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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어릴 적에 북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예전에 광화문 우체국 부근에서 탈북자를 모셔두고 영화 상영회를 하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탈북자는 매우 흔치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낯간지러워한 부분은, 영화 속 모든 배우들이 북한을 천국인 양 묘사하고 찬양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북한 영화 만큼이나 낯간지러운, 사회의 긍정성에 대한 찬양은 교과서와 티브이 그리고 모든 매체들을 통해 항상 듣고 보고 자란 것들이란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묘하게도 빨갱이를 몹시 싫어하시는 분들이 긍정적인 사회에 대해 역설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북한 영화스럽다.
중요한 건 현재 내가 얼마나 이익을 보면서 살고 있느냐이지 이념이나 체계 따위가 아니라는 것. 이 부분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서로 서로 그 아래의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무너지지 않도록 그 사회의 긍정성을 최대한 광고하고 속이고 있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거다. 이제 와서 어느 이념과 체계가 낫다고 싸우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우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남북전쟁이 이념전쟁이라고 생각하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흑인들의 권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미국의 남북전쟁 조차 백인들의 이권 다툼이었다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지 않나.
두번째.
북한의 세뇌(?) 영화야 이제 내 관심사 밖이고 내가 요즘 들어 두려워진 것은 티브이 드라마 속의 긍정성이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내가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따위의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점은 단순하다. 저건 대체 어느 나라 농촌 드라마야?
예전에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컬러 티브이의 보급과 함께 3S 정책은 묘한 곳에서 그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부정적인 대한민국에 대한 묘사는 모두 사라지고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드라마들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들도 '사랑이 꽃피는 나무' 따위가 유행을 했던 모양이다(그 드라마가 싫었다는 뜻은 아니다).
80-90년대에 루머처럼 시중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인데 박모 대통령과 전모 대통령은 혼혈 연예인이나 장애가 있는 연예인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매우 질색했다고 한다. 뭐 연예인은 술자리에서 끼고 놀거나 여흥을 돋구어주는 존재였어야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시각장애가 있던 이모 연예인은 대통령이 미국으로 보내버렸다는 소문이 돌았었고 다리가 불편했던 조모 연예인은 티브이 출연이 힘들어서 대마초를 피웠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때 느끼고 있던 점은 그만큼 티브이에 출연하는 드라마들과 쇼들이 행복한 대한민국 만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지리 가난하고 궁상을 떠는 내용의 드라마는 50-60년대를 다루는 내용에서만 히트를 쳤고 일일 드라마들과 농촌 드라마들은 소득이 제법 보장되거나 경제적인 걱정은 전혀 없는 행복한 가족을 표준으로 삼아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꽤나 현실적이다 싶은 드라마들은 부정적인 사회 묘사를 이유로 질타를 받기도 하는 풍경. 대한민국 사람들의 긍정성은 전투적이다.
세번째.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사고는 좋은 말이다. 난 사랑, 희망, 다정함, 정의감, 협동심, 애국심같은 교과서적인 단어와 마인드 자체에도 거부감 전혀 없다. 아니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 단어들이 개인적으로 나쁠 이유 전혀 없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긍정적인 단어로 가득찬 티브이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된 이유는 컴퓨터로 미드를 보거나 하는 일들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 드라마들이 가져다주는 폭력적인(?) 화면들을 더 봐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부모님께서 달리 자극적인 쇼 프로그램 말고는 볼 것이 없어서 시청하신다는 농촌 드라마는 무슨 70년의 계몽 영화처럼 신토불이를 외치고 도시에 직장을 얻으려 하는 젊은이를 어리석은 사람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여전히 무지하지만 한재산 갖추고 존경받으면서 모시옷이나 입는, 농촌 노인네들은 어른입네 큰소리치며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무당을 무조건 마을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정작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제결혼 커플 문제나 홀로 돌아가시는, 수입도 없는 궁핍한 노인네들 이야기는 한번도 다루지 않는 아름다운 센스를 보여주면서도 몇가지 황당한 면에서는 빠지지 않고 비합리적인 시골 주민들. 내 모교는 학생이 모자라 폐교가 오늘 내일이라는 걱정 속에 가끔은 수업도 제대로 못하는데 드라마 속에선 아이들이 넘쳐난다.
시골에 살아서 이런 것도 모르냐고 학생에게 핀잔을 주는 깍쟁이 초등학교 여교사 대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여교사는 신토불이 농촌총각이랑 결혼을 하셨다나. (이 드라마틱한 설정에서 북한 영화 도라지꽃이 왜 그렇게 떠오르던지) 이 계몽영화가 시골에 사는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신들은 알고 있을까? 솔직히 드라마 속에 농촌 테마 파크를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실제 농촌에 누가 살던지 말던지는 관심도 없잖아?
하긴 이런 현상은 미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소수자 차별 문제로 드라마 속에 반드시 유색인종을 일정 부분 이상 출연시켜야한다던가 그런 룰이 있긴 하지만, 대개의 인기 미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백인들이 주인공이고 고위직에 있는 흑인들은 실제로 흔치 않지만, 드라마의 양념으로 끼워 넣어진다. 무슨 장식물이라도 되는 듯이. 모든 문제들이 한끼 식사거리처럼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네번째.
마이걸이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다해, 그리고 변희봉의 관계는 알다시피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가짜 손녀의 관계이다.
워낙에 코믹한 드라마였기도 했지만, 내가 웃음을 날린 부분은 변희봉씨에게 이다해가 '오빠는 식사 하시고 오신대요'라고 하던 장면이다. 워낙 많은 드라마에서 용례나 어법이 틀리기 때문에 일일이 지적하기도 어렵지만, 자막에 철자가 틀리는 건 기본이니 황당한 존대말이나 관계들이 제법 많더라.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고 가벼운 관심 만큼이나 정확하지 못한 정보들이 넘치고 있는 티브이에서 만족을 느껴야하는 시청자의 입장이라니. 이만큼 비극적인 게 어디 있나 싶어지는 장면들.
시청자가 알고싶은 것도 적지만 알려주는 것도 거의 없다고 하는게 옳겠지.
티브이는 오락물이다.
그점을 아주 잘 알고 있고 티브이의 역할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깊은 철학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숭고한 이상을 강요하고 싶은게 아니다.
모든 부정적인 묘사들을 티브이에서 몰아내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티브이를 가득 채웠듯이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들을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몰아내고 가벼운 흥미거리 만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그 상황들에 마음이 아픈 거다.
당신은 깨닫고 있는가?
요즘엔 나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 대립하고 있기 보다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립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남의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할 수 있는 까닭은 그만큼 그들의 입장을 잘 모르고 있다는 뜻도 된다.
가볍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만큼이나 남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주장을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진짜 긍정적이어야 할 소망도 잊어버리고 바꾸고 싶은 현실도 그냥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충분히 긍정적이어야 할 부분은 티브이가 아니라 앞으로 뭔가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 쪽 아닌가?
당신은 그 비겁함을 깨닫고 있는가?
계몽 드라마를 두 편 연달아 보는 오늘. 나는 화가 많이 난다.
이건 스스로에 대한 분노여야 한다. 그래야한다.
어릴 적에 북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예전에 광화문 우체국 부근에서 탈북자를 모셔두고 영화 상영회를 하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탈북자는 매우 흔치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낯간지러워한 부분은, 영화 속 모든 배우들이 북한을 천국인 양 묘사하고 찬양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북한 영화 만큼이나 낯간지러운, 사회의 긍정성에 대한 찬양은 교과서와 티브이 그리고 모든 매체들을 통해 항상 듣고 보고 자란 것들이란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묘하게도 빨갱이를 몹시 싫어하시는 분들이 긍정적인 사회에 대해 역설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북한 영화스럽다.
중요한 건 현재 내가 얼마나 이익을 보면서 살고 있느냐이지 이념이나 체계 따위가 아니라는 것. 이 부분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서로 서로 그 아래의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무너지지 않도록 그 사회의 긍정성을 최대한 광고하고 속이고 있는 점에서 마찬가지인 거다. 이제 와서 어느 이념과 체계가 낫다고 싸우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우리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남북전쟁이 이념전쟁이라고 생각하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흑인들의 권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미국의 남북전쟁 조차 백인들의 이권 다툼이었다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지 않나.
두번째.
북한의 세뇌(?) 영화야 이제 내 관심사 밖이고 내가 요즘 들어 두려워진 것은 티브이 드라마 속의 긍정성이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내가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따위의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점은 단순하다. 저건 대체 어느 나라 농촌 드라마야?
예전에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컬러 티브이의 보급과 함께 3S 정책은 묘한 곳에서 그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부정적인 대한민국에 대한 묘사는 모두 사라지고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드라마들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들도 '사랑이 꽃피는 나무' 따위가 유행을 했던 모양이다(그 드라마가 싫었다는 뜻은 아니다).
80-90년대에 루머처럼 시중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인데 박모 대통령과 전모 대통령은 혼혈 연예인이나 장애가 있는 연예인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매우 질색했다고 한다. 뭐 연예인은 술자리에서 끼고 놀거나 여흥을 돋구어주는 존재였어야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시각장애가 있던 이모 연예인은 대통령이 미국으로 보내버렸다는 소문이 돌았었고 다리가 불편했던 조모 연예인은 티브이 출연이 힘들어서 대마초를 피웠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때 느끼고 있던 점은 그만큼 티브이에 출연하는 드라마들과 쇼들이 행복한 대한민국 만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지리 가난하고 궁상을 떠는 내용의 드라마는 50-60년대를 다루는 내용에서만 히트를 쳤고 일일 드라마들과 농촌 드라마들은 소득이 제법 보장되거나 경제적인 걱정은 전혀 없는 행복한 가족을 표준으로 삼아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꽤나 현실적이다 싶은 드라마들은 부정적인 사회 묘사를 이유로 질타를 받기도 하는 풍경. 대한민국 사람들의 긍정성은 전투적이다.
세번째.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사고는 좋은 말이다. 난 사랑, 희망, 다정함, 정의감, 협동심, 애국심같은 교과서적인 단어와 마인드 자체에도 거부감 전혀 없다. 아니 세상의 모든 긍정적인 단어들이 개인적으로 나쁠 이유 전혀 없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긍정적인 단어로 가득찬 티브이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된 이유는 컴퓨터로 미드를 보거나 하는 일들이 더 좋아서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 드라마들이 가져다주는 폭력적인(?) 화면들을 더 봐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부모님께서 달리 자극적인 쇼 프로그램 말고는 볼 것이 없어서 시청하신다는 농촌 드라마는 무슨 70년의 계몽 영화처럼 신토불이를 외치고 도시에 직장을 얻으려 하는 젊은이를 어리석은 사람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여전히 무지하지만 한재산 갖추고 존경받으면서 모시옷이나 입는, 농촌 노인네들은 어른입네 큰소리치며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무당을 무조건 마을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정작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제결혼 커플 문제나 홀로 돌아가시는, 수입도 없는 궁핍한 노인네들 이야기는 한번도 다루지 않는 아름다운 센스를 보여주면서도 몇가지 황당한 면에서는 빠지지 않고 비합리적인 시골 주민들. 내 모교는 학생이 모자라 폐교가 오늘 내일이라는 걱정 속에 가끔은 수업도 제대로 못하는데 드라마 속에선 아이들이 넘쳐난다.
시골에 살아서 이런 것도 모르냐고 학생에게 핀잔을 주는 깍쟁이 초등학교 여교사 대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여교사는 신토불이 농촌총각이랑 결혼을 하셨다나. (이 드라마틱한 설정에서 북한 영화 도라지꽃이 왜 그렇게 떠오르던지) 이 계몽영화가 시골에 사는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신들은 알고 있을까? 솔직히 드라마 속에 농촌 테마 파크를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실제 농촌에 누가 살던지 말던지는 관심도 없잖아?
하긴 이런 현상은 미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소수자 차별 문제로 드라마 속에 반드시 유색인종을 일정 부분 이상 출연시켜야한다던가 그런 룰이 있긴 하지만, 대개의 인기 미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백인들이 주인공이고 고위직에 있는 흑인들은 실제로 흔치 않지만, 드라마의 양념으로 끼워 넣어진다. 무슨 장식물이라도 되는 듯이. 모든 문제들이 한끼 식사거리처럼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네번째.
마이걸이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다해, 그리고 변희봉의 관계는 알다시피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가짜 손녀의 관계이다.
워낙에 코믹한 드라마였기도 했지만, 내가 웃음을 날린 부분은 변희봉씨에게 이다해가 '오빠는 식사 하시고 오신대요'라고 하던 장면이다. 워낙 많은 드라마에서 용례나 어법이 틀리기 때문에 일일이 지적하기도 어렵지만, 자막에 철자가 틀리는 건 기본이니 황당한 존대말이나 관계들이 제법 많더라.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고 가벼운 관심 만큼이나 정확하지 못한 정보들이 넘치고 있는 티브이에서 만족을 느껴야하는 시청자의 입장이라니. 이만큼 비극적인 게 어디 있나 싶어지는 장면들.
시청자가 알고싶은 것도 적지만 알려주는 것도 거의 없다고 하는게 옳겠지.
티브이는 오락물이다.
그점을 아주 잘 알고 있고 티브이의 역할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깊은 철학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숭고한 이상을 강요하고 싶은게 아니다.
모든 부정적인 묘사들을 티브이에서 몰아내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티브이를 가득 채웠듯이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들을 머리 속에서, 마음 속에서 몰아내고 가벼운 흥미거리 만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그 상황들에 마음이 아픈 거다.
당신은 깨닫고 있는가?
요즘엔 나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 대립하고 있기 보다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립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남의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할 수 있는 까닭은 그만큼 그들의 입장을 잘 모르고 있다는 뜻도 된다.
가볍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만큼이나 남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고 그들의 주장을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진짜 긍정적이어야 할 소망도 잊어버리고 바꾸고 싶은 현실도 그냥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충분히 긍정적이어야 할 부분은 티브이가 아니라 앞으로 뭔가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희망 쪽 아닌가?
당신은 그 비겁함을 깨닫고 있는가?
계몽 드라마를 두 편 연달아 보는 오늘. 나는 화가 많이 난다.
이건 스스로에 대한 분노여야 한다. 그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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