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한드 공식 벗어난 '신의 선물' 생방송 드라마는 못 피하네

Shain 2014. 3. 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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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에는 몇가지 틀에 박힌 공식이 있습니다.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들 중 다수가 그런 공식을 따르고 있죠. 출생의 비밀과 재벌같은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설정도 '기본공식' 중 하나고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당연히 따라오는 셋트 메뉴입니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이 멜로 라인이 없는 드라마를 특별하다고 평가할 정도니까요. 월화 드라마 '신의 선물 14일'은 그런 면에서 기본적인 한국 드라마 공식을 많이 벗어난 드라입니다. 공중파 드라마들이 흔히 선택하지 않는 아동 유괴라는 소재도 특이하지만 다소 불친절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연출 방식과 뻔하지 않은 전개로 한국 드라마같지 않다는 평가를 듣곤 합니다.

'미드'같다는 호평을 받으면서도 잦은 옥에티가 지적되는 '신의 선물'. 생방송 드라마는 어쩔 수 없나?

한국 언론이 흔한 한국 드라마와 닮지 않은 '신선한' 드라마를 호평할 때 주로 '미드'같다는 수식어를 쓰곤 합니다. '미드'가 좋은 드라마의 기준이냐고 물으면 제 대답은 '꼭 그렇진 않다' 쪽입니다만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 저렴한 셋트장에서 불륜녀 머리끄덩이를 잡는 치정극을 찍고, 남의 아이 바꾸고, 유전자 검사 조작이나 하는 우리 나라 드라마에 없는 장점이 미드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의 선물'은 다른 드라마에서 흔히 제작하는 OST를 쓰지 않는 대신 장면에 잘 어울리는 효과음을 쓰는 등 여러모로 남다른 선택을 많이 보여줬습니다(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더군다나 '신의 선물'에는 자본이 남아도는 미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몇가지 장점이 존재합니다. 수십억 제작비와도 바꿀 수 없는 뛰어난 배우들 인데요. 사투리 쓰며 넉살 좋게 애드립을 날리는 조승우나 거친 액션신을 직접 소화하는, 악착같은 열혈엄마 역의 이보영, 엉뚱하고 말 안듣지만 귀여운 딸아이 역에 제격인 천재 아역배우 김유빈, 관점에 따라 좋은 아빠와 의뭉스런 불륜남을 오가는 김태우 등 연기자 만큼은 미드에서도 보기 힘든 조합입니다. 강성진, 오태경을 비롯한 조연급 연기자들 역시 그런 배우들이죠.



 

 

그러나 이렇게 칭찬받는 '신의 선물'도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인 생방송 드라마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신의 선물'에 출연했던 몇몇 배우들의 SNS나 현장을 찍은 팬들의 사진, 정보를 읽어보면 드라마 촬영 시간이 생각 보다 상당히 빠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시판에 '신의 선물 14일' 옥에티가 너무 많다며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1회의 18대 대통령 선거가 갑자기 24대 대통령 선거로 변하거나 6회에서 오전 12시가 저녁 8시 35분으로 변하는 자잘한 실수가 자주 발생합니다. 어제는 같은 사람이 받은 메일인데 메일 보낸 사람 아이디가 달랐죠.

액션신이나 위험한 장면이 많은 드라마와 '생방송' 촬영 환경은 극악의 조합이다.

'신의 선물'같은 미스터리 추리극은 꼼꼼함이 생명입니다. 1회에 뿌려진 복선이 마지막회에 해결될 수도 있는 그런 드라마다 보니 짜임새있는 연출이 중요한데 몇몇 장면은 너무 급하게 찍은 티가 나서 아쉬움이 남더군요. 최란 작가가 원래 시사 프로그램 작가 출신이라니 그런 디테일을 모르진 않을텐데 너무 급하게 촬영하다 보니 제작진 쪽에서도 오류를 수정하거나 재촬영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생방송 드라마 촬영 환경에서는 그 특유의 매력을 살리기 힘든 것입니다.

특히 '신의 선물'처럼 위험한 장면이 많은 드라마를 생방송 환경에서 촬영하다 보면 예기치않은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바쁜 일정에 쫓겨 급하게 촬영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안전에는 소홀해지기 쉽습 니다. 대역 없이 액션신을 소화하다 다치는 배우들 사고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죠. 어제 밤에는 팬들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야간에 촬영하고 있는데 도로 통제가 생각 보다 허술했습니다. 과거 PD였던 배우 조재현씨의 형이 드라마를 촬영중 음주운전 차량 때문에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을 만큼 위험한 것이 길거리 촬영입니다. 도로 한가운데서 이보영과 아역 배우 김유빈과 함께 촬영중이더군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유빈, 이보영 촬영장면. 야간촬영에 도로 통제도 허술해 보인다.

갑자기 그 사진을 보니 아직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 김유빈이 하루 8시간 이상 촬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더군요. 주연배우인 이보영, 조승우는 등장 분량이 많아 아마도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서 촬영중일 것입니다. 김유빈도 마찬가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대충 글이 올라온 시간이나 촬영된 시간으로 보아 한밤중이 아닌 것은 그나마 다행 입니다. 다른 드라마의 어떤 아역 배우들은 새벽까지 촬영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으니까요. 우리 나라에는 특별한 아역배우 보호법이 없어서 아역 배우들이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되는 드라마 때문에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촬영 시간이 넉넉하면 대역을 쓰거나 안전장치가 충분한 곳에서 액션신을 찍을 수 있을테고 안전한 장소에서 도로통제 해가며 촬영할 수 있겠죠(제가 본 영화, 드라마 촬영 장소는 통제가 허술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면 10살 미만의 아역배우들도 하루 6시간 미만 촬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신의 선물'이 매니아들에게 충분히 인정받으면서도 완성도에서 지적받는 것은 역시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 이겠죠. 제작자가 뛰어나도 제작 환경 만큼은 제작자 뜻대로 바꿀 수 없을테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출연하는 드라마다 보니 다른 어떤 드라마 보다 제작환경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하나둘씩 드러나는 생방송 촬영의 증거들. 미드같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건 고질적인 제작환경 아닐까?

'신의 선물'은 여러 모로 매력있는 드라마입니다만 매회 지적되는 옥에티들은 산만한 복선들과 헷갈릴 정도로 보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리게 합니다. 팬들로서도 정말 아쉬운 부분이죠. 시청률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 나라 공중파 드라마에서 이런 드라마의 탄생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더욱 아쉽습니다. 매일 미드같은 드라마를 부러워할 것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 드라마의 제작을 추구하고 제작진들이 무리없고 여유있게 촬영가능한 제작 환경이 미드같은 드라마의 탄생을 뒷받침하는 기본 조건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탭과 배우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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