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짝' 폐지 결정, 잔인한 일반인 예능의 문제점을 돌아볼 때다

Shain 2014. 3. 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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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출연자의 자살로 논란이 되었던 SBS '짝'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평균시청률 7%대, 최고 시청률 9%로 적잖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프로그램이라 방송사 SBS 측도 꽤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번 사건의 사후 처리에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SBS의 입장은 결국 폐지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겠죠. 정상방송되던 3년 동안에도 폐지하라는 주장이 많았던 만큼 이번 출연자의 사망사고까지 그대로 넘기면 비윤리적이란 비난을 떠안고 가야하는 셈이니 방송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3월 6일 방송 3년 만에 폐지가 확정된 프로그램 '짝'. 일반인 예능의 부작용을 되돌아봐야.




이번 출연자 자살 사건을 계기로 이 프로그램이 폐지된 셈이지만 정확히는 원래 폐지하라는 여론이 거셌는데 이번 사망 사건 때문에 불이 붙었다는게 맞습니다. 조건과 외모를 따져 서로를 평가하고 강자와 약자를 가려내 과장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학력위조부터 경력 조작, 성인방송 출연자와 쇼핑몰 광고, 성추행 등 '짝'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때 마다 네티즌들은 방송 폐지를 요구했고 방송사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자살한 출연자가 '민폐'를 끼쳤다고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가 자살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폐지논란을 보며 더욱 놀란 현상 중 하나는 '짝'을 폐지하라는 주장에 악플을 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이 죽은 프로그램을 웃으며 볼 수 있느냐'는 기본적인 윤리 문제, 프로그램 폐지를 둘러싼 아쉬움은 그래도 이해한다고 칩시다. 어쨌든 남의 일이고 TV 속의 일이니 말입니다. 자살한 사람이 제작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주장도 평소 논란을 생각하면 납득가지 않는 오지랍이지만 인정인가보다 합니다. 그런데 자살한 사람의 사진을 퍼트리고 자살 이유를 함부로 말하고 폐지 주장에 욕설을 퍼붓는게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죠.






리얼리티쇼에서 독거 노인의 죽음까지 TV로 지켜보는 이 시대에 사람 하나가 죽었다고 프로그램을 포기하란 말이냐는 이 주장은 여러모로 섬뜩한 부분이 있습니다. '짝'의 제작진이 사망자의 선택에 백프로 영향을 끼쳤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여러 증언을 들어볼 때 선택받지 못한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은 인정이 됩니다. 평소 방송 내용에 왜곡이 많다는 건 수차례 듣던 이야기니까요. '이 방송 나가면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사망자의 입장에 공감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 사망자가 당연히 이런 걸 받아들여야하고 자살은 개인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왜 일까요?

'위험한 돌싱녀'에서 묘사된 '짝' 패러디. 출연자의 속사정은 모른채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는 시청자.


일반인 예능이 가끔 출연자들의 삶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면서도 떳떳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출연자가 TV 프로그램 출연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피해와 상처가 있을 줄 알면서도 출연했으니까 당연히 혼자서 그 고통을 감수해야한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또 케이블을 비롯한 일반인 예능에 출연하는 일부 출연자들은 유명세를 얻기 위한 과장된 캐릭터 설정으로 스스로 잡음을 불러일으키니 언뜻 이 말은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출연동의서에 사인했다는 말과 괴롭힘에 동의했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일방적인 강요일 뿐이죠.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맥도날드 할머니'입니다. 맥도날드 매장에서 쪽잠을 자는 할머니의 특이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할머니의 인격을 모욕하며 사실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왜곡된 내용을 퍼트리기도 했고 할머니의 인생을 평가하는 무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했던 방송에 그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당사자는 생각이나 했을까요? 요즘은 TV 출연에 동의한 것을 출연한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조롱하고 괴롭힐 권리를 준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출연에 동의했다는 게 출연자를 괴롭힐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안전장치없이 출연하는 일반인들.


'나 혼자 산다'같은 연예인 예능은 어느 선에서 보여주기의 틀을 조율합니다. TV 속의 김광규는 진짜 김광규라기 보단 '김광규'라는 하나의 캐릭터이고 시청자들이 소모하는 것도 그런 연예인의 캐릭터 이미지입니다. 일부 연예인들이 사생활 노출로 인기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조작된 이미지이거나 약속된 범위 내에서 노출하는 사생활일 뿐입니다. 당사자에게 피해가 있다고 생각될 경우 즉시 기획사나 연예인 본인이 어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촬영해도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보여주기에 익숙한 연예인도 이런데 일반인들은 더욱 힘겨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인은 방송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와 실제 인물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연예인은 드라마 속 '캐릭터'를 조롱하는 거라 치부할 수 있는데 일반인은 '캐릭터'를 비웃는것과 자신을 비웃는 게 동일하게 여겨집니다. 짝맞추기에 실패했다고 어디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비극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그렇게 보입니다. 스펙이 모자라다는 지적도 받아야합니다. 어디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인한 동의서에는 그런 조롱까지 받아들여야한다는 조항은 없었을 것입니다. 출연자에 대한 안전장치는 없으면서 방송 출연 후유증은 무조건 받아들여야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세가 된 일반인 예능. 동의서를 강조할 게 아니라 충분한 안전장치를 준비해야하는 것 아닐까.


연예인으로 만족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욕망이 일반인의 TV 출연으로 이어진 것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죠. 그러나 그 인기의 이면에는 콜로세움 전투사들의 혈투를 지켜보는 원시적이고 잔인한 심리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출연자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정으로 출연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출연자가 출연에 동의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비난과 악플을 고스란히 받아야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화제성을 위해 더욱 노골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건 아닌지 그 부분은 (이번 자살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제작진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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