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2013년 사극 열풍, 사극이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Shain 2013. 1. 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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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 관행 중 최악은 인기 아이템을 재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외로 많은 팬들이 80년대를 드라마의 황금시대라 평가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작환경은 열악했고 자본 문제로 스케일이 큰 드라마 제작은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그때 다양한 방향의 제작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013년까지도 활약중인 김종학, 이병훈 PD들은 그때 드라마 제작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시리즈 분기별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제작했던 '조선왕조오백년'같은 사극은 퓨전사극이 범람하는 요즘은 보기 힘든 연대기식 사극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드라마들은 장르가 다양해진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극은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판타지극이 대세고(어떤 건 역사에서 이름만 빌렸지 사극이라 할 수 없는 수준), 현대극은 멜로가 필수가 되어 걸핏하면 막장 논란에 시달립니다. 일부 의학드라마에서는 어설픈 러브라인을 엮는 관행이 사라진 것 같지만 아직도 병원물 하면 병원에서 사랑싸움하는 의사들이 대세입니다. 특히 사극은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한데 퓨전사극이 한번 유행한 뒤로는 각 방송국 마다 퓨전사극으로 본전을 뽑을 기세입니다.

질리게도 우려먹는 '장희빈' 여배우들의 커리어를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일까.


이렇듯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물론 시청률 때문이겠지요. 지나치게 우려먹어 이제는 국물 다 빠진 사골이란 평가를 받는 '허준(1999)'을 '구암 허준'으로 리메이크하고 김주혁, 백윤식, 고두심, 김미숙, 이재용처럼 '비싼'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건 그 아이템이 최소 실패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SBS에서 '야왕' 후속으로 계획하고 있는 김태희, 유아인 주연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아무리 새롭게 각색해도 숙종의 아내였던 '장희빈'이야기일 뿐입니다. 벌써 몇번째 보는 장희빈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요즘 '사극'은 역사적 재해석이라기 보단 절대 실패하지 않을 과거 인기 아이템 즉 역사속에서 이름만 빌린 창작된 캐릭터를 하나 설정하고 고증과는 거의 상관없는 현대적 분위기로 연출합니다. 덧붙여 인기 아이돌을 한두명 끼워넣으면 무슨 저가 할인 상품처럼 고정 시청률이 보장됩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장희빈'이나 원작 소설이 존재하는 '허준'은 인생 자체가 드라마라 무리수를 두지 않는 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아이템입니다. 새로운 주제도 같은 형식으로 제작되면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다 싶은 느낌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추노(2010)'가 히트하면 유사한 작품이 쏟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이 몇번째 허준인가. 김무생, 이순재, 서인석, 전광렬에 이어 김무생의 아들 김주혁까지.


요즘은 일부 탑스타들이 자신의 경력에 한줄 적기 위해 출연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게 사극이지만 아무리 퓨전이라도 본래 발성부터 섬세한 동작까지 가장 어려운게 사극연기입니다. 몇몇 사극 출연자들 중에서는 기품있는 양반가 여성 역할을 하면서도 거칠게 걷거나 털썩털썩 주저앉는 모습이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배우들이 많더군요. 미숙한 사극연기를 하면서도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률을 노리는게 아닐지 솔직히 걱정됩니다. 무조건 유명세있는 '스타' 연기자를 캐스팅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참신한 등장인물이 돋보이는 사극

우선 다른 드라마를 모두 제쳐두고 KBS에서 5월 방영예정인 '바우덕이'가 소재 면에서 가장 기대가 됩니다. 전체 20부작으로 기본 내용은 대원군에게 옥관자를 하사받은 남사당패 바우덕이의 삶입니다. 남사당패 속 여사당의 드라마가 그동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0년 방영되어 호평받은 SBS '초혼'은 정은별 주연으로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동안 사당패의 이야기는 남사당과 여사당의 '성매매'라는 부분 때문에 금기시되던 주제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조명할지 드라마틱한 사랑을 묘사할지 두고볼 일입니다.

MBC에서 6월경 방영예정인 '불의 여신 정이'는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이라는 '백파선'은 꽤 관심이 갑니다. 예전에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이야기가 자주 드라마화되곤 했는데 요즘은 뜸해진 감이 있어 시기상으로도 적절하다고 보구요. 다만 극본이 '무사 백동수(2011)'의 작가라 사극으로서는 그닥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7월 3일 방영예정인 KBS '칼과 꽃'도 기대작중 하나입니다. 고구려 영류왕의 딸이 연개소문에게 복수를 시도한다는 내용으로 여자판 '공주의 남자(2011)'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여사당 '바우덕이'와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삼은 '화투'(이미지는 SBS '초혼'과 MBC '신돈')


기본적으로 두 주인공 모두 가상의 인물이지만 극적인 내용 때문에 벌써부터 팬들 사이엔 하지원과 김남길이 주연으로 어떻겠느냐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가상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이미지 중심의 연출을 한다면 괜찮은 드라마가 나올 것도 같습니다. 그 다음 기대작은 방영시기가 결정나지 않은 MBC의 '화투'입니다. '신돈(2005)'의 기황후(김혜리)는 철저한 악녀였습니다. 그러나 기황후의 악명은 명나라와 기철형제들 때문에 생긴 이미지로 실제 기황후의 인생은 영웅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드라마 형식은 뻔할 것같지만 '기황후'는 참신해 보이네요. 60부작인걸 보니 월화드라마같습니다.



방영되기 전부터 우려스러운 사극

'구암 허준'은 우려먹기에 뻔하다는 악평 때문인지 '일일 사극'치고는 제법 화려한 캐스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 기억에 7시부터 9시 사이에 방영되는 일일극이 이렇게 엄청난 캐스팅을 했던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군요. 유의태 역이 백윤식인 것도 신기한데 유도지 역에는 남궁민이 예진아씨 역에는 한채아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2010년 방영된 MBC '폭풍의 연인'은 일일 드라마치고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시도했지만 '망한' 전적이 있습니다. 일일 드라마 시장의 호황을 가져올지 또다른 망작이 될지 두고볼 일입니다.

MBC '대장금 시즌2'는 극본을 썼던 김영현 작가도 주인공 이영애도 후속작을 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언급을 했던적이 있으나 김재철 사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제작할 것이란 소문이 지배적입니다. 작가도 PD도 출연배우도 아무것도 확정되어 있지 않고 라인업에만 올라 있는 상태로 사극 팬들 중에서는 절대 만들면 안되는 사극 1순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번 제작했다 하면 60부작에 엄청난 캐스팅이 이뤄지겠지만 '대장금'은 영원히 시청률을 뽑아낼 수 있는 화수분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돈낭비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버지를 이어 '허준' 역을 맡기로 한 김주혁. 시즌 2 제작설이 계속 언급되는 '대장금'


SBS의 '이순신 외전'은 10월 중 방영예정으로 작년부터 팬들 사이에선 이런 컨셉으로 제작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주인공은 엄태웅, 극본은 박진우로 제작진은 기대할만 하지만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은 이순신이 해상대국을 건설하려 한다는 설정에 이의를 제기한 팬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퓨전사극이 범람해도 '국민영웅'까지 건드리는 건 옳지 않다는 반응도 있고 기록이 선명한 역사속 인물로 가상의 이야기를 꾸미려면 무리하고 억지스럽다는 평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말로 변명할 수 없는게 사극입니다.

SBS의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일단 두 배우 모두 연기경력에 비해 사극에서는 신인에 가깝다는 점이 걱정이로군요. 특히 김태희의 사극 연기는 낯설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아예 퓨전사극으로 간다니 가상인물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할 것 같고 사극에 능숙한 조연급연기자들과 주연배우의 갭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홍수현이 인현왕후 역으로 거론되고 있던데 홍수현도 사극에서는 베테랑이니 주연들과 상당히 비교되겠지요. '유아인'을 선택했다는 건 '튜더스(The Tudors)'의 헨리8세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를 연상할 수 있는 캐스팅입니다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극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란 보장 없다

이외에도 4월 방영예정이라는 MBC의 '구가의서'는 사극이라기 보단 일종의 퓨전 판타지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남자 구미호라고 하니 '아랑사또전'처럼 기묘한 분위기로 이끌고 갈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이승기야 뭐 이제 연기를 제법 한다고 치지만 수지의 출연은 좀 무리수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투톱 모두가 사극이 처음이라면 보는 입장에서는 맞지않는 옷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KBS에서 4월 방영예정인 '천명'은 인종독살이 거론되는 걸로 봐선 도둑들이 들끓었다는 문정왕후, 명종 시기일텐데 분위기가 좀 애매해 보이는군요.

4월부터 방영될 '구가의서'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승기와 수지.


사극은 과거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대를 반영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드라마
입니다. '추노'의 드라마 속 노비들이 고통스럽게 사는 모습이 우리 이야기인 것같아 서글프고 '짝패(2011)'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의적들이 안쓰러운 건 우리 시대에도 개혁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극이 마치 스타연기자들의 '사극 코스프레'처럼 변해버린 건 어쩌면 진지함이 사라져버린 시대의 그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청률이 떨어진 MBC가 사극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하는데 사극하면 성공이 보장되었던 과거와 다르게 시청자들의 보는 눈도 높아졌습니다.

PPL을 유치하려면 타임슬립 사극을 찍으라는 말도 있던데 그만큼 사극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 부담이 크기에 방송국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왕 돈들이는 사극을 찍으려면 몇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연기는 물론이고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극을 왜 제작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멋진 사극을 보고 싶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악당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을 땐 관점을 조심해야하는 것처럼 가치관 정립도 중요한게 사극입니다. 10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사극은 따로 있더군요. 그냥 시청률을 노리고 사극까지 막장으로 연출하려면 차차리 싼값에 막장 드라마를 한편 더 찍을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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