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로열패밀리

로열패밀리, JK가 인숙을 단죄할 수 없는 이유

Shain 2011. 4.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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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K의 과거, 비밀리에 묻혀있는 과거의 인물들은 대부분 등장한 상태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인숙(염정아)이 죄를 지었는지 몰라 시청자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인숙이 숨기고 있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점, 그 부분이 한지훈(지성)이 인숙을 용서해야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인숙을 '제거'해야하는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 참담한 일을 일으켰다면 지훈을 향해 보여준 양심은 악어의 눈물일 뿐입니다.

한번 죄를 짓기가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어렵지 않다. 극중 인숙을 협박하는 사창가 포주 출신 강마담(김민정)은 그런 요지의 말을 합니다. K라 불리는 인숙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은근히 돈을 달라 협박하는 그 말, 그 말대로 인숙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더욱 더 단단한 여자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강마담이 사창가로 나가라 위협하고 압력을 주어도 우유배달하고 곰인형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꿋꿋이 버텨나가던 어린 마리가 그렇게 됐습니다.

늘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 서려 노력하는 마리의 고단한 삶

어린 시절의 김인숙과 젊은 시절의 엄기도(전노민)는 정말 순수하고 다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언니들이 신다 버린 하이힐을 신고 곰인형 배달을 가는 고아 소녀와 그 소녀의 고생이 안쓰러워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카투사 청년의 모습엔 흑심 따위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아이에 대한 연민, 마음이 뭉클해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모종의 살인'이 일어나기 전 그들의 모습이란 것, 그렇다면 인숙의 살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불행이란 뜻이 됩니다.

지훈이 자신의 마지막 추격자라 선언한 인숙, 신이 왜 쓸데없는 희망을 주어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인숙, 그녀의 눈물은 죄인의 쓸데없는 위선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엄집사와 함께 죄를 떠올리며 힘겹게 헤쳐온 지난 세월, 살아남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일들에 대한 죄책감일까요. 공순호(김영애) 회장은 몰래 지주사를 바꿔 김인숙의 입지를 허수아비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훈이라면 몰라도 JK가의 사람들에겐 단죄당하고 싶지 않다는 인숙의 마음, 얼핏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김마리가 JK의 조현진처럼 태어났더라면

공순호 회장은 딜랑을 JK 백화점에 입점할 때 보여준 K의 능력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딸이었다면 기뻐하며 칭찬하고 후계자로 단박에 인정했을 만큼 놀라운 일처리, 18년 동안 갇혀 지내기만 했던 K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대를 잘 간파하는 그녀의 능력은 타고난 것인지 노력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재벌의 후계를 맡길만큼 뛰어난 자질이었습니다. 공순호는 K를 경계하지만 자신의 다른 어떤 자식들 보다 K가 낫다는 것만은 인정해야했을 것입니다.

내세울 것은 품위있는 얼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김마리(김인숙의 본명)'가 조현진(차예련)으로 태어났더라면 나태한 오빠 조동진(안내상)이나 구성의 프린세스 임윤서(전미선) 쯤은 쉽게 밀어낼 수 있는 외동딸 역할을 충분히 해냈을 것입니다. 강마담 같은 양심없는 포주에게 시련을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가난에 허덕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느냐 새벽잠을 설칠 일 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노동자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너무나 쉽게 풀려난 최철원의 사례처럼 극중 큰 아들 부부의 딸인 지은의 섹스 비디오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깜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사소한 잘못이나 피해 정도는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덮어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재벌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김마리는 조현진과 같은 환경은 커녕 인간으로서의 존엄 조차 지킬 수 없는 그런 환경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사창가에서 자란 김마리는 '환경'을 탓하며 무너져내린 나약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 했고 엄집사는 그런 마리를 기특하게 생각했고 동정했는데 그런 아이가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저질러진 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 3자가 보기에도 어쩔 수 없는 '가혹한' 운명으로 보였을 정도인가 봅니다(물론 엄기도 집사가 어린 마리를 사랑하는 까닭에 적극적으로 덮어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재벌은 아무렇지도 않게 추악한 일을 저지르지만 '로열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단죄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걸 빼앗기고 자란 '마리'는 그녀의 범죄로 인해 모든 걸 빼앗겨야 합니다. 모 기사에 올라왔던 평가대로 '추악한 과거'를 갖고 있단 오명을 써야할 때도 있습니다. JK 안에서 인간임을 증명하겠다는 그녀의 각오, JK에게만은 단죄당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각오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너무나 각박한 처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생각해 봅니다. 법적으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 상황일 수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감성적으로는 '정당방위'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죠.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 더 갖기 위해 저질러지는 JK의 범죄와 살기 위해 저지른 인숙의 죄 중 누구의 죄가 더욱 추악할까요. 당연히 가진 사람들의 죄가 더욱 추악한 것 아닐까요.



한지훈, 김마리를 알게 되다

조현진은 여러모로 김인숙과 대조적인 여성입니다. 재벌가의 귀한 딸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었고 스스로 시장에 나가 경매와 장사를 배우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부지런한 여성입니다.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 상대방의 장점을 제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타입이기도 합니다. 한지훈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며 눈물흘리는 사랑에 빠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인숙과 지훈의 마음을 눈치채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김인숙은 자기 자신을 인간이기는 커녕 인간 이하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인숙의 이름이 김마리라는 걸 알게 된 지훈, 추락하던 자신을 사람처럼 살 수 있게 해준 은인이 자신이 알던 여자가 아니란 걸 깨달은 지훈은 곰인형을 안은 조니의 죽음 마저 인숙의 짓은 아닌지 추궁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마리가 조니의 어머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인숙이 조니를 죽였는지 아닌지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점점 더 인숙에게 다가오는 지훈의 추격

김인숙이 말했던대로 '추격전'이 시작된 셈이고 한지훈의 성격상 김마리의 과거는 낱낱이 밝혀져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지훈이 마리의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별개로 시청자들 역시 마리라는 인물의 과거를 용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누구나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다수의 타인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거나 몹쓸 일을 겪었을 경우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지훈은 이미 JK 사람들의 생리를 지켜보며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김인숙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JK를 자기것으로 만드는 복수의 길을 밟고 있습니다.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공순호와 엄기도 등이 추가되어 '인간의 증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보다 훨씬 더 선명한 테마를 보여주는 '로열패밀리'. 매일 기도실에서 기도하던 인숙은 과연 지훈의 심판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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