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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던 드라마 중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가 있었다. 그 드라마는 미국 금주령 시기에 유명했던 깡패(갱스터)이자 정치인 에녹 존슨을 모델로 '너키 톰슨'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 캐릭터는 따뜻할 때는 한껏 다정하고 잔인할 때는 한마디로 피도 눈물도 없다. 내가 주목한 것은 다소 빈센조 까사노를 닮은 그 주인공보다 너키 톰슨 주변의 마피아들이다. 드라마엔 당시 실존인물인 갱스터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이탈리아 출신 알 카포네, 뉴욕 출신 러키 루치아노, 유태인 출신 아놀드 로스틴 등 그 시기는 갱스터의 전성기였다. 흥미로운 건 제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돌아온 알 카포네였다.

 

'악은 견고하며 광활하다' 빈센조 까사노의 마지막 메시지

 

알 카포네는 담배를 입에 물고 웃고 있는 사진이 유명한데 그 인심 좋아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갱스터 범죄를 역사상 가장 잔인하게 만든 인물로 명성을 떨친다. 그 시기 갱스터들은 금주령 때문에 밀주를 두고 다퉜는데 알 카포네는 시카고 갱단에서 힘을 키웠지만 이탈리아 출신이었고 같은 이민자 출신이던 아일랜드 갱단과 치열하게 다퉜다. 두 갱스터의 전쟁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이 죽은 만큼 그도 많은 돈을 벌었다. 수입이 많다고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고 뭐 어쨌든 그 시기에 제일 유명한 마피아였다.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1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돌아온 알 카포네가 주먹으로 사람을 쳐 죽이던 시절보다 훨씬 더 잔인해진 모습을 묘사한다. 사실 진짜 전쟁에 참전한 적은 없지만 알 카포네는 톰슨 기관단총으로 '밸런타인데이 대학살'에서 신이 나서 사람들을 쏴 죽인다. 세계대전은 그들과 무관할 수 없었다. 총은 정말 손쉬운 살상 도구였고 갱스터들은 기관단총을 선택했다. 드라마는 굉장히 잔인했고 방탄차까지 동원해 '전쟁'을 했던 알 카포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능력 있는 갱스터들의 '사업'을 위한 살인은 그렇게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한때 뉴욕의 한국인 마피아도 있었다는데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였다. 빈센조가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마피아였듯 한때 한국 출신 마피아가 미국 사회를 누비고 다녔단 소문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그의 이름은 제이슨 리, 본명은 이장손이었다(작곡가 길옥균의 구술이 제이슨 리 이야기의 출처다). 설탕 농장 이민자 가족 출신 이장손은 카포네의 신임을 얻어 시카고 마피아의 중책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되기도 하고 한때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기획하기도 했다. 뭐 '제이슨 리'라는 사람의 과거는 과장되었고 알 카포네와의 관계도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평가도 있지만 안창호 선생 가족과의 인연이나 아직도 남아있는 그의 사진은 그 시대의 아픔을 생각하면 꽤 드라마틱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파티를 즐기며 브랄로 양복을 입는 빈센조는 어쩐지 친근한 마피아를 보는 듯했다

 

알 카포네가 감옥에 수감되어 몰락한 건 세금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일 때는 거침없고 사업을 할 때도 화끈했던 알 카포네는 자신을 사업가라 생각했다. 우리 눈에는 그냥 갱스터지만 마피아는 그의 직업이었다. '마피아'라는 단어에는 역사적, 지역적으로 여러 뜻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기업형 범죄', '조직범죄'가 포함된다. 어떤 피해를 입었을 때 집단적인 앙갚음 즉 복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영화 제작자가 영화 '대부(God father, 1972)'에서 미화된 모습으로 마피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피아들은 영화관에서 우아하게 묘사된 마피아를 보고 매우 만족했으며 나중에는 그들이 영화 속 마피아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복수에는 가차 없고, 최고의 멋쟁이처럼 브랄로 양복을 챙겨 입는, 능력 있는 이탈리아 마피아가 '한국인'이라는 설정 - 어쩐지 능력 있고 '겉멋'들어 보이는 그 설정은 결국 이런 역사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피아'라는 용어에 꽤 관대할 수밖에 없었다. 조폭은 종종 볼 수 있어도 한국 사회에서 마피아들의 총싸움을 볼 일은 없고 '마피아 게임'에서 밤이 되면 몰래 옆 사람을 죽이고 가는 마피아들은 오히려 코믹하다. 그들은 친숙하지만 이탈리아나 시카고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죽음을 당할 일이 없으니 파인애플 피자로 마피아를 고문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빈센조' 답지 않게 우울하고 잔인했던 마지막회

 

20회가 방영되는 동안 드라마 '빈센조'는 사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속 시원한 장면이 많았다. 등장한 캐릭터도 하나같이 좋았지만 익살스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한 장면에 통쾌함을 느끼곤 했다. 따지고 재는 거 없이 시원하게 잘라내는 주인공 빈센조는 꽤 매력적이더라. 배우 송중기의 매력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마치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귀족스럽게 파티를 주관하는 이탈리아 마피아 패밀리의 대부처럼 빈센조는 그들 금가프라자 무리를 잘 이끌었고 대외안보정보원까지 빈센조의 행동에 동조했다. 뉴트리아 박석도(김영웅)을 줄자에 매달아 위협할 땐 입꼬리가 올라갈 만큼 웃으면서 봤다.

 

순간순간 자신이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했지만 빈센조는 주인공이었고 악을 조롱하는 그 순간엔 생기가 돌았다. 마피아면 어떻고 악당이면 어떠하리. 재벌, 깡패, 정치인, 법조인의 부정부패 앞에서 '조금만 썩었어도 썩은 사과'라는 바른말을 할 땐 수긍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을 위기에서 인작(세상에 어떻게 비둘기가!)이가 어이없이 빈센조를 구해주고 죽었나 싶었던 빈센조가 장한서(곽동연)와 이탈리아 공작원들과 함께 작전을 꾸며 반전을 도모할 땐 유쾌했다. 그는 시청자를 속였고 속임을 당하면서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회의 피비린내나는 마피아의 복수.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마피아는 드라마틱하지만 블랙 유머로 넘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양복을 입고 피범벅이 되지 않으면서 젠틀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악당 - 그게 마피아였다. 오프닝부터 빈센조는 홀로 서 있었고 영화 '대부'처럼 우울하고 때로는 외로워 보이지만 그런 쓸쓸한 모습조차 매력포인트였다. '이국땅에서 홀로 활약하는 한국인 마피아'라는 설정만으로 시청자는 흥미로워한다. 답답하고 속 터지는 현실 세계 뉴스보다 충분히 매력 있었지.

 

그런데 마지막회의 잔인한 모습은 사이다라기 보단 정신이 퍼뜩 들게 한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잔인했다. 악당 역할을 하던 최명희(김여진), 장준우(옥택연)의 모습이 친근했던 인상의 배우였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악행이 너무나 피상적이었던 까닭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두 주인공이 악행의 대가를 치르는 모습에서 시원하기보다 씁쓸했다. 가벼운 마피아 드라마를 기대했다가 알 카포네의 총격전을 본 느낌이랄까. '악은 견고하며 광활하다'라는 그의 마지막 대사는 일면 섬뜩하다.

 

맞다. 드라마 '빈센조'는 처음부터 쓰레기 치우는 악당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그의 처분을 받은 쓰레기 악당들은 시체도 못 찾고 포도밭 거름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작가에겐 마피아를 미화할 생각이 없었다. 주인공이 너무 잘 생겼기 때문에 피비린내라는 드라마라는 걸 어느새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일방적으로 드라마를 평범한 마피아 이야기로 착각했을 뿐 처음부터 어둡고 음습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앞으로는 이탈리아 어느 포도밭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는 괴담을 떠올리면 될까. 마지막회의 잔인한 마피아 냄새는 꽤 오래 잊히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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