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김연아 이슈' 진실을 원치 않는 대중과 스팸이 된 언론

Shain 2014. 3. 1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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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언론 보도는 많은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피해자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피해자의 집과 가족관계가 사람들 앞에 낱낱이 까발려졌고 기자들은 사실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추측성 기사로 피해자의 어머니를 죄인으로 조작했습니다. 가해자 보다 더 많은 비난이 가해자와 잘 알지도 못하는 어머니에게 쏠렸습니다.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피해자 가족은 이사를 가야했습니다. 기자들이 피해자의 집을 취재하기 위해 진을 친 것도 모자라 전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그 다음 달 전기세가 30만원 나왔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편파판정 제소 이슈는 사라지고 어느새 사생활 노출로 공격받고 있는 김연아.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언론에서 피해 아동의 일기장을 찍고 피해자 가족을 촬영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버지가 친했다는 소설을 쓰고 엄마가 보상금을 갖고 도망갔다는 루머가 난무하는 동안 사람들은 놀랍도록 피해자 가족에게 가학적이었습니다. 행여 피해자 가족이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피해자와 함께할 가족을 배려해야했는데 없는 말로 가족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대중이 원한 것은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 가해자 대신 원망할 제물인 듯 보였죠. 피해자의 신상이 털리고 가해자는 사라지는 이런 논란은 이젠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포털에서 화제가 되곤 하는 SBS의 '짝' 출연자 자살과 김연아의 디스패치 법적 대응 논란을 보면 대중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자살을 했고 평소 그 예능 프로그램의 일반인 출연이 문제있다고 지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자 모욕에 더 쏠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소치 올림픽 편파 판정으로 이슈가 된 피겨선수 김연아는 왜 ISU에 제소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 보다 디스패치가 퍼트린 열애설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짝'의 출연자 사망이 이렇게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웃고 즐기는 TV 예능에서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죠. 우리 사회는 어느새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대중은 TV에 출연하겠다는 출연동의서에 사인한 출연자는 함부로 평가해도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못생겼느니 날씬하니 같은 외모 평가는 기본이고 스펙이 좋다 나쁘다, 성격이 더럽다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재미있게 여깁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런 예능에서 '왕따' 현상을 보았고 TV 예능이 시청률 때문에 그런식으로 변질되었음에 우려를 표시하지만 다수의 대중은 그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김연아의 금메달 이슈는 이미 본질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편파 판정의 배후에는 러시아의 치밀한 물밑 작업이 있었다는 심증이 강하지만 대한체육회에서 그 문제를 제소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이 해야할 일은 왜 피겨 스케이팅만 유독 제소가 어려운지 그 이유를 밝히고 세계 유력 스포츠 평론가들의 의견과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지만 이미 오역 소동과 다수의 왜곡된 정보로 금메달 이슈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죠. 지금은 '김연아'로 검색되는 모든 원문 기사를 재번역해야할 정도입니다.

소속사에서 법적 대응 움직임이 있자 해명에 나선 디스패치. 김연아 이슈는 언론들의 좋은 돈벌이다.


거기다 디스패치는 무려 6개월 이상 참아왔다며 김연아의 열애설을 터트려버렸습니다. 파파라치 치고는 꽤 오래 참았다며 득의양양합니다. 그 후에 평론가라는 사람이 허위 사실을 덧붙였고 열애설 당사자의 후배라며 사칭하는 사람까지 생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위를 두고 김연아의 소속사 측에서는 이례적으로 법적 대응을 선언합니다. 포털과 언론사에서는 톱스타니까 이정도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한다는 의견부터 스포츠 스타의 사생활을 왜 터트리냐는 비난까지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헛소리도 이쯤되면 소신입니다. 그 와중에 금메달은 속된 말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죠. 러시아가 감사하다고 메달을 줄 판입니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에서 보호받아야할 피해자가 노출된 것도 모자라 피해자 가족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역적이 되고, '짝'의 출연자 자살 사건으로 되짚어야할 일반인예능 보다 자살자 모욕이 대세가 되고, '소치 스캔들'로 국제적 이슈가 된 편파판정이 열애설로 변질되어 오히려 김연아가 비난받는 이 현상. 어린이 성범죄와 왕따와 편파판정, 사생활 노출이라는 - 사람이라면 당연히 분노해야할 중요한 이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이 현상이 정말 대중이 원한 것일까요? 어쩌면 대중은 정확한 진실 보다 분노하고 화풀이해야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역, 오보라도 상관없다. 한번 이슈가 생산되면 꾸준히 같은 기사를 퍼올리는 언론들. 마치 스팸같다.


물론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언론 보도로 장사속을 차리고 있는 언론의 태도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정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듯 오보와 자극적인 제목으로 타이틀을 장식한 언론을 찾아보는 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유명 피겨칼럼리스트가 소치 올림픽 편파 판정을 폭로하고 김연아의 편파 판정을 양심선언한 심판이 있다는 오보는 고의적으로 오역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기자라면 진위 여부와 출처를 판단해서 기사를 올리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지만 검색되는 기사의 리스트를 보면 언론사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올렸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관심가진 분들은 아마 아시겠지만 최근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올리는 언론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수상합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검색하면 제목이나 내용의 극히 일부분만 다르고 전체적으론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수없이 올라오는 현상을 발견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언론이 포털에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시스템을 이용해 언론이 검색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는 것같더군요. 말하자면 이슈를 고의로 만들어내서 붐을 만들고 포털 시스템을 이용해 그 이슈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짝'이나 '김연아'가 어떻게 되든 장사속만 차리고 보겠단 이야기죠.

정말 중요한 일은 초라하게 묻혀버리는 현상. 진실을 전해줄 언론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블로그를 운영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개인블로거가 저런 식으로 같은 포스팅을 계속 생성하면 제재 대상이 됩니다. 저품질 블로그가 되면 검색에서 제외되고 스팸으로 판정되면 계정이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검색어에 따라 같은 이슈를 10분 마다 한번씩 재생산하는 언론의 행동은 스팸 블로그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씁쓸합니다. 언론의 특권을 이렇게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짝'이나 '김연아 이슈' 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루머나 악의적인 댓글에 휘둘리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기사는 점차 사라지고 언론이 스팸이 되어간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 섬뜩하더군요.

어떤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현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대중의 분노는 일반인 예능을 잠시나마 주춤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진실과 엉뚱한 분노에 묻혀 잊혀지는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우리를 후회하게 만들 것입니다. 어딘가로 잘못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 커다란 나라에서 현상의 진실을 전해줄 언론이 별로 없다는 건 지독하게 슬픈 일입니다. 어쩌면 분노하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언론을 찾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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