 외판원 흉내를 내는 구닥다리 프로포즈 방법으로 미미의 남자친구가 됩니다. 미미는 그런 철수가 재밌다고 일단 같이 어울리기는 하는데 미팅이나 소개팅에 자주 나가는 얌체같은 여자친구죠.


둘 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대학생이라 철수는 논술문제를 풀어야하는 시험 시간에 '일제 강점기는 논할 가치가 없다'는 답 한줄을 쓰고 휭하니 강의실을 떠나는가 하면 미미는 평소 친하지 않던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 복사하고 전공이 영어임에도 외국인 교수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절절댑니다. 시험지에는 영어라고는 'Love' 밖에 모르는 이 제자를 봐달라고 써놓기도 하지요. 대학 졸업 후에는 무엇이 되려고 그러는 건지 그래도 조금 더 재빠른 미미는 의대생을 만나 온갖 내숭을 떨며 소개팅을 합니다.

평소에 즐겨 듣는 음악은 클래식, 평소의 요란한 복장과는 달리 얌전히 차려입은 정장, 곱게 화장하고 수줍게 웃는 미미는 공부는 딴전이고 의사 사모님이 되어 미래를 대비해 보리라 마음먹지만 남자친구 철수는 그런 미미를 좋아한다며 잡지도 못하고 길거리 헌팅이나 합니다. 이 젊은이들의 조금은 한심한, 좌충우돌 대학생활은 그닥 답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젊음의 특권이 방황이고 갈등이라지만 왜 젊음이 짧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지 그들은 그때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낄낄거리며 내뱉는 농담이 재치있기 보다 한가한 시간떼우기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이규형 감독이 전하고자 한 '청춘 스케치'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87년이란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다소 생뚱맞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의미로는 조연으로 등장한 '보물섬(김세준)'의 역할이 주인공 젊은이들은 몰랐던 진짜 사회에 대한 메시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망원경을 들고 보물섬을 꿈꾸고 술을 마시면 학교 백마 동상에 올라 말을 달리는 이 친구는 짧은 젊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 되돌아 보게 합니다.


알고 보니 법대 수석 입학생 보물섬, 고아나 다름없었던 보물섬은 자는 시간도 아껴 공부를 하고 자취방이 아닌 작은 독서실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에게 게으르지 않았고 장애가 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야학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 어떤 면으로도 풍족하지 않은 보물섬이 미미나 철수는 하지 못했던 선행을 베풀며 사는 모습, 그 시대의 많은 대학생들은 그렇게 공부를 했고 그렇게 어려운 사회를 지탱해 나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싶고 밝게 살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에 해야할 일을 하고 있었지요.

두 남녀 대학생들의 성장 드라마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지금 보면 너무도 유치찬란한 유머가 가끔 쓴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합니다. 또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80년대에 왜 이런 대학생들(사실 강수연의 캐릭터는 많이 오버스럽습니다, 그 시대는 여학생들이 남자를 때리면 훈계를 듣던 시절이지요)을 카메라에 잡았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강수연과 박중훈의 젊은 시절이 참 아름답게 다가오네요. 손현희의 주제곡 '오늘은 어떤 일이'는 온라인에서 MP3로 구매할 수 없는 곡입니다. 사브작사브작 철없이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두 주인공에게 잘 어울리는 경쾌한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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