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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시지프스는 액션과 멜로를 내세운 SF였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할 문제가 참 많은 드라마였다.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드라마 속 캐릭터의 시간대 문제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아니 드라마가 모두 끝난 지금도 제대로 설명해준 사람이 없기에 아직도 궁금하다. 대체 주인공들이 과거의 반복을 몇 번 겪었을까. 어떤 시점에선 처음 겪는 일들이고 어떤 시점에선 여러번 일어난 일이기에 꽤 헷갈렸다. 한태술(조승우)의 비행기 사고로 시작된 첫 부분은 분명 시그마(김병철)가 과거로 업로드한 후 처음 일어난 일일 텐데 그 뒤로는 반복된 미래들이 섞여 있다.

 

 

마침내 한태술의 의지가 운명을 꺾어버린 순간

처음에는 이 드라마 전체가 주인공이 비행기 사고 이후 겪은 환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정도로 사건이 엉켜 있었고 한태술은 사고 전후 꽤 많은 약을 먹었다. 그는 멀쩡할 때는 놀라울 만큼 똑똑하지만 김서진(정혜인)은 그런 그에게 알면서도 꽤 많은 약을 먹였다. 미래가 바뀌면 주인공들 옆의 인물들의 윤곽선이 흐릿해지는 현상 때문에 더욱 환상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시그마는 한태술에게 꽤 여러번 '이겼다'라고 표현했고 김서진은 시공간을 여행하는 약을 여럿에게 투여했으니 어느 정도는 환상이 맞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미래는 운명인가 의지인가. 미래에서 거슬러와 엄청난 부자가 되고 핵전쟁을 일으켰으며 한태술과 서해(박신혜)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시그마에게 미래는 운명이자 의지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시그마가 기록한 대로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서로 얽힌다. 아시아마트의 박형도(성동일)가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반복적으로 살인자가 되는 것처럼 한태술이 서해를 살리기 위해 업로더를 코딩하는 것처럼 어떤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드라마는 원제인  '시지프스: the myth'라는 제목처럼 신에게 벌을 받아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신처럼 시간을 움직이는 업로더의 주인 시그마는 마치 게임을 하는 듯 한태술을 괴롭히고 운명처럼 반복되는 그의 고통을 즐긴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난 그 대단한 한태술도 운명 앞에 마치 장난감처럼 힘을 잃는다. 시그마가 죽어도 마지막에 에디김(태인호)이 결국 태술에게 업로드 제작을 강요하는 것처럼 한번 정해진 운명은 그들을 같은 비극으로 끌어들인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운명이지만 그들의 선택으로 변한 미래.

 

서해를 만나기전 한태술은 충분히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국민 영웅에 국민 천재로 불리는 그이지만 형인 한태산(허준석)에 대한 죄책감으로 세상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친구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들 조차 가볍게 대했다. 그랬던 그가 형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을 살리겠다는 서해를 만나고 마지막 '선택'까지 하게 되는 과정은 운명에 지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이 죽음으로 운명의 고리를 끊어버린 태술의 선택인지 그것도 아니면 시그마가 다시 태술을 시간여행으로 끌어들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니면 서해와 같이 주사를 맞고 영원히 시간 속을 헤매는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태술의 선택은 반복되는 운명의 변화를 가져왔고 조금씩 미래에 영향을 끼쳤다. 박사장이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고 썬(채종협)과 황현승(최정우)이 살아 있고 강동기(김종태)가 시그마에게 겉옷을 건넨 그 순간 미래는 조금씩 변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한 한태술의 마지막 '선택'은 어떤 식으로든 성공인 것이다. 그는 드디어 약을 버린다.

 

 

 

 

같이할 수 없는 서해와 태술의 선택

 

전반적으로 약간은 불친절한 이 드라마에서 '미래'의 모습은 꽤 끔찍하게 다가왔다. 서해가 혼자 사냥을 다니는 놀이공원에서 아무렇지 않게 배낭의 과자를 꺼내먹고 해골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의 뻔뻔함이 느껴진다. 서해는 어쨌든 미래에서 살아남았고 백골의 과자를 훔쳐먹는다고 한들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랬던 그녀가 시그마의 수영장에서 물이 낭비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다(웨딩드레스 사진이 이미 이전에 나왔으니 아마도 이때가 업로더를 타는 첫 시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태술 구하고 널 죽일거야' 시그마 앞에서 당당하게 외친 서해의 의지.

 

그 지독한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해의 아빠는 딸에게 사격을 최우선으로 가르쳤고 서해는 분홍색을 좋아하는, 생존본능만 살아남은 전사가 되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상한 통조림이나 사냥하고 항생제를 구하기 위해 목숨 거는 서해가 과거로 돌아오겠다 마음먹는 것도 어쩌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서해는 그런 세상에서 자랐으니까. 비록 그 선택으로 인해 과거가 바뀌어 자신은 사라질 수 있다 해도 서해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마음먹었다. 전사 서해와 평온한 세상의 서해는 공존할 수 없었다.

 

황현승(최정우)은 운명의 '명(命)'은 명령을 뜻한다고 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운명은 숙명이고 명령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했다. 운명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운명이 달라져서 생기는 변화를 거부한다. 운명대로 하지 않으면 딸이 죽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말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시그마의 말처럼 황현승 역시 몇 번씩 반복되는 결말을 운명으로 믿고 있다. 바꾸려고 애써도 제자리 애쓰지 않아도 그대로 흘러간다면 대부분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달라진 건 시그마의 죽음 뿐이지만 그들의 선택은 많은 것을 바꾼다.

 

저승에 떨어진 시지프스는 '벌'을 받아 큰 바위를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해야 했다.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며 업로더를 만드는 태술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반면 태술과 함께 환생을 반복하는 서해의 의지는 시지프스 전설의 변수에 해당한다. 시지프스는 아내와 계략을 꾸며 신을 속였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방법으로 살아났다. 인간의 끊임없는 의지와 벗어날 수 없는 숙명 속에 어느 쪽이 이겼을까. 끝은 똑같았지만 해석은 다들 수 있었던 그들의 마지막. 그 환상 같은 마지막 비행기신은 하데스로부터 탈출한 시지프스 커플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시지프스'는 꽤나 신선한 발상의 드라마였다. 누구나 한 번쯤 과거로 돌아가 로또 번호를 맞췄으면 어떨까 생각해봤을 것이다. 너도 나도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다면 단속국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 그런데 타임머신이 살아있는 생명을 고스란히 옮겨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좀 충격이었다. '스타트렉' 같은 오래된 미드에서 종종 그런 트랜스퍼 사고를 언급하긴 했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 뭐 대개 시간여행에 관한 드라마들이 한 사건을 반복해 보여주느냐 답답한 느낌을 주는 주는 건 사실이지만 '시지프스' 역시 신선한 소재에 비해 연출은 답답한 연출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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